후루사와 #1

그라운드에 잠시 누워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조금만 더 뛸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가는 동실의 선배에게 오버워크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것 같았다. 아직은 춥다고 느낄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침저녁 기온이 내려갔다. 도쿄의 겨울은 그리 춥지 않다고, 어지간해서는 눈도 쌓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나눈 것이 얼마 전이었다.

오늘은 달이 참 밝네.

위에서 목소리가 떨어져 내렸다. 글자 하나하나, 후루야가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 데에는 이제 익숙했다. 쓴웃음을 짓고는 사와무라는 몸을 일으켰다.

네, 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데?
얘기랄 거는 없는데.

후루야는 아직 제자리로 돌려놓지 못한 타이어 위에 걸터앉았다. 같이 그라운드를 뛰지 않을 때 후루야는 가끔 연습을 끝마친 사와무라에게 말을 걸어온다. 언제나 별로 이야기 할 것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대화를 끊는 일은 없다.

그런데 그렇게 말 거는 건 이제 그만 해도 되지 않아? 매번.

솔직히 이상해. 사와무라는 중얼거리면서 그렇게 덧붙였다. 이제는 슬슬 평범한 말로 이야기를 시작할 때도 되었다. 먼저 말을 걸고 싶으면 흐려서 보이지도 않는 달 말고 조금 다른 레파토리를 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무리.

물론 그렇게 말 한다고 해 봐야 후루야가 듣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대답에 사와무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아직도 모르니까 그만 두고 싶지는 않아.
뭘 모르는데?

눈살을 찌푸리며 후루야에게 물었다. 네가 날씨 얘기 말고 다른 식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법을 모른다는 거 말고 뭐? 후루야는 대답하기를 망설이는 것인지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좋아한다는 말이잖아.
어?
국어시간에 배우지 않았어? 나ㅊ—
너한테 그런 이야기 듣고 싶지 않거든? 소세키잖아.

사와무라는 이제 수업 중에 졸지 않았고, 선생님이 지나가듯이 언급한 것도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소세키가 말했다고 전해지는 이야기지, 사실은 소세키가 말한 것은 아니라고도 했다. 제대로 알고 있다는 표시를 하자 만족한 것인지 후루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 하지만 그냥 좋아한다고 말하면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렇지만 역시 좋아한다고 말하고는 싶으니까.

얼핏 보면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표정이었지만 중간 중간 마주친 눈빛은 사뭇 진지했다. 지금은 그러면 언제나 뭔가 이야기 해 주잖아. 애매한 미소를 마찬가지로 애매한 표정으로 마주했다. 결국 오늘도 들어버렸다. 하고 싶은 이야기.

너랑 안 어울려.
그런가.
그런 식으로 돌려서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거잖아. 네가 날 좋아한다는 거.

말이 길어질수록 목소리는 작아지는데다가 눈을 마주치기가 어쩐지 어려워졌다. 결국에는 땅만 바라보면서 손끝으로 운동장을 문대다가 숨을 크게 들이쉰 사와무라는 후루야를 바라보았다.

알았으니까, 앞으로는 말하고 싶으면 그냥 불러도 괜찮아, 사토루.
응. 앞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좋아한다고 말하면 에이쨩은 나랑 얘기하기 어려워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