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끝나고

성장

 

다른 원정경기와 다를 게 없다. 그저 장소가 오사카 조금 옆에 있는 경기장이 될 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고시엔이다. 모든 고교야구 선수들의 꿈이라는 그, 여름의 고시엔.

내일이면 그곳으로 떠나는 날이라 그런지 쿠라모치는 쉽사리 잠이 들 수 없었다. 이렇게 잠들지 못하는 건 사와무라나 할법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정작 그 사와무라는 건너편 이층침대에서 푹 잠들어 있는지, 뒤척이지도 않았다—덧붙여서 그 아래층에 있는 아사다 역시나. 긴장하고 있는 것은 쿠라모치 뿐인 모양이다. 쿠라모치는 자세를 바로 고치고 조용히 숨을 길게 내쉬었다가 들이마시며 잠이 들기를 바랐다. 한참을. 하지만 끝끝내 잠들기에 실패한 쿠라모치는 5호실 밖으로 나와서 잠시 밤공기를 쐬기로 했다.
자리를 잡은 곳은 밤공기가 머물기만 하는 실내연습장이 되었다. 마음을 다잡기에는 좋은 곳이었다. 벽 곳곳에 붙어있는 붓글씨가, 그 말들을 항상 품고 충실하게 지냈다면 오늘이나 내일, 경기가 있을 며칠 후 역시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긴장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사와무라와 눈이 마주친 것은 기분을 풀고 돌아가려던 때였다. 쿠라모치를 찾고 있었는지, 입구에서 고개를 빼꼼 들이밀고 어두운 실내연습장 안을 훑어보고 있었다. 쿠라모치를 확인한 사와무라는 실내연습장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쿠라모치 선배.”

불을 켜지 않은 데다가 거리가 있어서, 사와무라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어렴풋이만 보일 뿐이었다. 목소리만큼은 조금 안심한 듯이 들렸다.

“여기서 뭐 해요?”
“너는 뭐 하는데.”
“선배가 나가서 안 들어와서요.”

사와무라가 쿠라모치에게 다가왔다. 조금 가까이서 보니 반은 졸린, 반은 걱정된다는 표정이었다. 침대에 누운 지 얼마나 되었다고, 머리가 베개에 눌려 있었다. 그대로 벤치 옆자리에 앉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사와무라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한 발 떨어진 곳에 멈추어서서 쿠라모치를 바라볼 뿐이었다.

“선배도 긴장돼요?”
“뭐…… 조금은.”
“저도요.”
“그런 것 치고는 잘 자던데?”
“아, 졸린 건 졸린 거니까…….”

말을 흐린 사와무라는 머쓱한지 웃어넘기려는 모양이었다. 쿠라모치도 그 표정에 어쩐지 안심이 되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들어가자.”

쿠라모치가 실내연습장 문밖으로 나오자 사와무라는 하품을 하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런데 쿠라모치 선배도 긴장 같은 거 하는구나.”
“어쩔 수 없잖아.”
“아직 경기가 언제일지도 안 정해졌는데도요?”
“……그렇네.”
“그렇지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지만, 아무래도 사와무라도 잠들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고, 쿠라모치는 생각했다. 한 번 잠을 자면 깨지 않는 녀석이 갑자기 쿠라모치를 찾으러 나올 이유 같은 것은 없었다.

옆에서 조금 앞서가는 사와무라의 등을 바라보았다. 처음 기숙사에 들어왔을 때는 믿음직하지 못하기만 했던 후배였다. 단체생활의 기본 같은 것은 전혀 되어있지 않았던, 아니 단체생활이 무엇인지조차 하나도 모르는 것 같은 애송이였다.

어느새, 선배인 쿠라모치를 걱정할 정도로 자랐다.

처음은 아니었다. 그때는 지금 같은 한밤중의 기숙사가 아니라, 한낮의, 진구구장이었다. 9회 초, 마지막 공격의 첫 타자였던 쿠라모치는 금방 벤치로 돌아와야만 했다. 사와무라는 벤치에 앉아있던 쿠라모치에게 다가왔다. 쿠라모치 선배. 선배라고 불렀지만 초조함으로만 가득 차 있던 쿠라모치와는 달리 사와무라의 눈이 오히려 더 침착했던 것을 기억한다.

‘캐치볼 좀 상대해 주세요….’

평소와 같은 목소리가 아니라, 무언가를 꾹 참고 있는 목소리로 쿠라모치를 일으켜 세웠다.

쿠라모치는 사와무라가 언제까지나 후배로 있으리라고 착각하며, 그런 일을 잊고 지냈는지도 모른다. 이미 한 해 전과는 달리, 감독의 신뢰를 받을 정도로 훌쩍, 자랐다는 것을 보았는데도 그렇다. 여름을 앞둔 연습경기에서 감독에게 네가 팀을 이끌라며, 부탁한다는 말을 들었는데도.

쿠라모치보다 먼저.

선배로서 뒤처진 느낌에 화가 났다. 주장은 아니더라도, 부주장이었고, 진구대회에서는 주장 대리로 나가기도 했는데. 여름을 앞두고 그렇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라운드에서도, 그라운드 밖에서도, 어디에서든 녀석에게 뒤처지는 것은 사양이다. 오늘은 어쩌다 보니 위로 비슷한 것을 듣기는 했지만, 앞으로는 그럴 일은 없어야 한다. 조금 기분이 나빠진 쿠라모치는 뭐라고 조잘조잘 떠들며 5호실 문을 여는 사와무라에게 타이킥을 한 번 날리는 대신, 머리를 거칠게 꾹꾹 눌러가며 쓰다듬고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