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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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와무라가 타카시마 선생님과 병원에 검사를 간 것이 2주 전 월요일이었고, 검사 결과가 나왔다며 다시 병원을 찾은 것이 지난주 월요일이었다. 아직 오프일은 오지 않았고 그때 새로 받아온 약이 아직 잘 듣지 않는 모양인지 연습이 다 끝난 저녁때면 사와무라는 앓는 일이 많았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있어도 들리는 소리를 참지 못하고 쿠라모치는 슬쩍 방에서 나가서 자판기에서 이온음료나 쥬스를 뽑아 오곤 했다.

“좀 괜찮아?”

돌돌 말린 이불 위로 보이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여전히 끙끙 앓는 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아까보다는 조금 약한 신음소리였다. 지난 며칠간 경험한 바로는 이제 정말로 조금 진정될 것이다.

“포카리 베개 옆에다 뒀어.”
“…고마워요, 선배.”

그렇지만 오늘 사와무라는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차라리 그것이 나은지도 모르겠다고 쿠라모치는 생각했다. 적어도 조용해지기는 했으니까.

사와무라가 병원에 간 것은 쿠라모치와도 관련이 있었다. 여름 예선이 끝나고 다시 보건실을 찾은 후, 타카시마 선생이 두 사람과 각각 이야기를 나누었다. 1학기 때 쿠라모치가 억제제를 받아갔을 때도 보건교사에게서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사와무라 본인은 별 문제없이 지낸 이상 첫 번째는 환경이 변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넘어갔지만, 두 번째는 달랐다.

쿠라모치도 같이 병원에 갔었다. 수치가 정상범위라는 말만 듣고 돌아온 그와는 달리, 나가노에서 약을 처방받았던 사와무라는 이번에는 약을 바꾸게 되었다고 했다. 잘은 몰라도 알약이 늘어난것은 분명했다.

“본딩을 할 생각 같은 건 없어?”

생수병을 입에 대고 물을 들이키던 사와무라를 바라보던 쿠라모치가 그렇기 묻자 풋 하는 소리와 함께 사와무라가 물을 뱉어냈다.

“아 더럽게.”
“—이상한 걸 물어보니까 그렇잖아요!”

물론 조금 갑작스러운 질문이긴 했지만 저렇게 격한 반응을 보일줄 몰랐던 쿠라모치는 멋쩍어져서 책상 위의 티슈 상자를 집어 던졌다. 입가를 대충 훔치고 바닥을 닦은 사와무라는 휴지를 쓰레기통으로 던저녛었다.

“…약이 있는데 왜요? 거기다 그런 거—몰라요. 잘 기억 안나지만 평생을 가는 거라면서요. 누구랑 그런 걸 해요.”
“그렇긴 하지만 약도 평생 먹어야 할지도 모르잖아.”
“솔직히 난 안 먹어도 되지만 선배 같은 사람이 안 괜찮다니까 그런 거잖아요. 그리고 선배도 그런 건 싫으니까 양호실에서 약을 받아온 거고.”
“…그렇지.”

쿠라모치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상 말을 계속해 봐야 본전도 찾지 못할 것 같았다. 사와무라가 그런 얼핏 들으면 단순하고 명쾌한 개념에 넘어갈 생각은 전혀 없어보인다는 것은 분명했다. 사와무라는 티슈갑을 쿠라모치의 책상으로 돌려놓았다.

“할아버지가 도쿄는 무서운 데라고 했는데, 할아버지가 말한 거랑은 다른지만 그런거 같아요. 나가노에 있을 때는 이런 거 신경 쓰지 않고 살아도 됐는데.”
“그래도 언제간 지금처럼 되지 않았을까.”
“그럴까요—”

쿠라모치의 애매한 대답에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사와무라가 중얼거렸다.

쿠라모치는 침대로 올라가기 전에 사와무라를 바라보았다. 포카리는 여전히 베개 옆에 놓여있었지만, 지금은 몸을 바로 하고 잠에 푹 빠져있었다.

평생 같은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은 쿠라모치도 같다. 그럴지만 그는 쿠라모치는 세 번째가 온다면 지금은 과학과 이성으로 억눌린 본능이 그때도 얌전히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