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

20230929 관람

난 초반의 흑백영화 부분이 너무 좋았다. 번개 치면서 뚝딱거리면서 움직이는 것 같은 부분. 그리고 배우들 연기도 좋았고, 극중극의 엔딩과 엔딩이 이어지기도 하고 어느 정도는 대비되기도 하는 걸 생각하면 좋은 영화였는데 엔딩이 좀 즉각적으로 반응하기는 힘든 엔딩이었던 거 같아. 그래서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까 싶음. 나는 극장에서는 엔딩을 제대로 이해 못했는데, 집에 오면서 생각해 보니까 좀 정리가 되는 느낌이었음.

엔딩 이전까지는 동인을 비롯해서 창작을 해 본 적이 있다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엔딩때문에 좀 애매해짐……. 그런데 그 부분 때문에, 얼마전에 친구랑 같이 본 놉Nope의 포스터 문구인 나쁜 기적이라는 것도 있을까? 라는 말이 생각나게 됨. 그리고 미도 때문에 내 장르에 신이 있습니다 만화도 좀 생각나고.

 

동인활동을 하면서 창작을 해본 적이 있다면 공감할 만한 면도 있지만, 반대로 후반부에 명확해지는 과거 때문에 썰 도용을 비롯한 온갖 표절 도용을 당한적이 있다면 좀 기분 나쁠 수 있을 거 같음…. 물론 김감독이 영화에 미쳐있는 인간이긴 하지만, 그에게는 원죄가 있는걸….

그런데도 그 부분 때문에 백회장이 작중에서 말한 대사가 이 영화의 결말이 무슨 뜻인지 보여준다고 느꼈음. 백회장은 김감독이 새로 가져온 각본을 보고는 불을 내는 게 예전과 똑같은데 무슨 생각이야? 라고 화를 내기도 하고, 결국 마지막에 혼란 속에서 세트장이 불타오르는 것을 보면서 그 때랑 똑같다고 소리치면서 난리였음. 아마 영화를 만드는 동안 김감독은 (높은 확률로 약 때문에) 신감독의 환상을 보고 그 환상 속에서 신감독에게서 “계시”를 받기도 하고, 영화의 엔딩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열망에 가득차서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모양이지만 결국 그가 만든 걸작은 신감독이라는 원형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 게 아닐까.

어떤 면에서는 차라리 극중극처럼 모두 죽는 엔딩이 났더라면 관객으로서도 좀 개운했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고 김감독은 신감독에게서 훔친 시나리오에 대한 진실을 공개하지 못하면서 거미집을 뛰어넘을 작품을 만들기 위해 다시 고뇌하면서 영화판을 떠나지도 못하겠지. 그래서 작중의 거미집이 그의 이야기 그 자체였던 것 같음.

 

2회차 노트

이게 도입부가 꿈에서 본 영화 장면이라는 걸 생각하면 첫번째 크레딧 이후의 영화관 장면이 김감독의 꿈이라고 해도 말이 될 거 같긴 함.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아 ㅅㅂ 꿈이라기보다는 위에 쓴 것처럼 해석하고 있음.

신감독이 죽었던 화재 장면에서의 그림이 타는 장면이 있는데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생각났어 (그 영화 안 봤지만).

클라이막스의 그 난장판에서 나오는 노래는 Poupée de cire, poupée de son 라고.

2회차를 찍으니까 김감독 캐릭터에 대해서는 전보다는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게 되었음. 거미집을 찍는 과정이 그가 원하는 감독으로 가는 세례였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될 정도로. 그렇지만 김감독은 신감독의 이야기를, 백회장은 스튜디오를 지키고자 하는 욕망에 가득찬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정말 영화 이야기랑 닮아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