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전환용

추첨식이 시작하기 전이었다. 하나 둘 모여드는 검게 탄 피부의 학생들. 지난 해 센바츠에서 혼고의 라이벌이라고 불리던 이름도 그곳에 있었다. 아직 혼고를 보지 못한 후루야는 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작은 키의 목제배트를 쓰던 세컨드와 혼고가 잘 모르는 다른 선수까지 셋은 입을 다물지 않았다. 주변의 누군가기 무어라고 한 건지 지난번 센바츠 경기에서는 출장 기회가 없었던 선수가 기웃기웃 고개를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눈이 마주쳤다고 혼고는 생각한 순간, 마침내 찾던 사람을 찾았는지 얼굴색을 밝힌 그는 혼고를 향해 다가왔다.

그가 다가올수록 마사무네는 센바츠 출전 선수 명단을 떠올렸다. 그의 사진도 있었다. 후루야가 있는 세이도의 사우스포. 지난 센바츠에서는 18번, 시니어 경험은 없었는지 출신 중학교가 실린 것이 전부였다. 하긴 시니어에 들어갈 정도였다면 센바츠 마운드에서 그렇게 구르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팀메이트들은 그것이 재미있는지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봄에 세이도와의 경기에서 마지막에 니시 주장을 붙잡고 유독 시끄럽게 퇴장했던 선수였다고 주장이 말했다—먼저 자리를 뜬 마사무네에게 나중에 버스에서, 너도 그렇게 붙임성이 있어보라는 말을 들어야했다. 그는 물론 무시했지만.

마사무네!! 아니, 혼고!

그의 이름이었지만 다짜고짜 혼고를 그렇게 부르는 상대는 이번이 초대면이었다. 혼고는 그를 무시하고 자리를 피하려고 했지만 옆에 있던 렌지나, 다른 부원들이 그를 힐끔거리며 쳐다보며 무언의 압박을 주고 있었다 있었다. 특히 주장이. 뭐라고 대답할지 몰랐던 혼고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마주했다.

사와무라 에이준이라고 한다! 친해지고 싶으니까 라인 아이디 교환하자!

풋. 제일 가까이에 서있던 렌지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사와무라는 그것을 들은 것인지 무시한 것인지 혼고는 알 수 없었지만, 렌지만이 아니라 다른 부원들도 고개를 돌리고 피식거리고 있었다. 그도 웃고 싶었다. 사와무라라고 말한 투수가 말을 걸어온 것이 혼고가 아니었다면 그랬을 것이다. 다른 상대였지만 혼고는 또 다시 악수를 거절했다.

…싫어.

그나마 지난번보다 나은 것이라고는 이번에는 적어도 대답은 했다는 점일까. 예상대로의 말에 코마다이 부원들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끄덕이며 눈빛을 교환했다. 세이도 측도 그것은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힐끔 바라보니 멀리서도 키득거리는 얼굴들을 볼 수 있었다. 가쿠란과 블레이저, 다른 교복 차림의 부원들이 눈을 마주쳤을 때 느낀 것은 동질감이었다.

단 사와무라 한 사람만이 그런 분위기를 모르는 것 같았다. 거절의 말과 함께 고개를 돌린 혼고를 바라보며 그는 진심으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잠시 굳어 있다가, 사와무라는 소리쳤다.

어째서?!!
…….
말을 하라고! 뭐야, 홋카이도 투수들은 다 이런 것도 아니고!

큰 소리로 외친 저 말에 북홋카이도 대표로 나온 학교의 투수가 움찔했을지도 모른다. 사와무라는 혼고가 말수가 적은지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입을 다물고 있는 혼고의 옆을 떠나지 않고 끊임없이 뭐가 불만인지를 물어보고 있었다. 세이도 쪽에서는 사와무라, 시끄러우니까 돌아와! 하는 말이 던져졌고, 복도에 모여 있던 다른 학교 선수들도 고개를 돌려서 그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그것이 불상해 보였던지 코마다이 선수 하나가 사와무라를 구해주기로 했다.

사와무라군?
앗, 그쪽의 캡틴!

니시는 사와무라에게는 일면식이 있는 상대였다. 잠깐이기는 했지만, 반쯤은 억지였지만, 손을 붙잡고 악수를 했던 사이였으니까. 니시는 사와무라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혼고에게서 조금 멀어졌다. 소곤소곤, 비밀을 이야기하듯이. 그가 혼고의 흉을 보는 건 야구부에서는 대수로운 일도 아니었지만, 타교 학생 앞에서야 그럴 수는 없었다.

미안, 우리 마사무네가 좀 성격이 저래서. 나는 선배라 안 되겠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자 그럼 하자, 메신저 교환!

서글서글하게 웃는 모습으로 다가온 니시를 사와무라는 거절할 수 없었다. 니시는 마사무네를 제외한 대부분의 후배들에게는 이 웃는 얼굴이 통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타교 선수라도 마찬가지였던가 보다. 우물쭈물 대답했지만 교복바지에 넣었던 폰을 꺼내든 사와무라는 화면을 움직이며 메신저 앱을 열었다. 역시나 폰을 꺼낸 니시는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와무라에게 물었다.

그런데 사와무라군은 왜 우리 마사무네한테 그런 걸 물어본 거야? 보다시피 저 녀석, 성격 안 좋은데.
그렇지만 같은 투수고… 같이 얘기하면 좋을 거 같아서……요. 후루야도 친해지고 싶은 모양이지만, 지난번에 악수 안 받아준 거 아직도 신경 쓰고 있어요.
우리 마사무네도 그런 생각 좀 하면 좋을 텐데. 자, 이게 내 코드.
아, 그러면…… 됐다! 이름… 니시…….
히데오야 히데오.

고시엔 구장에서의 아나운스는 듣지 못했던 것일까,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혼고의 이름은 기억했으면서—물론 지겹게도 들었을 테지만 니시는 그것을 조금 아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이어 사와무라가 내뱉은 말에 금방 기분이 풀렸다.

아, 주장에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너, 정말 좋은 녀석이구나! 우리 학교 올래?

분위기를 읽을 줄 아는 후배는 귀엽다. 입에 발린 말이라도 선배를 칭찬할 줄 아는 후배는 더더욱. 니시는 그 이름을 좋아했고, 사와무라도 그 한자가 꽤나 멋있다며 말을 이어갔다. 니시는 금세 이 타교 투수가 마음에 들어서—작년 가을이나 몇 달 전, 정찰조가 이야기 한 분석을 들었을 때와는 다른 의미로—웃으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혼고는 방금 전까지 조금 인상을 찌푸리며 그의 이름을 부르던 얼굴이 니시 주장과 함께 하하호호 하는 것을 얌전히 바라보았다.

…….
부러우면 부럽다고 말해도 괜찮아.
아니.

혼고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엔죠가 보기에 중학교 때 부터의 그의 친구는 퍽 읽기 쉬운 성격이었다. 혼자서 성큼성큼 다가와서는 금방 니시 주장과 함께 멀어진 사와무라를 보는 표정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지난 대회 때 결승전 상대팀의 포수와 렌지가 메신저 아이디를 교환했을 때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던 것을 기억한다. 렌지는 슬쩍 마사무네를 팔꿈치로 치며 물었다. 마사무네의 답은 여전히 짧았지만, 눈은 두 사람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사와무라가 고개를 들었을 때는 휙 그것을 무시했지만.

마사무네, 정말 버틸 거야?

니시는 다시 한 번 혼고에게 물어보았다. 뭐 여기서 거절한다면 나중에 고시엔이 끝나고 실수한 척, 사와무라와의 대화방에 에이스 후배를 초대해도 되는 일이었지만, 이것은 마지막 기회라고 눈빛으로 열심히 전했다. 그것이 통할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
오오오오! 자, 이거야.

그렇지만 아무래도 통한 모양이었다. 시선을 피한 마사무네가 사와무라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와무라는 금방 쪼르르르 혼고에게 다가가서 방금 전 니시가 그랬던 것처럼 라인 QR 코드 화면을 들이밀었다. 니시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두 사람에게서 멀어졌다. 임무 완수, 쓴웃음과 함께 그를 바라보는 렌지에게 윙크를 보냈다.

혼고는 말없이 QR 코드를 스캔하고는, 사와무라의 이름이 맨 위에 뜬 빈 대화창을 사와무라에게 보여주었다. 그제야 사와무라는 만족한 듯이 활짝 웃었다.

나 도쿄에 있는 다른 선수들이랑도 친구하고 있는데 같이 얘기하자! 홋카이도는 어떤지 다들 신기해 할 거야!
……그럴 시간 없어.
너만 바쁜 거 아니거든? 그렇다고 차단하거나 그러면 안 된다?

사와무라는 몇 번을 혼고에게 다짐을 받아낸 후에야 세이도 일행에게로 돌아갔다. 혼고는 빈 채팅창을 닫고 채팅 목록이 있는 화면으로 돌아간 후에야 앱을 닫아서 폰을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목적을 달성한 사와무라는 당당하게 후루야와 하루이치에게로 돌아왔다.

받아왔다?
정말이야, 에이쥰군?

기세등등하게 손에 든 폰 화면을 흔들면서. 이미 그 과정을 지켜보아서 알고 있기는 했지만, 빼앗아 든 폰 화면에 낯설지만 익숙한 이름이 있는 것이 지금도 조금 믿기지 않을 뿐이었다. 채팅창에는 아무런 말도 없었지만. 그리고 코마다이의 안경 쓴 포수의 옆에 선 혼고도 다시 무뚝뚝한 표정이었지만. 그런데도 사와무라는 싱글벙글한 미소로 말을 이었다.

응! 나중에 그룹채팅 하자고 했어!
……지난번에는 악수도 안 받아줬는데.
나도 그랬어, 좀 전에.

그렇지만 결국 했잖아? 후루야는 그렇게 묻지는 않았다.

후루야는 아직도 그 일이 잊히지 않았다. 빈손을 내리지 못하는 동안에도 상대팀의 선발은 성큼성큼 멀어졌다. 사와무라에게는 쉬워보였던 일이었다. 벌써 일 년 가까이 전 야쿠시와의 경기에서 사와무라는 그다지 내켜하지 않는 토도로키의 손을 억지로 잡고 악수를 나누었다. 그 이후 토도로키와 사와무라는 하루이치와 사와무라와 같은 친구 관계가 된 것 같지는 않았다—적어도 후루야가 둘이 따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본 일은 없으니까. 그렇지만 무언가 벽이 허물어진 느낌이었다. 후루야도 그런 것을 바랐을 뿐이었다. 언론이 그렇게 말하지 않았더라도, 혼고와 후루야는 닮아있었다는 것은 진구에서부터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악수를 나누고 다음에 만날 때는 다른 느낌으로 마주할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렇지만 후루야는 알 수 없는 이유로 후지마키의 1번은 후루야를 여전히 피하는 모습이었다.

어쨌든 나중에 같이 이야기하다 보면 친해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잘 된 거잖아, 후루야.
응…….

잘 된 것인가? 잘 될까? 후루야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애매하게 대답했다. 다시 마주할 때까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응, 대단했지… 라는 말에 이어서 복도에 코마다이 부원들이 나타난 당장 혼고에게 걸어갔던 사와무라와 후루야는 달랐다. 후루야는 혼고가 서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무뚝뚝한 얼굴과 눈이 마주쳤다. 후루야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고, 혼고는 강당 안으로 들어가자는 말에 고개를 돌릴 때까지도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여름 고시엔의 추첨식에서 남북홋카이도와 동서도쿄는 초반부터 같은 지역끼리 맞붙는 일이 없도록 제일 먼저 추첨을 한다. 남홋카이도 대표학교로 제일 처음으로 번호를 뽑은 니시는 번호를 들고는 학교명과 함께 번호를 또박또박 말했다. 떨리지도 않는 것일까. 아니 떨릴 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코마다이는 전년도 우승팀이었고, 니시 역시나 주장이 된 이후로 진구와 센바츠, 그리고 카메라 앞에서의 인터뷰도 몇 번 겪었다. 이번 대회로 전국대회 4연패를 노리고 있는 우승팀과 누가 붙을지, 아직 대진이 정해지지 않은 모두가 주목했다. 물론 세이도는 아니었다. 다만 미유키의 대진운은 이번에도 좋지 않았기에, 이후에 마침내 결정된 첫 상대는 고시엔 단골이라는 말을 듣는 강호교였다. 사와무라는 회장에서 나가기 전, 대진표의 사다리를 눈으로 따라 올라가 보았다. 세이도가 코마다이를 만난다면, 그것은 대회 후반이 될 것이다.

가로로 길었던 대진표의 제일 밑단. 사와무라가 처음으로 맞는 여름 고시엔은 매우 덥고, 그의 외침정도는 간단히 묻어버릴 정도의 함성을 보내는 가득 찬 관중석이 있었다. 마운드에서 바라보는 전경을 보여주고 싶은 선배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루하루 여름이 지나가던 것을 사와무라는 기억한다. 센바츠 때보다 더운 여름의 밤. 공원에서 연습을 하는 사와무라를 채운 것은 이번에는 초조함이 아니었다. 지난 번 보다 높은 곳을 향할 것이라는 예감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여름이 끝나기 전에 결국 후루야는 이번에는 먼저 대열을 이탈하지 않은 혼고와 악수를 나눌 수 있었다. 이번에도 혼고는 무표정이었다.

 

달력은 마침내 8월에서 넘어갔지만 사와무라의 기대와는 달리 단체채팅은 그렇게 빈번하게 일어나지는 않았다. 다들 연습량이 많은 강호교에 재학 중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채팅방에 제일 자주 출몰하는 것은 사와무라였지만, 다른 선수들은 그리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지도 모른다. 이제야 겨우 폰을 갖게 된 토도로키가 문자를 치는 속도는 절대로 빠른 편이 아니어서 그는 대부분의 반응을 스티커로 대신하는 일이 많았다. 무카이의 경우, 테이토는 세이도나 야쿠시와는 도쿄도 대회에서나 맞붙는 상대였지만 그는 서도쿄 학교에게 전력 노출은 꺼리는 모습이었다—고 사와무라는 주장했지만 채팅방 멤버는 그에 대해서 다른 의견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츠키는 투수의 저런 태도가 익숙했다. 에이스 투수의 성격 나쁨이야, 뭐. 하지만 나루미야가 졸업하고 그것과도 이별인 줄 알았는데, 어디나 마찬가지구나, 가끔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토죠는 그것이 단순한 심술이라고 생각했다. 테이토와의 전적을 생각해 보면, 무카이는 사와무라나 후루야에게 지는 것이 싫었을 테니까. 토죠는 사와무라나 후루야는 그런 것에 둔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혼고나 보기에 무카이의 태도에는 혼고에게도 익숙한 우월감과 열등감을 기반으로 한 견제가 들어가 있었다—그라운드 밖에서까지 저러는 것은 퍽 우스워 보이기도 했다. 그러는 혼고나 후루야 역시 말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아무리 사와무라가 말이 많다고 해도 사와무라나 토죠, 타다노가 항상 대화를 이끌어가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한창 시끄러웠던 것도 얼마간이었다. 가을 대회 일정이 시작되며 단톡방은 조금 잠잠해졌다. 도쿄의 일정과 홋카이도의 일정은 달랐지만, 학기 중의 시합이 주말에 열리는 것이야 같았다. 주말동안 경기 결과에 따라서 축하한다는, 혹은 힘내라는 말이 올라왔다. 중간에 드래프트 이야기가 잠시 있었다. 토죠를 시작으로 생일 축하한다는 스티커나 이모지가 보였고, 일찌감치 내린 홋카이도의 첫눈 소식에 도쿄에 있던 모두가 놀랐고, 해피뉴이어 아케오메 같은 말이 있었다. 발렌타인 때는 누가 더 초콜릿을 많이 받았는지 하는 것으로 경쟁심을 보이기도 했다. 대화는 조용하지만 꾸준히 이어졌다. 센바츠, 도대회, 지구대회, 고시엔 예선. 그것을 거치는 동안 폰 화면이 아니라 얼굴을 마주하기도 했다. 고시엔은 별로 보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보낸 것은 누구였을까. 그들 중에는 은퇴가 조금 빨랐던 경우도 있었지만, 결국 그들 모두 고시엔을 끝까지 보았고, 여름과 함께 그들의 고교야구도 끝났다.

 

후루야 사토루의 이름이 프로지망자 목록에 오른 것을 확인했을 때, 사와무라와는 고시엔과 진구에서밖에 얼굴을 볼 수 없는 먼 곳의 친구, 혼고 마사무네도 고시엔이 끝나고 얼마 안 있어 프로 지망서를 제출한 것을 알게 되었다. 왜 말 안했어? 하는 질문에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지망서 제출 마감일까지 사와무라의 이름이 오르지 않았을 때 사와무라는 그들에게 공격을 받았다—고민하지 않고 일단 저지를 줄 알았는데, 라는 반응은 세이도에서도 많이 들었기에 익숙했지만 진지하게 사와무라의 성적을 걱정하며 대학에 합격할 확률이나 구단에게 지명 받을 확률을 이야기하던 토죠와 타다노의 반응이 더 아팠다.

첫 라운드에서 후루야와 혼고의 이름이 불리기 전에, 사와무라는 세이도 부원들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면서, 도쿄의 대학으로 진학한 니시와 메신저를 나누던 것을 기억한다. 폰이 끊임없이 진동했다. 니시는 혼고는 지명 1위도 중요하겠지만 어쨌든 홋카이도로 가는 걸 제일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아니 저 녀석 홋카이도 말고 다른 구단은 생각하지도 않고 있다며, 홋카이도가 아니면 무슨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며 열변하다가, 다행히도 그렇게 되던 순간에는 잠시 말이 없었다. 홋카이도 구단에게서 이름이 불렸을 때, 혼고는 그동안 사와무라가 본 적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두운 색 모자 아래로는 언제나 인상을 쓰고 있는 듯이 보여서, 저렇게 안심하고 웃는 것은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당사자가 얌전한 것과는 달리 니시가 흥분한 듯이 몇 번이나 연달아 문자를 보내온 것은 그 후였다.

혼고는 홋카이도에 남게 되었고, 후루야는 홋카이도에서도 도쿄에서도 훨씬 먼 후쿠오카로 가게 되었다. 사와무라는 며칠 전에 후루야에게 가고 싶은 구단이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딱히 없는데—아, 아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 후쿠오카에는 누가 있더라, 사와무라는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기억할 수 없었다. 작년에 미유키를 지명한 것은 도쿄 구단이었고, 테츠 주장 학년에서는 프로로 간 사람이 없었다. 메타보 선배는 어디였더라? 조금 더 주의 깊게 들어둘 걸, 사와무라가 고민하는 사이에 이하 순위 지명이 이어졌다. 후루야도 알고 있을 이름이 나왔을 때 사와무라는 내심 안심했다.

분명 이 해에도 1라운드의 복수지명이 있었지만, 후루야나 혼고 중에 누가 복수지명을 받았고 누가 하즈레 1위였는지 대학생이 된 사와무라는 기억하지 못했다. 사와무라가 기숙사에 들어가기 전에 두 사람은 기숙사에 들어가 훈련을 시작했고, 리그와 연습과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 쫓기는 동안 둘은 데뷔를 했다. 그리고는 한 때 고시엔을 달구었던 라이벌 대결이 성사되었다. 드래프트 순위는 이미 중요하지 않았다. 사와무라의 기억에 남은 것은 그저, 친구들의 이름이 불릴 때 커다랗게 들리던 박수소리였다.

떨리지는 않았어?
많이.

지명 후에 사와무라는 모두에게 같은 질문을 했고, 그들은 모두 같은 대답을 내놓았다—아무렇지 않은 척 할 줄 알았던 무카이마저도 그랬다. 대답을 들은 고등학생 사와무라는 프로지망서를 내지 않은 것을 조금 후회했는지도 모르고, 만약에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면 하고 상상하고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사와무라의 기억은 애매했다.

대학생 사와무라에게는 주기적으로 그 선택을 후회할 때가 있었다—중간고사와 기말고사와 리포트 제출 기간이 찾아올 때면 특히나.

 

이제는 당당한 1군 선수로 자리매김한 혼고는 치바나 사이타마와 경기가 있을 때마다 연락을 했다. 첫 해에는 그렇게 바라던 홋카이도가 아닌 치바의 기숙사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그 때 혼고에게는 누구를 만날 여유가 없었다. 도쿄에 있는 이들을 찾게 된 것은 오히려 1군 정착이 확실시 되어, 이동이 더 잦아진 다음해부터였다. 바쁘지도 않은 것인지 사와무라와 만나자고 했다. 아니, 정확히는 단체채팅방의 멤버들과 였다. 그러나 그 멤버란 프로가 된 후루야나 무카이를 제외하면 대학에 진학한 토죠나 이츠키, 사와무라밖에 남지 않았다. 처음에는 라멘집, 가끔은 대학생들이 갈만한 가격대의 고깃집 같은 곳을 갔다. 학년이 올라가자 대학에서 교우관계를 넓힌 토죠와 이츠키가 동행하는 일이 줄어들었다—사실 같은 리그에 속한 그들과 사와무라는 굳이 따로 만날 필요는 없었다. 단체채팅창은 근황을 전하며 가끔 성적을 자랑하는 곳이 되었고, 그곳에서 시간이 안 되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듣는 일이 늘어나자 혼고는 이제는 사와무라에게 문자를 하고 있었다. 이제 와서는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사와무라에게도 물론 대학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혼고의 권유도 거절할 수 없었다. 프로선수가 여전히 그를 친구처럼 대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들은 그 정도로 친한 것은 아니었으니, 사와무라에게는 대학의 친구들이나 혼고나 새로 사귄 친구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얼굴을 볼 일은 많이 적은. 어쩌면 처음에 연락처를 물어본 것이 사와무라였기에 책임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책임감이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프로선수의 스케줄이 바쁘다는 것은 미유키나 다른 친구들을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이었는데, 혼고는 일반인이라 할 수 있는 사와무라와도 이렇게 만날 시간이 있는 것이 걱정이었다.

너, 따 당하는 건 아니지?
뭐?

갑작스러운 질문에 혼고는 인상을 썼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전보다 체격도 더 좋아져서, 저런 표정을 지을 때면 이전보다 더 험악해 보이기만 했다.

아니, 도쿄 쪽으로 올 때마다 만나는 거 같아서, 혹시 친구는 없는 건가 걱정되잖아.
……일 년에 서너 번이야.
프로로 간 사람들 중에서는 제일 자주 만나는 거야. 알고 있어?
그래.
토도로키는 아직도 기숙사에서 주는 밥이 맛있다고 자랑인데, 걔네 구단 기숙사에 내가 갈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뭐, 토도로키는 밋시마랑 아키바랑 친하니까 나까지 만나는 건 어려운 모양이야. 3년차인데 아직도 용돈 받아서 쓴다고.
용돈은 나도 그래.

무심코 혼고는 참견을 해버렸다. 프로 선수라고 해도 아직 이십대 초반. 사와무라와 나이가 같다. 용돈을 받는 생활에 불만은 없었는데 사와무라가 그것이 잘못된 것인 양 말하는 것이 조금 거슬렸는지도 모른다. 사와무라는 그것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어쨌든.

무카이는 있잖아. 처음에는 도쿄 밖으로 가야 한 게 불만이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거기도 지낼만하다면서, 언제라도 오면 자기가 밥이라도 사겠다고 그래. 그렇지만 대학 야구는 거기까지 갈 일도 없다고. 게다가 도쿄에 언제 오는지도 좀처럼 얘기를 안 해서, 글쎄 말이야 가끔 미유키 선배한테 소식을 듣는다? 내가 프로 일정이나 선발을 다 꿰고 있는 것도 아닌데 오기 전에 말이라도 해주면 좀 좋아?

혼고는 한신과 쿄진의 경기 일정이나 선발 선수를 모르는 것은 사와무라가 무심하기 때문이라고 말할까 하다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뭐,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신체리듬처럼 새겨져있는 고교야구 일정과 지금 사와무라가 있는 대학 리그 일정 말고 사와무라는 프로야구에 대해서는 박식하지 못해서, 아직까지도 먼저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혼고의 일정을 알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며 프로야구에는 세파 양대 리그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종종 잊는 모양이었으니까.

사와무라가 토로하는 불만을 듣고 있으면 따돌림을 당하는 것은 사와무라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물론 혼고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렇게 말하기는 하지만 사와무라에게는 밥이나 술을 먹여주는 선배가 한 가득 있었고, 챙겨야 할 후배도 잔뜩 있었다. 가끔 마사무네에게 연락을 하는 히데오의 말에 따르자면 사와무라와 약속을 잡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라고 했다. 너보다 더 힘들다고, 알아? 하고 물었던 것을 보면서 과장이 섞인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마사무네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자 히데오는 됐다며 한숨을 푹 내쉬고 고개를 저었다. 무카이와는 리그가 달라서 만날 일이 별로 없기는 했지만, 적어도 토도로키와는 가끔 사와무라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다. 혼고가 찾아낼 수 있는 사담에 어울릴만한 공통화제가 그 정도라서 그렇기도 했지만. 도쿄에서 만난다는 이야기에 토도로키가 부럽다는 표정을 보인 것이 얼마 전이었다. 아직도 도쿄까지 가는 법을 잘 몰라서 만나지 못한다는 말에 혼고는 웃었을 뿐이었다. 토도로키의 친구들과 사와무라의 대학은 다른데, 사와무라의 오해와는 달리 사와무라가 언급한 토도로키의 친구들은 토도로키의 경기를 보러 가는 쪽이라고 했다. 토도로키는 그들의 대학 이름을 잘 기억하지 못해서 뭉뚱그려서 도쿄라고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도쿄는 넓다. 히데오가 있는 코마자와 대학과 사와무라의 학교는 모두 도쿄에 있었지만 전철로는 40여분, 차로도 30분은 이동해야 하는 거리다. 치바에서 사와무라의 대학 근처까지 오는 데에는 그것보다 조금 더 긴 시간이 걸린다. 사와무라도 그것을 알고는 어느 정도 중간 위치에서 만나자고 한 적도 있었지만, 혼고가 운전을 시작한 지금은 약속장소는 다시 도쿄가 되었다. 애매하게 인적이 드문 곳보다 사람에 섞여서 숨는 것이 제일이라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사와무라가 이름을 말하지 않은 다른 한 명이 있었다.

후루야는?
가끔… 오프시즌에는 만나. 같이 세이도에 가서 감독님 얼굴 보자고 한 적도 있는데 내가 같이 가면 좀 그렇잖아? 이제는 내 얼굴 아는 후배들도 없고…….
넌 그런 거 신경 안 쓸 줄 알았는데.
혼자서는 가! 그렇지만 지금은……… 으응….

고기를 뒤집으면서 사와무라는 중얼거렸다. 혼고는 사와무라를 바라보며 잠시 입을 다물었다. 고등학교 때 사와무라는 후루야와 함께 대등한 입장에서 세이도의 얼굴이었지만, 등번호가 고정된 고교야구에서 두 명의 투수는 아무리 해도 그 대등한 입장에 서기 어렵다. 그것은 당사자들의 의식과는 다른 문제다. 1학년 가을 이후로 줄곧 에이스넘버를 달았던 혼고는 에이스라는 존재가 어떻게 보이는지 지겨울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그 때도 그랬는데 지금 후루야는 프로야구 선수가 되었고 사와무라는 대학 선수였다. 물론 사와무라가 그런 것을 신경 쓰는 것은 상대가 후루야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혼고는 짐작했다. 후루야는 여전히 사와무라를 이전과 같게 대하고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라이벌. 하지만 두 사람이 만나는 빈도도, 둘을 둘러싼 환경도, 사와무라가 보는 후루야도—많은 것이 바뀌었다. 후루야는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혼고가 생각에 잠긴 사이 사와무라가 화제를 바꾸었다.

너는? 니시 주장이랑은 안 만나? 엔죠나…….
렌지는 홋카이도니까 귀성하면 만나.
아, 그렇지.
가끔 경기 보러 오기도 하고.

좋겠다. 사와무라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도 누가 좋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경기를 보러 갈 수 있는 렌지일까, 아니면 경기를 보러 오는 친구가 있는 혼고일까. 어느 쪽도 부럽기는 했다. 혼고는 삿포로 돔은 가까우니까, 학교에서는 걸어서도 갈 수 있대 라는 말을 덧붙였다.

히데오 선배랑은 가끔. 얼마 전에도 이제 시즌도 끝나는데 밥 사라고 연락했었어.
하하하하. 아, 니시 주장은 곧 졸업이지?
응, 취업 예정. 전공이랑 관련 있는 쪽으로.
아. 그럼 이제는 선배가 사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게. 너는? 내년에.

혼고와 눈을 마주친 사와무라는 조금 자신이 없는 표정이었다.

뭐…… 우선은 졸업논문 준비해야.
지망서는? 우리 구단 스카우터도 보고 있다고 하던데.
응, 그건 알고 있어.

잠시 사와무라는 입을 다물었다. 젓가락을 집어서 접시에 있던 고기를 한 점 집어서 우물우물 거렸지만 고기 맛을 보느라 말이 없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그렇지만 스카우터들이 보는 사람은 많잖아?

사와무라의 말은 사실이다. 혼고의 팀만 하더라도 수많은 선수들을 보고 분석한다. 혼고의 귀에, 혹은, 대학야구도 그렇겠지만, 고교야구 현장에서 듣는 이름은 그 일부였다. 매년 고교야구 시즌이 끝나고부터 나오는 내년도 드래프트 후보라는 두꺼운 명단의 예측은 맞지 않기도 하다. 1위 후보라고 하던 선수가 1위로 지명되지 않는 것은 예삿일이며, 고시엔에서 지명도를 높인 선수여도 끝내 지명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여러 이유로 프로지망서를 내지 않는 선수도.

고등학교 시절 혼고는 끝내 프로지망서를 냈다고 보고하지 않은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는 그것을 밝히기에는 늦었다. 사와무라도 지망서를 내지 않은 이유를 털어놓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도 관계가 있는 이야기였다. 혼고가 아는 주변인들은 모두 사와무라가 두 번째 기회를 놓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사와무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후루야는 여전히 사와무라를 라이벌이라고 부르지만, 사와무라는 다시 후루야의 라이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일까. 3년 전에는 그렇다고 했다.

안 낼 생각이야?
그런 건 아니야. 그냥, 모르는 일이라는 거지.
……너, 우리 팀에 오면 좋겠다.
홋카이도는 너무 멀어—그렇지만 뭐, 어차피 나가노에서는 다 멀고. 아는 사람이 있는 팀이 좋겠지.
너한테는 안 그런 팀이 더 적잖아?
그렇기는 하네.
우리 팀에 하라다상도 있어.
우리 학교 선배는 아니잖아.

잠시 웃다가 사와무라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운명의 장난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1지명을 제외하면 드래프트는 모두 계산된 움직임이었다. 거기에 일개 선수가 끼칠 수 있는 영향력은 전혀,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없다는 것을 혼고는 알고 있었다. 남은 것은 사와무라가 성적과 몸 상태를 유지하는 것과, 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