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정

카네마루가 사와무라의 공부를 가르쳐주는 일은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게 되었지만, 사와무라가 쓰는 5호실이 아닌 카네마루의 방에서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오늘 5호실은 쿠라모치가 게임 시합을 한다는 이유로 시험 걱정이 없어 보이는 부원들과 함께 점거하게 되었다. 게임기를 텔레비전 앞에 세팅하는 쿠라모치에게 사와무라는 선배는 시험공부도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지만 평소에 공부하지 않는 네가 잘못이라는 말이 타이킥과 함께 돌아왔기에 사와무라는 공책과 필기구를 챙겨서 방을 빠져나갔다. 방에 있으면 선배가 또 심부름 시킬 거잖아요, 모치 선배랑은 달리 저는 공부를! 할 거라서 말입니다, 라는 말과 함께. 문이 닫히는 소리가 쿠라모치의 잘난 척 하지 말라는 목소리를 끊었다. 노크를 하고 카네마루의 방에 들어가자 카네마루는 벽에 붙어있는 책상 뒤로 접이식 상을 바닥에 펴놓고, 그 위로 교과서와 노트를 꺼내놓는 중이었다. 지난번 시험 때는 카네마루가 5호실에 찾아와서 사와무라를 감시한 것에 가까웠지만 이번 시험 때는 1군으로 올라온 카네마루도 공부할 시간이 줄어든 것인 모양이었다. 카네마루도 같이 공부하려고?—나 모르는 거 많을 텐데 괜찮겠어? 차곡히 쌓인 교과서를 바라보며 사와무라가 중얼거렸다. 그거야 이미 알고 있는 거잖아. 뭐, 너도 요새는 수업 듣고 있으니까 전보다는 낫겠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확신은 없었는지 말끝을 흐리며 카네마루는 사와무라를 쳐다보았고, 사와마루가 대답 대신 멋쩍게 웃자 카네마루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와무라에게 이 부분은 외우라며 노트 정리를 한 공책을 건네고 다른 과목을 시작한 카네마루는 어느새 자기 공부에 열심이었다. 교실에서는 사와무라가 앞줄에 앉기 때문에 카네마루가 공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사와무라는 새삼 떠올렸다. 카네마루가 연습에 어울려준 적은 몇 번이나 있었지만 마스크 없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집중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우등생은 다르구나, 하고 감탄하면서 눈을 공책으로 돌렸지만 여백에 낙서 하나 없이 정돈된 필기에 머리가 아파진 사와무라는 고개를 슬쩍 돌려서 카네마루의 방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방과 다를 바가 없는 구조였지만, 세탁물 바구니의 위치가 다르다거나 책장에 꽂혀있는 것들, 아무런 포스터도 붙어있지 않은 벽을 보면 여기가 5호실이나 미유키의 방과는 또 다르다는 것이 실감났다. 그리고 고개를 다시 돌렸을 때 눈에 들어온 책상에 사와무라의 시선이 멈추었다. 아무도 앉지 않은 의자에 앉아있던 그 사람이 떠올랐다. 사와무라가 기숙사 방에 있는 크리스를 본 것은 처음 만난 직후, 한 번 뿐이었다. 저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던 중이었는지 늦은 시간에 찾아온 사와무라를 향해서 몸을 돌리고는, 앞으로 1년 동안 두루마리에 적힌 메뉴대로 트레이닝 한다면 공을 받아주겠다는 말을 했었다. 여름이 끝난 후 크리스도 다른 방으로 옮겨서 그 책상 위에는 크리스의 소지품은 없을 것이었고, 이 방에도 크리스의 자취는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방학이 끝나면…….

어쩐 일로 조용히 공부를 한다 싶었더니 고개를 들고 멍하니 있는 사와무라를 발견한 카네마루는 들고 있던 펜으로 사와무라의 머리를 가볍게 때렸다. 사와무라. 딴 짓 하지 말라고. 페이지가 그대로잖아. 아, 미안, 미안. 머리를 긁적이며 노트를 넘기는 사와무라를 보자니 카네마루는 한숨만이 나올 뿐이었다. 답지 않게 감상적인 구석도 있는 녀석이었다. 그대로 두었더라면 시험공부를 하러 왔다는 사실도 잊은 채로 그대로 있었을 것이라고 카네마루는 확신했다. ……그렇게 선배가 보고 싶으면 나중에 선배네 방에 놀러가도 되잖아, 지금은 공부나 제대로 해. 카네마루에게는 3학년 선배들이 쓰는 방에 갈 일이 없었지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어느 날부터 크리스 선배를 쫓아다니며 3학년 교실까지 올라간 일이 있는 사와무라라면 그래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렇지? 선배 아직 졸업하지 않았고. 작은 목소리로 웃으면서 대답한 것을 보고 카네마루는 다시 교과서로 고개를 돌렸다. 공책에 샤프 끝이 스치는 소리 사이로, 분명 사와무라 딴에는 혼자서 중얼거린답시고 말한 것이, 들렸다. 그렇지만 나도 크리스 선배랑 같은 방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카네마루는 그것을 무시할까 하고 생각하며 입술 안쪽을 꾹 깨물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넌 좋았을지 몰라도 선배는 아니었을걸. 선배가 얼마나 고생했겠어? 훗, 하는 비웃음과도 닮은 카네마루의 웃음소리에 사와무라는 뭐야, 그게 라며 투덜거리고는 그제야 제대로 책을 붙드는 모습이었다. 사와무라가 제대로 공부를 하는 것을 확인한 카네마루는 진지한 표정으로 저 책상에 앉아서 하루 종일 정리한 노트에 적어둔 연습 메뉴를 두루마리에 옮겨 적던 선배를 떠올리면서, 사와무라가 이 방으로 들어왔다면 그 선배는 정말로 고생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