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idue

사진으로 남지 못한 것

 

사실 사와무라를 훨씬 전에 본 적이 있다고 쿠라모치가 깨달은 것은 외장하드에서 오래된 폴더를 정리하던 도중이었다. 지금 보기에는 그리운 사진들이었다. 투박한 머신에 그 위에 붙은 쿠라모치에게 익숙한 로고. 유럽에서는 보기 힘든—지금은 어떤지 잘 알 수 없지만—비키니에 가까운 의상을 입고 있는 일본색이 가득한 엄브렐라걸. 갓 햇병아리를 벗어났을, 아니 여전히 햇병아리였던 그리운 시절이었다. 지인의 소개로 지인의 지인이 일하고 있다는 래아상 팀의 개라지를 방문하나 것이 쿠라모치의 캐리어 터닝포인트였다. 선전물에 사용할 드라이버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종종 경기에 불리게 된 그는 어느 순간부터 장거리 여행을 마다하지 않고 다른 시리지를 찾아서 서킷을 찾게 되기도 했다. 스포츠 사진의 분위기가 스튜디오 촬영과 다른 것이 매력적이었다. 작업량이 줄어들 리는 없었고 이동시간까지 더해졌고 그만큼 지출도 커졌기에 마찬가지로 고된 일이었지만, 말 그대로 찰나의 순간에 그 속도를 담는 일이 즐거웠다.

그날도 그렇게, 경기를 촬영하러 갔을 때였다. 평소와는 다른 국내 카테고리. 피트레인으로 출근을 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아주 조금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피트레인에 못 보던 얼굴이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누구에요, 저거? 저기, 무슨 혼자 셀레브리티 티 내는 거.”

쿠라모치의 질문을 받은 남자는 힐끔 손가락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더니 아아—하는 말과 함께 답했다.

“셀레브리티 맞아, 이쪽에서는. 나루미야잖아.”
“나루미야? 들어 보기는 한 것 같은데…….”
“응, 쿠라모치도 이름은 들어봤을걸. 내년에 포뮬러 원에 올라가는 그 나루미야 메이. 올해까지는 지피2에 있지만.”
“아아……”

쿠라모치가 기억이 난 척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는 설명을 이어갔다. 전에 일본에 있을 때 잠깐 저쪽 팀이랑 있었거든. 그러고 보니 저쪽 팀에서 같이 있던 엔지니어도 그 때 쯤에……. 남자의 설명을 반쯤은 한 귀로 흘리면서 쿠라모치는 저쪽 개라지의 피트월을 바라보았다. 밝은 색 머리 위로 선글라스를 올린 나루미야는 난간에 기대 개라지를 바라보다가 입술을 삐죽이더니 옆 사람에게 무어라 말하기 시작했다.

 

빈자리가 반쯤 보이는 관중석이 저 너머로 보였다. 시케인 직전에 속력을 줄이는 머신에서 덜컥덜컥 거칠게 나는 소리가 귀마개를 뚫고 들어왔다. 익숙하면서도 평소에는 들을 수 없는 낯선 소리가 쿠라모치에게는 아직도 완전히 익숙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익숙하지 못한 것이 하나 더 있다면, 쿠라모치의 눈앞에서 벌어진 크래쉬. 쿠라모치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면 저 둘은 피트레인 출구에 가까운 개라지를 쓰는 팀의 머신이었다.

눈이 반사적으로 사람을 쫓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버릇이었다. 드라이버들이 시트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시작으로, 서킷 가장자리에 멈추어선 머신을 향해 마셜들이 달려왔다. 다행히도 트랙 위로 데브리가 많이 튀지는 않았다. 잠시 옐로 플래그가 나왔다가 경기는 정상적으로 재개될 것이다. 트랙 위에서 머신들이 레이싱라인을 따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만큼, 경기를 잠시 늦추는 이레귤러가 일으키는 일련의 흐름 속에 놓인 사람들을 계속 따라갈 수 있다면—물론 한 곳에서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하는 쿠라모치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피트까지 그들을 옮겨줄 스쿠터를 기다리는 드라이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난간 위에 올린 헬멧에 턱을 괴고 트랙을 바라보는 선수와, 그 옆에서 헬멧에 양 손을 올리고 있는 선수. 움직이지 않는 머신도 그들을 따라서 곧 개라지로 옮겨질 것이다.

 

머신의 크래쉬가 아닌데다가, 큰 스토리도 없는 그런 사진의 수요는 하위클래스에서는 없다시피 했던 데다. 크래쉬는 지극히 평범한 크래쉬였고, 인물이 담긴 것은 얼굴이 제대로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메모리카드의 일부를 차지했던 그 몇 장은 쿠라모치가 하드디스크에 묻어두었던 사진이었다. 저 때의 선수명단이 있던가—쿠라모치는 사진 한 장과 함께 돌아온 기억을 확인하고 싶었다.

“사와무라. 사와무라!”
“왜요?”
“잠깐 여기 와 볼래?”

쿠라모치가 남기지 못한, 아직 십대의 사와무라가 보였던 얼굴을 조금이나마 알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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