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하키병 네타

이사시키랑 순정만화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마이너한 순정만화에서 나오던 것이 현실로 일어났다는 소식을 야구부에서 제일 먼저 접한 것은 이사시키였다. 하. 멍하니 같은 반 여자애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얼빠진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거 만지면 전염된다니까 조심해. 라는 설정까지. 이사시키 군한테는 고시엔이 있잖아? 반쯤은 장난처럼 말하며 그녀들은 꺄르르륵 웃었다. 이쪽은 이미 원작을 읽은 파라서 다 알고 있는 이야기였는데—아니, 현실의 클래스메이트에게서 듣고 있자니 모두 말 그대로 만화처럼 느껴졌다. 꿈이라도 꾸는 건 아닐까 싶었지만 이사시키의 옆자리에서 그들은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지만 솔직히 좀 징그러울 것 같아, 어떻게 꽃을 토해? 토하는 게 아니라 그냥 뱉어낸다는 것 같던데, 옆 반에…….

만화가 현실이 된 거라면 조금은 재미있어 해도 되지 않을까. 사와무라의 생각과는 달리 이사시키는 불만에 가득 찬 표정으로 식당에서 모두에게 주의하라고 이야기를 꺼냈다. 운동부에 속해있는 남고생에게는 아무래도 이상한 이야기였고, 애초에 그것이 그들과 무슨 상관인지, 주의를 할 일이 뭐가 있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이사시키는 소리를 높였다. 요하자면, 사와무라가 이해하기로는, 이사시키의 논지는 멀쩡한 남자 고등학생씩이나 되어서 짝사랑이다 뭐다 하며 꽃이나 내뱉는 그런 꼴을 보이면 우습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었다. 선배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사와무라의 질문에 식당에서는 약간의 웃음과, 사와무라를 향한 시선이 쏟아졌다.

방주인은 빠져나가고 없는 미유키의 방에서 유우키와 바둑을 두고 있던 사와무라는, 그날따라 후루야가 늦은 덕에, 그리고 아마도 아까 식당에서의 일 때문에, 옆에 붙어서 훈수를 두는 이사시키마저 견뎌야 했다. 후루야가 오지 않으면 수염 선배가 마사지마저 시킬지도 모른다고 사와무라가 생각하던 와중 방문이 열렸다. 후루야! 늦었잖아! 사와무라가 소리쳤지만 후루야는 사와무라에게 뭐라고 말하는 대신 옆에 앉아있는 이사시키를 바라보았다. 이사시키 선배. 장기판으로 다가와서 네 변 중 빈 자리에 앉으며 후루야는 말을 이었다. 아까 선배가 말한 꽃이라는 거…… 혹시 이런 건가요? 후루야는 대담하게도 장기판 위에 손에 들고 있던 쪽지를 펼쳐놓았다. 종이 밑으로 장기말이 몇 흐트러진 것 같지만 그런 것은 장기를 두던 두 사람을 포함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러브레터 같은 것이었지만 이름도 없었고, 만나자는 요구 같은 것도 없었다. 그저 좋아한다, 응원하겠다는 말 뿐이었다. 다만 특이한 점이라면 압화가 붙어 있다는 것. 이거…… 만졌어? 후루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꽃이 정말 누군가의 짝사랑의 증거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하필이면 이런 타이밍이었기에 그렇게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사시키도 실제로 누군가가 토해낸 꽃이 보통 꽃과 어떻게 다른지 알지 못했기에 구분할 수 없었다. 그의 애매한 답에 방안은 더더욱 조용해졌다. 이사시키는 얼굴을 한껏 찡그리며 장기판 위의 쪽지를 바라보았다. 일단 그건 네가 처리해. 다른 사람이 만지지 못하게. 태워버리든지 묻어 버리든지. 이사시키의 대답에 후루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후루야에게는 그렇게 말했지만 이사시키야말로 불안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장기판 위에 잠시 머무른 종이가 사라졌다. 유우키가 판 중앙에서 공방을 하던 장기말의 전열을 다시 갖추는 대신 일학년 두 사람에게 우롱차를 주문하자 다물고 있던 다른 입들이 열렸다.

후루야, 좋아하는 사람 있어?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음료수를 꺼내며 사와무라가 질문을 던졌다. 왜? 수염 선배가 말한 거, 좋아하는 사람이 없으면 당장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거잖아? 짝사랑을 하면 나타나는 거라니까. 다시 한 번 자판기 버튼을 누르면서 사와무라는 중얼거렸다. 선배가 왜 그렇게 난리인지 모르겠어. 딱히 어디가 아파지는 것도 아닌데. 사와무라에게는 모두 간단한 문제인 것 같았다. 순정만화적인 상황과 사와무라는 어울리지 않았고, 실제로 사와무라가 하는 말은 꽤나 객관적이며 논리적으로 들렸다. 평소의 그에게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사와무라는 마지막 음료수를 건네며 후루야를 바라보았다. 거기다가, 네가 짝사랑을 할 일도 없을 것 같아. 그래? 응—인정하기는 싫지만 어쨌든 너도 야구랑 얼굴만큼은 괜찮으니까. 정말로 인정하기 싫었던 것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끝마친 사와무라의 미간에는 주름이 살짝 남아있었다. 사와무라도 저렇게 말할 정도면 정말 심각하게 고민할 것은 못 되는 것 같았기에 후루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돌아가자는 재촉을 했다. 다만, 역시 야구를 잘 하는 것과 짝사랑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것인지는 조금 이해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이 어기적거리며 일어나서 방에서 나가자 이사시키는 중얼거렸다. 하필 꽃이라니 참. 테츠야는 쥰을 잠시 바라보았다가 장기알을 통에 담아서 장기판 위에 가지런히 놓았다. 장기판 위의 선이 상자 한쪽과 딱 맞닿아 있었다. 이사시키는 순정만화를 좋아했다. 순정만화 속의 짝사랑은 예쁜 것이다. 사랑을 하는 여자아이는 예쁜 것이다. 그렇게 보였다. 꽃이라는 것을 날숨과 함께 내뱉는 것으로 짝사랑을 확인한다. 닿을 리가 없는 종이 너머의 꽃은 아무런 해가 없었다. 만화일 때는 몰랐다. 후루야에게 전해진 쪽지에 붙어있던 꽃을 보았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꽃이라는 예쁜 것의 형태를 갖는다고 해도 숨겨질 리가 없다. 숨과 함께 팔랑거리며 갈피를 잡지 못한 채로 날아가는 꽃잎처럼 가볍지도 않았다. 뿌리를 내리고 퍼지고 자라며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이다. 사랑, 꽃을 피우면 그와 함께 꽃가루도 퍼뜨려서는 누군가를 괴롭힐 것이다. 이사시키 군한테는 고시엔이 있잖아? 정말로 그랬다. 짝사랑도, 아니 사랑도, 고시엔도, 모두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