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사와, au

바둑 기사인 유우키 테츠야가 보고 싶다, 에서 시작한 au 대충 쇼와 시대라는 느낌으로.

 

얼마 전에 신문에 실린 기보를 읽었다는 것을 보면 글은 아는 모양이었다. 글을 안다면 공부를 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일단 기보를 읽을 줄 안다는 것은 긍정적이었다. 다만 얼마 전의 대국이라면 내용이 조금 아쉬웠다. 그것을 소년이 얼마나 이해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타키가와는 최대한 긍정적인 점을 떠올려 보려고 했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렇지 못한 점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일단 걸리는 것은 나이였다. 바둑의 재능은 열 살 즈음에 나타난다는 것이 정론이었지만, 가능하다면 어릴 때 발견하는 것이 좋다고, 중국에서는 이미 그리 하고 있다고 최근에는 이야기되었다. 무릎을 꿇은 채로 찻잔에는 손도 대지 않고 타키가와를 올려다보는 소년은 이미 열다섯이 넘어서 열여섯 생일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바둑을 두었다고 해도 누군가의 문하로 들어가기에는 조금 늦은 나이일지도 모른다. 평균적으로는. 게다가 제자로 받아들여주십시오 라는 부탁을 이렇게 사전 연락도 없이 본인이 직접적으로 하는 일도 일반적이지 못하다—무례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사실 소년을 집에 들여서 차까지 내온 것은 대문 앞에서 대뜸 보인 당황스러운 행동 때문에 더 이상의 주목을 끌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나이가 문제인 것은 타키가와도 마찬가지였다. 제자로 받아달라는 말을 들은 타키가와 본인도 아직 스물이 넘지 않은데다가 입단한지 몇 년 되지 않은 입장이었다. 바둑계에서는 젊은 나이. 연구회에 참가하는 일은 있어도, 제자를 받을 수준은 되지 못한다. 게다가 제자를 받고 싶다고 해도 아직 부친과 함께 사는 그로서는 그런 형편도 되지 못한다. 제자로 받아달라는 말은 내가 아니라 다른 분한테 하는 게 좋을 것 같구나. 타키가와는 상대를 단호하게 거절하는 성격은 되지 못했다. 그리고 그랬다가는 눈앞에서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도 조금은 걱정스러웠다. 최대한 부드럽게, 그렇지만 확실하게 상대를 돌려보내야 했다. 근처의 다른 선생님을 소개시켜 주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제자를 받을만한, 그리고 그 제자가 이런 성격이라도 괜찮을 것 같은 분이 계시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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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순위를 정하는 능력에서는 불합격. 타키가와는 고심 끝에 제자라는 거창한 이름으로는 부르지 않지만 사실상 그것이나 다름없는 역할로 소년을 대하자는 결심을 세웠다. 물론 대단한 일을 할 계획도, 그럴 형편도 되지 못하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상대해 주는 것으로 그치겠지만 타키가와에게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단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사와무라가 꺼낸 말이 타키가와가 예상한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까지는 첫인상대로의 대답이었지만, 걱정 마십시오, 그렇게 오래 폐를 끼칠 생각은 없습니다, 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타키가와는 눈살을 찌푸리고, 그러나 한숨을 쉬지도 화를 내지도 않은 채로 사와무라를 바라보았다. 시선 이외에 아무런 반응이 보이지 않자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소년은 입을 열고서는 설명을 시작했다.

애초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사사할 정도의 실력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 타키가와는 결정을 미루기로 했다. 일단 실력을 봐야 할 테니 바둑을 한 판 두어보자고 말했다. 단숨에 표정을 밝게 한 사와무라가 입을 여는 순간 타키가와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다음번에. 다음이라는 말에 사와무라는 대번 실망한 표정을 보였지만 그 정도는 기다릴 수 있다고 말했다. 목소리의 기합이 처음보다는 줄어들어 있었다. 그 다음이라는 것은 며칠 뒤로 정했다. 선약이 있었기에 이삼일 집을 비울 예정이기도 했다. 다음에 뵙겠다며 꾸벅 인사를 하고 길을 걸어가다가 몇 번이나 뒤를 돌아서 손을 크게 흔드는 사와무라를 보면서 타키가와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쪽은 그 며칠 뒤가 오기를 기다리겠지만, 타키가와로서는 다만 문제를 며칠 뒤로 미룬 것에 지나지 않았다. 적어도 내일 만날 사람들에게 좋은 이야깃거리는 될 것이다. 겨우 소년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타키가와도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돌아가며 그는 소년에게 자신의 스승을 소개해주고자 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검토해 보았다. 다만 그러기에도 명분이 필요했다. 바둑을 두어보자는 것은 그런 이유였다. 재능이 없는 것이라면 자신이 거절하면 되는 일이다. 미안하지만 너무 늦은 것 같다고, 자신은 취미로 바둑을 두려는 사람을 제자로 받을 처지가 되지 못한다고 하면 될 것이다. 미안하지만. 만약, 만의 하나, 재능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든 설득해서 역시 자신보다는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나게 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서 좋은 해결책이었다. 물론 타키가와가 생각한 제대로 된 스승에게는 쓸데없는 짐이 될지도 모른다. 다만 타키가와의 스승이면 이런 부류의 젊은이도 겪어보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동문 중에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런 성격의 인물은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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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키 테츠야는 정식 대국에서 초읽기에 들어갈 때면 수가 흐트러지곤 했다. 표정으로는 드러나지 않았고, 돌을 두는 손의 움직임에서 나타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서둘러서 돌을 놓는 법도 없었지만 가끔 어떤 수를 읽은 것인지 궁금해질 때가 있었다. 호수가 될 때도 있었고 악수가 될 때도 있었는데 아직까지는 후자의 경우가 더 잦았다. 복기를 할 때도 말 수가 많은 성격은 어디 가지 않았기에 제대로 된 설명을 들어본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유우키가 속기에 서툰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타키가와는 유우키와 하루에도 몇 판이고 바둑을 두던 시절을 기억한다. 카타오카 문하에는 문하생이라고 불릴 만한 이들이 꽤 있었지만 유독 그 두 사람은 달리 취미란 것을 갖지 못한 듯이 바둑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앉았을 때는 말보다 돌이 바둑판에 닿는 소리가 울릴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유우키에게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고 이사시키가 말을 꺼냈을 때, 타키가와는 잘 되었다고 대답했다. 무엇인지는 묻지 않았다. 무엇이 되었든 다른 취미라는 것이 중요했다. 설마 그 다른 취미라는 것이 또 다른 보드게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사시키가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던 것을 타키가와는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다가……? 유우키에게 묻자 뒤에 앉아있던 이사시키가 고개를 들었다. 아, 내 잘못일지도. 이사시키는 순순히 죄를 시인했다. 유우키는 작게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시키는 얼마 전, 다른 문인들과의 모임에서 어느 쇼기 기사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누군가의 지인으로 그 자리에 나왔지만 문인들 중에는 바둑이나 쇼기에 관심을 두는 부류도 있었기에 금세 어울리게 되었다. 그 쇼기 기사는 이사시키의 지인 중에 바둑 기사가 있다는 것에 흥미를 가졌고, 두 사람의 업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이사시키였지만 사람은 마음에 들었던 이사시키는 흔쾌히 둘을 소개시켜 주었다.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체스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잖아? 돌을 내려놓으며 조금 아쉽다는 듯이 타키가와가 웃었다. 아, 조금 미안하게 되었네. 미안할 것까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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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키가와가 예상한 대로였다. 자신의 집에 찾아온 사와무라라는 이름의 소년은 그날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이상한 녀석. 이사시키가 말한 것은 사와무라의 첫마디를 듣고 타키가와가 생각한 바로 그것이었다. 그렇지. 내쫓아버리지 그랬어. 그건 좀. 타키가와가 유우키의 새로운 취미에 대해 관심을 표한 것처럼 유우키 역시나 그 이야기에 흥미를 보이고는 다른 이들이 던지는 질문에 대답하는 타키가와를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필시 본인이 던지고 싶은 질문을 누군가가 먼저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임이 파할 때가 되어서야 유우키는 타키가와에게 다가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괜찮은 애라면 정말로 가르쳐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글쎄, 썩 내키지는 않는데. 제자가 스승을 선택하는 일도 드문 일이잖아. 확실히 그것은 그랬다. 처음, 혹은 두 번째로 가르침을 받는 상대에 대한 선택권은 어지간해서는 주어지지 않는다. 대개 열 살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나 할아버지 같은 윗사람 손에 이끌려서 선생님을 소개받고, 접바둑을 두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였다. 솔직히 말하지 그래, 테츠. 그냥 특이한 사람 둘이 모이는 게 보고 싶은 거지? 타키가와가 대답을 망설이고 있자니 이사시키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유우키가 마음도 없는 타키가와에게 공연한 말을 한 것은 아닐까 분위기를 가볍게 바꾸려는 생각도 있었지만, 반쯤은 이사시키 본인의 속마음이다—유우키 역시나 그런 생각을 했으리라는 확신도 있었다. 이사시키는 유우키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특이하다라—그런 거라면 아버지한테 소개시켜 주는 게 낫겠어. 타키가와가 아버지를 언급하자 유우키는 심각한 표정을 조금 풀고 웃었다. 농담이 아니야. 어쨌든 직접 찾아올 정도라면 배짱만은 대단하지 않나. 아, 네가 농담한 것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어. 테츠가 그렇게 말하니 생각해 보도록 하지.

그런데 그 배짱은 어디로 간 것일까. 첫인상과는 달리 의외로 조용했다. 지난 일주일간 거의 매일같이 타키가와를 찾아온 사와무라였지만, 타키가와가 알고 있는 것은 그의 이름과 나가노에서 잠시 도쿄로 상경했다는 사실뿐이었다. 조용한 것은 싫어하지 않았지만 타키가와는 그저 사와무라가 단기간에 이렇게나 태도를 바꾼 것이 조금…… 익숙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강렬한 첫인상 때문에 그런 일반적인 반응이 오히려 실망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무엇을 기대했단 말인가.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이 그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일상을 흔들어 놓기를, 흐트러뜨리기를 바랐던 것일까. 정작 사와무라는 타키가와가의 담 안으로 들어온 후에는 그곳의 규칙을 따르는 데에 아무런 문제를 보이지 않았다. 시끄럽던 목소리는 처음보다는 조금 작아졌다. 모르는 것은 많은 모양이었지만 타키가와가 설명을 할 때면 그것을 끊는 일은 없었다. 주로 말을 하는 쪽은 타키가와였는데, 사와무라가 돌아간 후로는 조금 피로를 느낄 때도 있었다. 그렇기에 이렇게 말없이 바둑을 두는 것이 휴식처럼 느껴졌다. 입을 꾹 다물고 손은 무릎 위에서 주먹을 쥔 채로 판 위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빠져있는 사와무라를 바라보며 타키가와는 슬쩍 쓴웃음을 지었다. 바둑을 두는 것을 수담을 나눈다고도 표현하는데, 이야기는 실제로 입을 열 때야 이뤄진다. 돌을 두는 손도, 바둑돌도 말을 하지 않는다. 바둑을 두는 것으로 알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지금은 돌을 두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