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라사와

당신은 쿠라사와(으)로 「종이 한 장 차이」(을/를) 주제로 한 420자의 글 or 1페이지의 그림을 연성합니다. http://kr.shindanmaker.com/444945

저런 사와무라의 말버릇 같은 말을 주제를 준 진단메이커가 나빴다.

 

기말고사가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시험에 낙제하면 시합에 나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패널티는 없지만, 수험공부에 열심이었던 선배들은—특히 수염 선배가—진로 이야기를 꺼내며 기말고사에 대한 압박을 주었다. 내가 책상에 앉아서 코크보드까지 풀로 활용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는데, 쿠라모치 선배는 낙제를 피하겠다는 이런 노력을 칭찬하기는커녕 방해하겠다는 속셈인지 게임 삼매경이었다.

선배.
아아?

소리를 좀 줄여달라거나 하는 말을 해볼까 했지만 별로 기분 좋은 목소리가 아니었기에 포기하기로 했다.

아니에요.
그렇게 할 일이 없으면 나가서 음료수나 사 오지 그래?
에에에 이런 추운 날씨에 후배를—
응, 콜라.
그럼 돈…
갔다 오면.

툴툴거리면서 의자에서 일어나 마스코선배가 쓰던 침대에 걸쳐둔 운동복 윗도리를 걸쳐 입고 운동화를 신고 5호실을 빠져나왔다. 으아 추워. 몸을 움츠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고는 주머니 속에 동전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백 엔짜리 동전과 십 엔짜리와 오십 엔짜리까지 골고루 있었다.

기숙사 건물의 지붕을 벗어나자 머리 위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곧 뺨에도. 눈은 아닌 비였다. 나가노라면 벌써 첫눈을 보았을 텐데 도쿄에는 눈이 늦게 찾아온다고 했다—거기다 많이 내리는 것도 아니라서, 쌓이지 않을 거라고 했다. 자판기 앞에 섰을 때 비는 보슬보슬 가볍게 쓰다듬듯이 떨어지고 있었다.

 

방문을 열자 선배가 뒤를 돌아보고는 나를 맞았다.

갔다 왔습니다.
오우.
그것도 잠깐이었다. 다시 화면에 집중하는 선배의 옆으로 다가가 앉아, 윗옷 주머니에 손과 함께 넣어둔 음료수를 선배 앞에 내려놓았다. 주머니에 넣어서 오기에는 조금 큰 콜라 캔이 빠져나가자 주머니 안에는 차가운 기운만 남았다.

밖에 비와?
조금요.

고개를 끄덕이며—그것이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대답하자 선배는 입을 다문 채로 으응 하는 소리를 내뱉었다. 어쨌든 심부름을 완수한 나는 선배가 게임을 하는 것을 구경할 마음은 없었기에 바닥에서 일어났다. 윗옷은 벗어서 옷걸이에 걸어두고 다시 책상에 앉았다. 반대쪽 주머니에 있던 따뜻한 레몬 음료를 양손에 쥐고 차가워졌던 오른손을 녹이면서, 잠시 그대로 책상 위로 몸을 기댔다. 덮어놓지 않은 교과서 종이가 뺨에 닿았다.

머리 위를 수건이 덮은 것은 잠시 후였다.

어?
제대로 말려.

수건 위로 손이 난폭하게 움직이며 수건과 머리를 엉클어트렸다. 선배를 멈추려고 양 손을 수건 위로 올렸을 때야 손이 수건에서 떨어졌다.

그런데 선배 콜라값은…?
아—잔돈 생기면 줄게.
저번에도 그랬으면서!

어차피 빈말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는 수건 아래로 화를 내면서 선배를 째려보았다. 선배는 그래서 어쩌려고? 라는 듯이 웃으면서 다시 등을 돌리고 게임기를 붙잡았다. 나도 선배에게 들리라는 듯이 혀를 차고는 그다지 젖지 않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고 다시 공부하기 위해 책을 들여다보았다. 물에 젖은 자국이 하나둘 한쪽 페이지에 자글자글한 주름을 만들어 놓았다. 수건을 머리에서 잡아 당겨 내리고, 미지근해진 핫레모네이드의 뚜껑을 열었다. 비타민C가 잔뜩 들었다고 했다. 시고 달았다.

아직 선배와 나의 좋아한다는 기분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싫어와 좋아가 종이 한 장 차이인 것처럼. 하지만 이런 때면, 가끔은, 팔랑거리며 얌전히 있지 않는 그것이 종이 한 장의 앞 뒤 어느 쪽인지 애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