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사와

F1 au

 

아직 12시를 지나지 않은 오전, 날은 맑음, 적당히 선선한 바람에 여름의 한중간이라는 것을 잊을 것만 같았다. 사와무라는 패덕과 그랜드스탠드에서 조금 떨어진, 서킷의 한중간에 서있었다. 스쿠터 뒷자리에 앉혀져서 끌려온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지만 이곳에 있는 것을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 어디에 카메라를 든 사진기자가 있는 것은 아닐까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아직 시즌이 끝나지 않았고, 이곳에서는 남의 팀의 프라이빗 테스트가 진행 중이었다. 가드레일 너머, 잔디 너머의 트랙을 바라보았다. 곧 등 뒤로 요란한 엔진소리가 들려왔고 눈앞으로 커브를 매끄럽게 통과하는 머신이 보였다. 네 번째로. 눈에 그것을 담는 것은 잠시 뿐이었다. 다시 눈앞에 평화로운 여름 풍경이 돌아왔다.

“어떤 것 같아?”
“……뭐가요?”
“글쎄, 전체적인 인상 같은 거.”

타카시마의 미소에 사와무라는 입을 다물었다. 대답을 머뭇거리며 고개를 숙였을 때 가드레인을 꽉 잡고 있던 손이 보였다. 슬며시 손을 떼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다시 트랙을 바라보았다. 테스트 중인 머신이 다시 가까워지는 것이 들려왔다. 사와무라는 고개를 돌려, 몇 코너 전부터 머신이 그들을 지나치는 것을 바라보았다. 마지막 코너를 지나친 머신은 긴 홈스트레이트로 빨려 들어갔다.

사와무라가 이곳으로 불려온 의미는 분명했다. 적어도 그 자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보고 있는 것은 딱히 즐겁지 않았다.

“빠르네요, 차도 그렇고 누군지는 모르지만 저 사람도. 솔직히 왜 타카시마 씨가 저랑 이야기하고 계신지 모르겠어요.”

저런 드라이버가 있는데. 타카시마의 눈을 피한 채 사와무라는 중얼거렸다.

“어머, 기억력이 그렇게 나빠서 어떡하려고.”

그 얘기는 벌써 하지 않았니? 타카시마가 웃으면서 사와무라에게 되물었던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 아직도 모르겠어.’

아홉 번째 레이스 주말이 시작되어서, 금요일의 연습 세션도 끝났다. 그 비밀스러운 만남도 벌써 작년의 일이 되었다. 사와무라는 아직까지도, 가끔, 자신이 레귤러 드라이버 라인업에 포함된 이유가 무엇인지 자문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싫은 것은 아니었다, 절대로. 단 하나 싫은 점이 있다면 익숙하지 않은 외국어로 몇 개씩이나 되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 그 다음으로는 전 일본의 서킷이 아니라 전 세계의 서킷을 돌아다녀야 한다는 점이었지만 그런 것을 감내할 정도로 세상에서 제일 빠른 차를 몰 수 있다는 점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었다. (사와무라가 속한 팀이 아직까지 겨우 한자리 수의 득점을 한 것은 넘어가더라도 말이다.) 속도에 대한 갈망은 드라이버의 덕목이었고 사와무라도 그것만은 잘 갖추고 있었다. 그렇지만 빨리 달리는 것과 경주를 완주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시즌도 거의 반이 지나서, 새로 들어온 루키들의 이름에도 관객들이 조금은 익숙해졌을 시기였지만, 사와무라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지. 이제까지 있었던 여덟 경기 중 리타이어 한 것이 반 이상이었다. 피니쉬 라인을 넘은 경기보다 경기를 다 끝내지 못하고 패덕으로 돌아왔던 적이 더 많았다. 그나마 그 중의 반이 머신 문제라는 것과, 다른 드라이버를 말려들게 한 적은 한 번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을까. 어찌되었든 사와무라에게는 실망스러운 결과일 뿐이었다—결과에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실망스럽게만 느껴졌다.

어렵다는 것은 알았지만 처음에 기대한 것은 완벽한 레이스였다. 우승까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만족할 수 있는 결과. 개막전 결과 테이블에서 사와무라의 이름은 테이블의 아래쪽, 리타이어를 한 선수들 중에 섞여있었다. 시작하자마자 턴1에서 일어난 대형 충돌에 말려들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다음에는 기준이 내려가서 완주가 목표가 되었다. 완주는 다행히도 세 번째 경기에서 처음 찾아왔다. 하지만 그 이후가 문제였다. 리타이어와, 실수의 연속. 지지난 경기에서는 다시 완주, 하지만 다시 리타이어. 한 달간의 여름 브레이크가 시작하기에는 아직도 대여섯 경기가 남아있었다. 침대에 누워있던 사와무라는 한숨을 내쉬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기로 했다. 이럴 때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제일이다.

 

사와무라는 저녁 때 트랙에서 가볍게 뛰는 것을 좋아했다. 트랙워크나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배운 것들을 되새김해 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어느 코너, 어느 스트레이트가 공략 포인트라거나, 이 부분에서 조심해야 할 것 같은 조언을 떠올리면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지도에서 보는 서킷 레이아웃과 머신을 타고 달리는 트랙, 그리고 지금처럼 발로 느끼는 트랙은 모두 다른 느낌이다. 지금과 같은 때에는 트랙은 꼭 기다란 직선이나 다름없는 단순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최속 300킬로미터를 넘는 머신 안에서 중력가속도와 함께 느끼는 서킷은 언제 그를 잡아먹어도 이상하지 않는 무서운 존재가 된다. 순식간에 그를 빨아 삼켰다가 매끈한 탈막을 벗어난 그라벨 베드로, 타이어월로 뱉어버리는 괴물도 될 수 있다.

피니쉬라인을 얼마 앞두고 사와무라는 다리를 멈추었다.

‘혹은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기운을 빨아먹거나.’

숨을 길게 내쉬는 사와무라에게 떠오른 말이었다. 저녁 공기가 갑자기 차갑게 느껴졌다. 숨을 들이마시는 내내 몸이 부들거렸다. 내일은 예선. 날이 밝아지면 머신 안에서 이곳을 달린다. 피트월로 내거는 피트보드도 봐야 할 것이고, 무선으로 들어오는 정보도 소화해야 한다. 일요일의 시작점을 결정하기 위해서. 그렇지만 일요일에 저 피니쉬라인을 지나 체커플래그를 받을 수 있을까. 사와무라가 처음으로 보았던 머신은 완벽해 보였다. 정오가 가까워지는 햇빛을 받으며 빛나고 있었다. 체커플래그를 지나는 머신은 그렇게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딘가의 이상으로 멈춰 서있는 것은 그렇지 않았다.

‘타키가와 씨는 어째서 서드 드라이버인 걸까.’

비밀리에 이뤄졌던 프라이빗 테스트를 했던 것이 그 사람이라고 알게 된 것은 연말에 있던 합동 테스트에서였다. 타키가와 크리스 유우. 사와무라에게는 선배뻘이 되고, 그 테스트에서 사와무라보다 좋은 기록을 낸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금요일 연습 세션에만 참가하는 테스트 드라이버. 하지만 모든 일에 사와무라보다 익숙해 보였다. 개라지에서의 타키가와는, 아니 온보드 영상으로 보는 그도, 완벽하게만 보였다—모두 사와무라가 그렇지 못한 것이었다. 천천히 걸음을 다시 시작했던 그는 스타트라인 아래에서 멈추었다. 다시 뛰기 시작할 마음이 들지 않았기에 사와무라는 다시 한숨을 내쉬고 벽에 등을 기대고는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스타트라인. 스타트라인조차 통과하지 못했던 얼마 전의 경기가 떠올라서 사와무라는 피식 웃었다. 키득거리는 것을 멈출 수 없어서 그 자리에 앉아서 소리 내어 끌끌 웃기 시작했다. 웃음소리가 꾹 누른 울음소리로 바뀌었을 때는 눈에도 눈물이 들어차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