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아카데미 극장에서 탑건 매버릭 본 날

이미지올해 상영작 라인업. 작년보다 상영일수가 늘어난 것 같음.

건물 안 곳곳에 예전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었는데 개봉날짜는 임의로 적어둔 모양. 위쪽에는 쥬라기공원 포스터가 있었는데 4월 개봉이 아니었던 거 같은 기억이….

아카데미 극장에서 연말에 영화 상영회를 한다는 걸 작년에 알았는데, 작년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걸어도 걸어도>를 봤었음. 근데 올해는 상영작중에 탑건이 있어서 이런 관에서 볼 일이 얼마나 있겠냐 하고 신청함. 러브레터도 큰 화면으로 보고 싶어서 같이 신청했고. 둘 다 됨.

당일 상영하는 영화 레코드판을 틀어주는 것 같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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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쪽에는 다음날 상영 영화 안내가 있었는데, 15일에 러브레터를 보러 왔을 때는 저 자리에 탑건 레코드판이 있었다

공지를 통해서 필름으로 상영하는 영화는 넘버3 뿐이라는 안내가 있었지만 내 취향의 영화는 아니라…. 러브레터를 좋아하는 지인 말에 따르면 15일에 봤던 러브레터는 푸른 산호초 노래 가사를 추가되었고, 마지막 문장이 쑥스러워서로 바뀌었고, 책 제목을 추가하는 등 자막이 보완된 블루레이판이었던 모양이다.

러브레터는 좌석을 교체한 1층에서 봤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스크린 정중앙에 있던 선이 눈에 거슬리기도 했고 (이건 아마 러브레터 배경이 겨울이라 흰색이 많아서 더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음), 탑건은 며칠 전에도 롯시에서 봤기 때문에 2층에서 봐 봄.

2층에는 히터가 없는데다가 의자도 예전 거라서 괜찮겠냐고 입구에서 안내하던 분이 물어봤는데, 2층 의자도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았고 입구에서 핫팩이랑 담요도 나눠줘서 추위는 1층이랑 비슷한 정도였다 느꼈음. 거기다 1층 좌석은 단차가 거의 없는 편이라 허리가 아파도 자세 고치기가 뭔가 미안해서 2층이 마음 편하기도 했음. 애초에 2층에서 본 사람은 나 포함 세 명 뿐이었고 내 뒤로 앉은 사람 없었지만….

의자 교체가 안 되었다는 2층. 계단 넓이나 좌석 사이 통로 공간이 옛날에 지어졌다는 티가 난다

사실 영화 시작할 때 조금 후회했음. 역시 화면이 큰게 좋은 게 아닐까 하고…ㅠ 그렇지만 색감이 멀티플렉스에서 봤을 때 보다도 명암대비가 강하고 전체적으로 살짝 어둡게 나타난 것 같기도 하고, 옛날 극장이라 요즘 극장들 같은 음향설비가 아니라 소리가 앞에서만 나왔다고 느껴서 완벽한 환경에서 영화를 본다기 보다 단관극장 분위기를 느끼려고 신청한 거라서 금방 적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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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위치보다 살짝 중앙에 가까운 2층 3열쯤에서 봤는데 근데 보다 보니까 생각보다는 소리가 그렇게 나쁘진 않았음. 사람 목소리가 조금 먹먹하게 들리기는 해도 블레에서는 배경소리를 제법 크게 나서 그런가, 장례식 장면에서 메달 짤랑거리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렇게 최악은 아닌 느낌.

탑건 보려고 특별관도 가봤지만 이런 데에서 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고,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여기서 영화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새로 당선된 시장은 원주시에서 극장 매입한다는 걸 취소하겠다느니 어쩌느니 하고 있는데 시대는 레트로를 원한다고. C도로에 있던 다른 극장들은 다 없어져서 하나 남은 단관극장이 무사히 유지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원주에서 태어난 내 세대가 어릴 때 갔던 극장에서 다시 영화를 보는 건 여기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