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죠사와

토죠 어려워……;ㅅ;

 

어둠 끝의 강한 빛은 잠시 그의 눈을 멀게 했다.

타올로 눈을 덮고, 두 자릿수 점수차를 부정하듯이 눈을 감고, 가쁜 숨을 고르듯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마침내 눈을 뜨고, 타올을 걷고 고개를 바로했을 때였다.

 

아무렇지 않게 그 숫자를 말하게 되기까지도 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오랫동안 질질 끌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건만, 역시 충격이 컸던 것인지도 모른다. 시계가 정오를 지나고, 수업 종료를 알리는 선생님의 말과 함께 점심시간이 시작되었다. 토죠는 기지개를 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중학교를 졸업한 것은 올 3월. 고등학교 첫 학기가 시작한 것은 두 달. 고교야구를 접한 것은—그 중간의 어느 날이라고 모호하게만 남기고 싶은, 한 달쯤 전. 그 충격에서 일상으로 돌아가기까지가 이렇게 어려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는 차라리 괜찮았다. 토죠는 이미 야구부와는 관련 없는 친구들도 만들었고, 그들과는 부활동 말고도 할 말이 많았다. 보통의 고등학생이라면 그럴 것이다. 숙제에서부터 각 과목 교사들에 대한 이야기, 수업, 점심 메뉴,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이것은 조금 따라가기 어려운 화제였지만—그리고 아이돌. 오늘도 토죠는 그런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야구가 관련되지 않은 생활은 평화로웠지만, 불행히도 하루 종일 그런 생활이 계속되지는 않았다. 학교가 끝난 하루의 반을 차지하는 것은 다시 기숙사와 그라운드였다.

학교 건물을 빠져나오자 앞을 걸어가는 카네마루를 보았다. 사와무라에게 설교 중이었던 카네마루에게 토죠가 말을 걸자, 뒤를 돌아보는 카네마루의 얼굴이 조금 밝아진 것 같았다. 설교는 중단되었고, 사와무라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먼저 기숙사에 가겠다고 말했다. 나중에 봐! 먼저 앞서가는 사와무라의 발걸음도 가벼워보였다. 사와무라가 조금 멀어지자 카네마루도 한숨을 내쉬고, 걸음을 이어갔다.

“무슨 얘기 중이었어?”
“숙제, 오늘 역사—아, 거기까지만 얘기할게.”
“그래……? 고생하네.”
“말도 말라고. 네가 하루라도 내 입장이 되어보면 알 거야.”
“아, 고맙지만 그건 사양할게.”

카네마루는 학기가 시작하자마자—아니 어쩌면 부활동이 시작하자마자였을지도 모른다—사와무라에 대해서 불평을 해왔다. 처음에는 2군에도 들지 못했으면서 입만 살았다는 이야기였고, 그 다음에는 크리스 선배를 너무 귀찮게 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가, 이제는 왜 수업 시간에 매번 잠이나 자느냐를 포함한 수업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다.

“내년에는 제발 다른 반이었으면 좋겠는데.”
“뭐, 내년에는 사와무라도 달라지지 않을까.”
“글쎄다.”

토죠는 카네마루가 정말로 사와무라를 싫어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카네마루는 어찌되었든 노력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악평을 하지 않으니까. 어쩌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사와무라도 카네마루가 좋은 녀석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카네마루도 지금보다 무른 면을 보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부러웠다.

토죠에게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시간은 그에게 숨을 고를 틈을 주었다. 1학년 여름이 지나가던 도중까지도 그는 고민했다. 메이지진구구장의 응원석에서 마주한 그 끝에서, 토죠는 그 이상 시간이 그를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후회가 남지 않을 리가 없는 길을 택했다. 1학년 여름이 지나갔다. 이제 남은 것은 2년. 무대는 넓었다. 그 중심이 아니더라도 그가 설 자리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토죠는 뒤를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아쉽다.”

그렇게 결심한 것을 말했을 때 카네마루는 고개를 끄덕인 끝에 한마디를 내뱉었다.

“네가 피칭 연습하는 거 도와달라고 하는 게 사와무라랑 연습하는 것보다 나아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뭐야, 그런 거였어?”
“그것도 있고. 뭐, 여러 가지로.”

토죠는 벤치에 기대어있는 카네마루를 바라보았지만 잠시 그와 눈을 마주친 카네마루는 미소를 짓고는 토죠의 어깨를 두드렸다. 토죠도 혼자서 멋쩍게 웃으며, 자판기에서 뽑은 음료수를 마셨다.

“고마워. 그렇게 말해줘서.”

그렇게 끝날 줄 알았다. 토죠는 이제 살아남는 것에만 신경 쓰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와무라가 외야로까지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좋은’ 사람.

처음 사와무라가 외야 훈련에 참가했을 때 들은 말이었다. 그 이후로도 사와무라와 이야기 할 때 토죠는 언제나 그런 말을 듣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와무라가 많이 서툴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우월감일까. 외야 연습을 함께하는 사와무라에게서는 마운드 위에 서있을 때 보이는 약간의 경외를 포함한 이질감 같은 것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투수 사와무라에게서도 그런 모습을 보았을지도 모른다—어딘가 다르면서도 어설픈 면도 많아서 붕 떠있지는 않은 모습에 토죠도 금방 손을 뻗게 되었다.

사와무라에게서 쉽게 나오는 친절하다, 고맙다, 좋아한다는 말이 싫어한다는 말보다 가벼워서 다행이었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었지만, 생각조차 들지 않았지만. 불안, 질투, 좌절—그런 것들은 토죠에게도 있었다. 그들이 가라앉아있을 수면 위를 가볍게 흔들던 물결은 결국 그 바닥까지 닿아서 마음을 흩트려 놓았다.

“토죠 정말 좋아해!”

사와무라 본인은 전혀 모르겠지만.

연습을 끝내고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와무라가 소리쳤다. 연습에 어울려주어서 고맙다는 말 대신이라는 것을 알기에, 평소라면 알았다고 웃으면서 넘겨버렸을 것이었지만 오늘 토죠는 그것에 대답하기로 했다.

“나도 좋아해.”
“아니, 그래도 내가 더 좋아할 걸.”
“그런가.”

사와무라는 그렇다고 강조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내가 더, 라고 하면 방에 도착할 때까지 사소한 경쟁이 이어질 것이었지만, 토죠는 그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웃었다. 더나 덜이나 하는 양은 상관없었으니까.

한번 내뱉어 보니 어쩐지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았다. 그렇지만 토죠에게는 사와무라처럼 쉽게 꺼내기는 어려운 말이 아직도 많이 있었다. 언젠가는 그런 것들을 말하기 위해서, 지금은 빨리 좋아하는 사람의 옆자리에 가고 싶을 뿐이었다.

 

눈을 깜빡이자 세상은 다시 제 밝기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