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라사와 au

F1 au로 게스트북 원고 마감하면 보상으로 쓰겠다고 벼르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니 이 뒷부분은 어떻게 쓸 건지 잊어버렸다!

언젠가 올렸던 나루미야가 나오던 연성의 스핀오프 같은 느낌으로.

 

그 해의 챔피언십 결정전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면 언제나 이야기는 한 해 전 시즌의 끝으로 돌아간다—나루미야 메이가 고난의 첫 시즌을 보낸 후 연속 월드 챔피언십 달성에 성공했고, 또다시 주요 플레이어들의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시기가 돌아와 실리시즌이 여느 해보다 뜨거웠던 때였다. 누가 어느 팀으로 갈 것인지 하는 질문은 과연 다음 시즌에는 그 독주를 막을 수 있는 팀이 나올지 하는 것과 이어졌다. 드라이버뿐만이 아니라 다음 시즌에도 각 팀의 헤드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들은 건사할 수 있을지 주목 받던 때였다—매우 놀랍게도 그들이 해고되는 일은 없었다. 시즌이 끝나고 무사히 드라이버들이 제 자리를 찾아간 후, 크리스마스와 새해가 지난 1월 중순, 이탈리아의 절대적인 애정을 받고 있는 사륜과 이륜의 두 팀은 마돈나 디 캄피오에서 스키 미팅이라고도 불리는 예년의 프리시즌 행사를 열었다.

그 행사도 꽤나 화려하게 시작했다고 쿠라모치는 기억한다. 사와무라 에이쥰은 팬들과의 만남을 이룬 스키장에서, 동계올림픽 개최지 나가노 출신의 스키실력을 보여주겠다는 선언 후에 화려하게 굴렀다.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비명소리와 몸짓이었다. 그러나 행사 일정은 조금 미루어졌을 뿐 예상대로 진행되었고 다행히도 몇 시간 후 받은 연락에 따르자면 부상이 크지 않다고 했다. 스피커로 들려오는 사와무라의 목소리는 조금 풀이 죽어있기는 했지만 건강하게만 들렸다. 곧 퇴원해서 합류할 것이며 해가 바뀌고 예정된 첫 프리시즌 테스트에는 문제없이 참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지만, 자연스레 행사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아이스 레이스에는 나갈 수 없게 되었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병신.”
“환자한테 말을 뭐 그렇게 못합니까.”
“그럼 너 같은 놈한테 뭐라고 해야 하는데?”
“빨리 나으라거나.”
“가진 건 건강밖에 없다며. 말 안 해도 알아서 낫겠지.”

일정이 끝나고 기자들에게 배정된 숙소에 돌아온 쿠라모치는 그 늦은 시간에 병원에 간다고 해 보아야 면회를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사와무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인지 아닌지 핸드폰은 뺏기지 않은 모양이었다. 우선은 요양을 명령받았을 것이 분명한 사와무라는 깨있었다. 걱정한 것이 무색하리만큼 멀쩡한 목소리를 듣고 안심한 쿠라모치는 마음껏 생업을 방해한 장본인에게 욕을 해주었다. 원래대로라면 쿠라모치는 일주일동안 일본인 드라이버 중 처음으로 마라넬로 입성에 성공한 사와무라를 밀착취재하며 사진을 남겨야 했지만 오늘 당사자가 행사장에서 부득이 떠나야만 했다. 그런데 아직도 행사 일정은 닷새나 남아있었다. 닷새 동안 그는 밀착취재대상이 없는, 추운, 이벤트장을 돌아다녀야 한다는 말이었다.

“너 같은 놈은 처음이다.”

쿠라모치는 한숨을 쉬었지만 수화기 너머에서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노트북을 펼쳐놓은 쿠라모치는 몇 시간 전 사와무라가 구르는 모습이 잘 찍힌 사진들을 바라보면서 그것들도 본사로 보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기에 그것이 썩 즐겁게만 들리지 않았다. 웃음 끝에 들려온 “그거 칭찬이지요?” 하는 질문에 쿠라모치는 얼굴을 한껏 찡그리며 대답했다.

“당연하잖아—그럴 리가 있냐.”

전화기 반대쪽에서 항의의 소리가 들려왔지만 쿠라모치는 계속했다.

“부상을 당한 채로 여기 참가한 선수는 있었어도, 와서 부상을 당한 건 다들 처음 봤다는데. 넌 어떻게 된 게 그런 기록부터 세우냐.”

결국 쿠라모치는 엄선한 사진을 편집부로 보냈다. 뭐, 사와무라였다. 사와무라 본인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지만, 쿠라모치는 사와무라에게 이제 와서 깨질 ‘멋있는’ 이미지는 그다지 없다고 생각했다. 트랙 위라면 모를까, 헬멧을 벗었을 때는 그랬다. 그리고 그런 친근한 모습이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이었고.

기사 후기에 쿠라모치는 사와무라가 중학교 이후로 스키를 타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쿠라모치는 공항 커피숍에서 종이컵을 든 나루미야와 마주쳤을 때 무심코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조용히 나루미야가 지나가기를 바랐지만 불행히도 나루미야도 쿠라모치를 알아본 것인지 오, 하고 입을 열었다. 나루미야와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쿠라모치는 일대일로 대할 때의 나루미야가 편한 상대가 아니었을 뿐이었다. 쿠라모치는 습관적으로 타다노를 찾아보았지만 불행히도 그 PR 담당자는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당연하다, 이곳은 패덕이 아니라 공항이었으니까. 쿠라모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루미야의 인사에 답했다. 인사가 끝나자마자 나루미야는 쿠라모치의 옆에 서서는 본론을 꺼냈다.

“역시 마라넬로는 부럽네. 특집기사도 그렇게 길게 실리고.”

도쿄 프린스께서는 사와무라가 마라넬로로 이적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것을 쿠라모치에게 말해봐야 아무런 소용없는 일이건만, 나루미야는 이미 쿠라모치를 ‘사와무라 전담’ 혹은 ‘사와무라파’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다. 계산을 마친 쿠라모치는 나루미야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카운터에서 떨어졌다.

“그러니까 꼭 네가 이적했을 때는 아무것도 안 한 것처럼 들리잖아. 내가 오기 전이지만, 그때가 더 난리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쿠라모치의 말에 나루미야는 어깨를 으쓱이며 모르겠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렇지만 쿠라모치는 나루미야가 계약을 발표하던 때에 모든 모토스포츠 잡지가 그 이야기로 시끄러웠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시즌이 개막할 때까지 몇 달을 그랬으니까. 나루미야가 시즌 전에 모테기의 헤드쿼터를 방문하기 위해서 귀국하던 때는 특히 시끄러웠다. 쿠라모치는 그때 다른 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동료 기자에게서 그날 참가한 방송국이 몇 개나 되었느니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뭐, 그게 그렇게 부러우면 그쪽에서도 하면 되잖아? 이벤트.”
“글쎄. 이쪽은 별로 그런 건 안 좋아하는 것 같아서…….”

그런 걸 안 좋아하는 게 아니라—쿠라모치가 입을 열려던 차이에, 그의 주문이 나왔다. 커피를 받았을 때 나루미야는 여전히 그의 뒤에 있었다. 어지간히 심심한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쿠라모치는 시럽에 설탕을 펌핑해 넣고, 말하려던 것과는 조금 다른 말을 꺼냈다.

“원한다면 다음호에 나루미야 특집도 내줄 수 있어. 도쿄 프린스, 다음 목표는 마라넬로? 뭐 그런 식으로.”

나루미야는 피식 웃었을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쿠라모치는 작년 시즌 나루미야가 계약 갱신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결국에는 워킹과 모테기 양쪽에서 그를 놓아주지 않은 듯이 보였지만 말이다.

“지금은 싫어. 자국 드라이버랑 팀을 나누는 건 별로.”
“아.”
“거기다 사와무라랑 팀메이트라면 뻔하잖아? 내가 악역처럼 보일 거.”

그렇게 내뱉은 나루미야는 쿠라모치를 빤히 쳐다보았다. 누구 씨 때문에. 쿠라모치는 아무 말 없이 나루미야를 바라보았다.

“설마 나 때문이겠어.”

쿠라모치는 그가 F1에서 자리를 잡게 된 사진을 떠올렸다—헬멧을 벗은 사와무라가 멍하니 서킷을 바라보는 사진을 비롯한, 홈경기에서 리타이어 한 자국 드라이버의 사진으로 시작한 쿠라모치의 캐리어는 오늘날에 이르렀다. 그때 같이 리타이어할 뻔 했던 선수는 영국으로, 사와무라는 이탈리아로, 쿠라모치는 그들과 함께 세계 곳곳의 서킷으로. 쿠라모치는 피식 웃고는 나루미야에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자업자득이라면 모를까.”
“우와. 재수 없어.”

쿠라모치는 웃으면서 커피를 홀짝였다. 물론 나루미야는 쿠라모치의 사진 같은 작은 것에는 신경 쓰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자국 드라이버가 두 명인 라인업은 정말로 싫을 것이고, 마라넬로 행을 먼저 이룬 것이 그가 아니라는 것도, 그러한 결과가 나루미야 자신 때문에 일어났다는 사실도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쿠라모치는 이번 시즌이 매우 기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