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연성 #2, 쿠라사와

늦었지만 크리스마스 연성, 쿠라사와로 사와무라가 F1 드라이버에 쿠라모치가 사진 기자인 설정.

 

사와무라의 크리스마스 일정은 단순했다. 이전에는 성수기에 비행기를 타고 집에 가는 것이 아까워서 크리스마스를 일본 밖에서 보낸 적도 있었지만, 조금 여유가 생긴 지금은 무조건 귀향, 무조건 집. 무슨 일이 있어도 연말연시는 집에서 보내는 것이 최고라고 여기게 되었다. 사와무라가의 거실에 나온 코타츠 안에 앉아서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멍하니 텔레비전을 켜놓고 꾸벅꾸벅 졸면서 따뜻한 겨울을 보낸다. 친구들과 모여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는 것도 즐거웠지만 그에게도 조금 쉴 시간이 필요했다—잠시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다. 체중 유지 때문에 명절음식이나, 끊임없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먹이려고 드는 어머니는 요주의 대상이었지만.

일이 아닌 이상 이 시기의 사와무라는 고향 밖으로 나가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일이라고 해도 사와무라의 캘린더에 저장된 일정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SNS를 통해 혹시 만날 시간이 있는지를 물어오는 메시지가 왔을 때, 사와무라는 몇 번이나 폰을 들고 그것을 다시 읽었다. 보낸 사람 이름은 그가 아는 이름이 맞았다. 이번 시즌에 들어서 안면을 트게 된 사진기자였다. 그렇지만 취재 요청 형식도 아니고, 이전에 연락을 주고 받은 적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렇게 연락한 것을 보면 사적인 용건일텐데 이유가 뭘까—의심을 하면서 사와무라는 답장을 보냈다.

 

나가노는 대도시와는 조금 떨어져 있다. 아니 조금이 아닐지도. 쿠라모치는 주고 싶은 것이 있다고 만나자고 했고, 사와무라는 그것을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뭐 그렇게 의심이 많은지 모르겠다며 화를 내는 쿠라모치의 재촉에 결국 만날 약속을 잡았다. 운전하기 귀찮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오는 데 고생했지. 만나자고 해서 미안하네.”

쿠라모치는 약속장소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근처 지리를 몰라서 몇 번이나 주소와 위치를 확인한 사와무라가 도착했을 때 쿠라모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맞았다. 메시지로 그를 재촉하던 모습과는 영 달랐다.

“아니요, 운전하는 게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아, 방향이 달라서?”
“아니 그게 아니라…… 면허를 딴 지 얼마 안 되어서요.”

예상과는 다른 대답에 쿠라모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사와무라는 그런 반응에 익숙했기에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아, 미안. 그런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해서. 어쨌든 앉아.”

 

조금 서먹했던 분위기가 풀어지자 쿠라모치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옆자리에 둔 가방 안에서 심플한 무늬의 상자를 꺼냈다.

“자.”

가로세로폭이 꽤 큰 상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에 다시 의심이 피어났다. 머뭇거리며 사와무라는 상자를 받아들었다.

“이게 뭔데요?”
“선물—갑작스러울지도 모르지만, 내가 너한테 고마워서 주는 거니까 받아.”
“어쩐지 더 수상하잖아요. 뭔데요?”
“열어 봐.”

흐음—쿠라모치가 그에기 고마워 할 이유를 사와무라는 떠올리지 못했지만 또다시 그를 재촉하는 쿠라모치 때문에 망설이며 상자를 열었다. 상자의 좁은 쪽에 위치한 뚜껑을 손톱으로 열자 안에는 책자가 보였다. 상자를 털어서 책을 꺼내자 표지에 보인 것은 콕핏에 앉아있는 사와무라의 모습이었다.

“어—우와……”

책을 열자 페이지를 꽉 채운 사진들이 보였다. 모두 사와무라의 모습. 중간중간 보이는 글자를 보니 이것은 이번 시즌의 그를 담은 앨범이 분명했다. 스타트라인에서 준비를 하던 모습, 혹은 서킷 위의, 피트스탑 때의 사진도 있었고 몇몇 사진은 불행히도 경기를 리타이어 했을 때였다. 멜보른에서 시작해서 마지막인 브라질까지. 사진기자가 그의 주변에 있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것은 사와무라가 보지 못한, 볼 수 없는, 그의 모습들이었다. 고개를 들어 쿠라모치를 바라보자 쿠라모치는 그런 사와무라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거……”
“말했잖아, 선물이라고.”
“멋있어요! 고맙습니다! 저 이렇게 사진을 많이 받아본 거 처음이예요!”

쿠라모치는 쿨하게 감사를 받으려던 상상도 했었지만, 막상 이렇게 사와무라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자 이런 것을 준비한 이유도 털어놓아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어, 어……. 별거 아니야… 나야말로 올해 네 덕분에 잘 풀린 거 같아서… 의외로 네 사진도 많길래……”
“그래도 이렇게 만들어 주셨잖아요! 정말로 굉장해요! 아, 쿠라모치 씨 오늘 바쁜가요? 집에 헬멧이라면 하나 있는데! 드릴게요! 같이 갔다올래요? 좀 시간이 걸리지만…”
“아냐, 그럴 거 까진 없는……”
“아니요 사양하지 말고!”
“괜찮다니. 너 나가노에서 오는 거라며!”
“아……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분명 선물을 주는 것은 쿠라모치였지만 기쁨이 아니라 어째서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앨범을 양손으로 꼭 쥐고 그를 바라보는 사와무라를 보고 쿠라모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조금 더 약삭빠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데려다 드릴게요.”

생각보다 단순한데다가 막무가내였다. 그 막무가내를 꺾을 수 없을 예감에 쿠라모치는 인상을 찌푸린 채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날이 걱정되는 녀석이었지만—물론 쿠라모치는 그런 걱정이 쓸데없다는 것도 알았다—만약 크게 된다면 오늘의 일은 어디 가서 자랑할 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F1 드라이버 사와무라 에이준이 운전해주는 차를 타 보았다고.

 

 

사담이지만 드라이버의 차를 얻어탔다가 죽을뻔한 경험을 하는 것도 오래된 클리쉐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