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연성 #1, 미유메이

라고 일단 우겨보는, 나루미야가 F1 드라이버에 미유키가 담당 레이스 엔지니어, 팀 PR 담당자인 타다노가 등장하지만 이런 설정은 아무래도 좋은 크리스마스 연성.

 

크리스마스 이브. 며칠 전 휴가를 맞아 예고도 없이 돌아온 도쿄에서 아는 사람을 만날 것이라고 미유키는 상상하지 않았다. 그것이 나루미야라고는 더더욱. 이것으로 몇 번째인지는 모르지만 나루미야와 우연히 마주치는 확률이 높은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미유키는 나루미야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야,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너를 봐야 하다니 너무한데.”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그런 말을 듣는 내가 더 안됐다고 생각하지 않아, 카즈야?”

두 사람이 한 마디씩 건네고 움직이지 않자, 이렇게 붐비는 날 그것도 공공장소에서 그러는 것은 너무하다고 생각한 타다노가 보다 못해서 앞에 나섰다.

“안녕하세요, 미유키 씨. 메리 크리스마스.”
“응,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도 고생하네, 타다노.”

고생이라고 했지만 양 손에 나루미야가 맡긴 쇼핑백이라도 가득 들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한 것과는 달리, 타다노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다. 작은 메신저백을 한쪽 어깨에 매고있을 뿐. 나루미야도 그랬지만 타다노 역시나 오늘은 평소와 같은 유니폼 차림이 아닌 사복 차림이었다. 하지만 오늘도 손에는 핸드폰이 들려있었다—오늘은 업무용이 아닐 것이고, 당연히 나루미야의 현 위치에 대한 트위터 같은 것은 하지 않을 테지만.

“아니요, 그런 건 아니에요. 저는 이제 가보려던 참이었거든요.”
“정말?”

의심스러운 듯이 미유키는 나루미야를 힐끔거렸고 나루미야는 어깨를 으쓱였다. 미유키의 의심을 지우듯 타다노는 나루미야에게 인사를 건네고 인파속으로 퇴장했다.

“오늘은 감사합니다, 메이상. 메이상도 좋은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미유키 씨도 연말 잘 보내시고요.”

타다노가 사라진 후 미유키는 신기하다는 듯이 나루미야를 바라보았다.

“정말이었어? 타다노 군은 어쩌다가?”
“아까까지 같이 일정이었어. 도쿄로 오는 것도 똑같고, 쇼핑 하고 들어가야 간다고 해서 태워서 왔지—여기까지 안내해준 것도 이츠키고.“

태워줬다니 조금은 나루미야 답지 않은 친절이라고 미유키는 생각했다. 귀국하지 않았다면 이런 모습은 볼 일도 없었을지도 모르는데—라고 생각는 것도 잠깐.

“이츠키가 가버렸으니 카즈야가 대신 골라줘야겠다.”
“응? 뭘?”
“따라와 봐.”

나루미야는 미유키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쓴웃음과 함께 미유키는 그의 뒤를 따랐다. 오늘 같은 날에 더욱 화려하게 빛나는 쇼핑가를, 뭐가 좋아서 나루미야와 둘이 걸어야 하는 것인지.

 

“자, 어느 쪽이 나은 거 같아?”
“너는 이런 거 살 필요 없잖아……?”

거기다 예상보다도 훨씬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나루미야가 마침내 결정다운 결정을 내린 것은 어느 시계 브랜드였다. 미유키에게는 의아할 뿐이었다. 스폰서 쪽에서는 나루미야 모델도 발표했고 지금 나루미야가 손목에 차고 있는 것도 그 브랜드였기에 —뭐 취미라면 미유키가 참견할 일은 아니었지만 굳이 도쿄에서 이런 쇼핑을 할 필요는 없을 텐데. 나루미야도 미유키의 반응을 알아챈 것인지 가벼운 한숨과 함께 답했다.

“내가 아니라 마사상한테 줄 거. 일반인의 취향은 모르니까 물어보는 거잖아.”
“일반인의 취향이라니……하라다 씨한테 미안한 말 아니야? 음, 하라다 씨라면—이쪽.”

미유키의 선택에 납득한 것인지 나루미야는 그대로 점원에게 포장을 부탁했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미유키는 나루미야를 떠보듯 물어보았다.

“하라다 씨 좋겠다. 크루들은 안 챙겨 주는 거야? 메카닉들이나 엔지니어들이나—나라거나.”

능글거리면서 물어보았지만 미유키는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나루미야와 마지막으로 마주했을 때는 지난 테스트 때. 다음 테스트 때 보자는 말을 끝으로 헤어졌고 그것은 작년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이번에도 새해가 되어 늦은 안부인사와 함께 만나, 그저 지난해와는 조금 다른 기분으로 일을 시작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이미 다 준비했는데? 깜짝 선물.”
“와우. 기대해도 돼?”
“아마도? 그렇지만 카즈야는 일본에 와있으니 반송될지도.”

아, 이건 미유키의 예상 외였다. 크루들에게 문자를 보내면서 정말인지 물어봐야 할지도. 올해는 성적이 좋아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나루미야도 이너서클 말고도 다른 크루 멤버들을 챙길 정도로 성장한 것일까. 헤에—놀랐다는 소리 말고는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던 그는 멍하니 나루미야를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에 포장도, 계산도 진행되었고, 미유키는 점원에게 인사를 건네고 나루미야를 따라 가게를 나섰다.

 

나루미야는 작은 쇼핑백을 흔들거리면서 걷고 있었다. 주차장까지 동행해야 하는 걸까, 혹시 타다노처럼 차를 얻어 탈 수 있으려나 계산하면서 미유키는 그 옆을 따랐다. 인파 속에서 나루미야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나루미야의 정체를 들키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결국 목소리가 잘 들릴 바로 옆에서.

“그런데 카즈야는 나한테 선물은 없는 거야?”
“선물? 올해도 멀쩡한 차를 선물해 줬으면 그걸로 된 거 아니었어?”
“그게 다야? 혼자서 한 것도 아니면서, 박정하네.”
“누구랑은 달리 내 지갑은 아버지한테 드릴 선물 하나로 이미 힘들어서. 아—내일 크리스마스인데 뭐 할 거야?”

박정하다니, 일반인에게 선물 없냐는 질문을 던지는 쪽이 너무한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천연덕스레 미유키는 그것을 무시하고 나루미야의 일정을 물어보았다. 나루미야는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모자 아래로 따분하다는 것이 모두 드러날 정도라 1년 중 제대로 된 휴일이나 다름 없는데 조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마 가족들이랑 보내지 않을까. 그러라고 준 휴가고.”
“나 같은 일반인이랑 별 다를 거 없네.”
“실망시켜서 미안하네.”
“그럼—내 시간이라면 줄 수 있는데.”

어때? 미유키가 덧붙인 말에 나루미야는 미덥지 않다는 듯 미유키를 바라보았지만, 미유키는 나루미야의 입 꼬리가 올라간 것을 보았다. 몇 시간 후의 미유키는 휴일의 일부를, 혹은 대부분을, 나루미야와 함께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후회하겠지만 당장은 이런 휴일도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