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라사와전력 #6 새해

쿠라사와전력 #6 새해. 몇 년후 대학에 들어가 자취한다는 설정으로

 

신년 카운트다운까지는 몇 시간이 남았지만, 쿠라모치는 티비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사와무라가 반쯤 옆에서 잠들어있었다. 아니, 옆이 아니라 쿠라모치의 무릎을 베고, 쿠라모치가 손가락으로 뺨을 쿡쿡 찔러보는 데도 세상 모르게. 한 해 마지막 날, 그리고 몇 시간 후에는 새해 첫날을 사와무라와 같이 보내는 것은 쿠라모치에게는 낯설기만 했다.

 

세이도에 오기 전까지 쿠라모치의 신년 이브는 꽤 시끌벅적했다. 중학교때는 특히 그랬다. 거창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친구들과 망년회라는 이름하에 모여서 떠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때는 즐거웠는데—친구들과는 다시 만나서 연락을 주고 받기는 했지만, 이전처럼 그렇게 만난 적은 아직 없었다. 그때 그들은 몰래 술을 마시기도 하며 작은 일탈을 했다. 그리고 술담배 냄새가 가실 때까지 밖을 거닐다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 다음에는 할아버지와 함께 홍백을 보고 카운트다운을 볼 때까지 깨있은 다음,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붐비는 인파에 섞여서 신사에 참배를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가 준비한 설음식을 먹으면서 느긋하게 휴일을 보내는 식이었다.

집을 떠나 살고 처음으로 쿠라모치는 올해는 바빠서 연말에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는 말을 전했다. 어머니는 당연하게도 실망한 목소리였지만, 바쁘면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며 나중에 꼭 내려오고 자주 연락하라고 했을뿐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전화를 끊는 쿠라모치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바쁜 것은 사실이었다. 이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짐 정리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사와무라가 들어오면서는 그것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태가 된 것 같았다. 그리고 학교와 부활동도. 아마 조금 시간을 낸다면 고향에 갈 수도 있었다. 치바는 그리 먼 곳도 아니었고. 정말 나중에 시간을 내서 하루라도 집에 가 봐야겠다고 쿠라모치는 생각했다—사와무라도 사정은 비슷했는지, 쿠라모치가 그 이야기를 꺼내자 쓴웃음을 지으며 우리 엄마도 그랬다고 말했다.

“올해는 새해 음식 못 먹는다고 생각하니 좀 아쉽기는 해요.”
“응, 그건 그래.”

시기가 시기라 곧 우편함에는 피자니 스시니 오세치요리니 하는 광고지가 들어왔다. 하지만 귀성 예정이 없던 두 사람은 그런 것들의 예약 기간도 놓쳐버리고, 사실 예산도 없었고, 결국 근처 마트가 연말연시 기간동안 문을 닫기 전에 평소보다 조금 호화롭게 장을 보기로 타협했다. 평소보다 조금 무거운 비닐봉투를 들고 돌아오는 길에 들떠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영수증에 찍힌 금액도 잊게 되었다.

 

쿠라모치는 채널 선택권을 손에 쥐었지만, 연말의 텔레비전 방송이야 예년과 비슷했다. 텔레비전 앞에 나란히 이불을 깔고, 캔맥주를 땄을 때만 해도 그렇게 지루하지는 않았다. 쿠라모치는 사와무라가 그렇게 금방 잠들어버릴 줄은 정말 몰랐다. 꾸벅꾸벅 양팔로 감싸안은 무릎에 머리를 박기 시작하더니 사와무라는 쿠라모치가 방송에 빠져서 웃고있는 사이에는 푹 잠에 빠진 모양이었다. 앉아있는 그 자세로. 그것이 불편할 거 같아 쿠라모치는 사와무라의 어깨를 잡아당겨서 무릎 위로 눕혔다. 여전히 몸은 동글게 말려있었지만 쿠라모치가 머리를 쓰다듬자 고개가 살짝 쿠라모치를 향했다. 깨지 않은 것이 분명했건만 반쯤 열려있는 입이 헤벌쭉 웃는 모습에 쿠라모치도 피식거렸다.

“사와무라”
“흐어?”
“일어나. 12시 다 됐어.”
“…… 정말요…? 어…… 왜 이렇게 잤지.”
“너 술 약한가 보더라.”
“마실 일이 없으니까—그래도 쿠라모치 선배가 깨워줘서 다행이다.”

자정이 가까워졌을 때에야 쿠라모치는 사와무라를 깨웠다. 해가 바뀌는 것을 그냥 보낼 것이라면 굳이 텔레비전이 잘 보인는 데로 이불을 옮겨오지도 않았을 테니까. 도쿄타워니 스카이트리니 하는 바깥 모습을 비춰주는 화면을 바라보던 사와무라는 카운트다운의 숫자가 줄어드는 동안 쿠라모치를 힐끔거리며 몇 번이나 바라보던 사와무라는, 숫자가 한손에 꼽힐 정도로 줄어들자 갑자기 쿠라모치에게 입술을 부딪혀왔다.

텔레비전에서 들려온 새해가 밝았습니다라는 소리와 함께 떨어진 입술에서는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아케오메 네글자로 줄여진 말이 아니라 제대로 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말이 나왔다. 쿠라모치는 꽤나 건성으로 올해도 잘 부탁한다고 내뱉고는 잠시 중단되었던 키스를 이었다. 내일이면 아마 뉴욕이니 런던이니 하는 외국의 도시의 새해맞이 풍경이라며 소개할 모습이나 다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