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라사와전력 #10 설날

설날이라는 주제에 뭘 써야하지 고민하다가 지각했는데 아무리 봐도 주제에는 안 맞는 거 같네요……

 

12월 말, 아직 첫 시즌을 끝낸 사와무라가 일본에 귀국했다는 소식은 없었다. 야구부의 송년회에도 얼굴을 보일 예정이 없는 모양인지 답이 아직까지 없었지만, 뭐 사와무라니까 갑자기 중간에 끼어들지도 모른다며 다들 태평한 반응이었다. 어쩌면 모른 척 이미 일본에 돌아와서 나가노에 가있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나왔다. 쿠라모치는 그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돌아가면 기자들이 무서울 것 같다고 사와무라가 말한 것이 얼마 전. 고등학교 때만 하더라도 후루야가 먼저 인터뷰를 하는 것을 부러워했고 마침내 스포트라이트가 그를 비추기 시작했을 때만하더라도 꽤나 붙임성 있게 굴었건만, 유명세가 늘어난 지금은 조금 거리를 두고 싶은 모양이었다. 어쨌든 트위터 갱신은 여전히 되고 있는 것을 보면 몰래 들어와 있을 확률은 매우 낮다고 생각하며, 쿠라모치는 사와무라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프시즌이라면서 너는 언제 들어올 거냐? 벌써 크리스마스도 지났잖아
[아 올해는 여기 있으려고요 빨리 적응하고 싶으니까!] 헤에 그럼 부모님은?
[?? 부모님은 일본에 계실 건데요] [오시겠느냐고 물어보기는 했는데 할아버지가 그렇게 오랫동안 비행기 타는 건 무리라고 하셔서] [그럼 혼자 있겠다고 했지요 이제 어린애도 아니고] ……야
너는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하셨다고 그걸 그대로 믿냐
[어… 그거 정말 못 오신다는 말 아니었어요???]

그 말을 끝으로 잠시 사와무라에게서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쿠라모치가 보낸 메시지 끝에는 읽음이라는 글자가 꼬박꼬박 찍혔지만. 답이 없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었기에 쿠라모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별 뜻 없는 질문을 보내는 것을 멈추었다.

다음날 사와무라의 트위터에는 저녁식사 사진이 한 장 올라왔다. 영양을 생각한 것은 분명해보였지만 아무리 보아도 요리에는 서툰 자취생의 솜씨였다.

쿠라모치에게는 12월 29일 오후, 야구부 송년회까지 몇 시간을 남겨두고 사와무라에게서 마침내 소식이 들려왔다.

[……쿠라모치 선배 말이 맞았어요] 뭐가
[어제 엄마한테 전화했더니 혼났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당분간 집에 올 생각 하지 말래요] [그리고 저녁 먹을 거라고 밥상 사진을 보냈는데] [나도 엄마가 해준 밥 먹고 싶다] [엄마가 올해 설에는 음식도 많이 할 거라고 약 올렸어요] 왜 이제 어린애도 아니라 혼자 지낼 수 있다며?
[그래도 밥은 먹고 싶어요] 집에 가면 되잖아
[그럴까요…… 그렇지만 올해 카운트다운 볼 장소도 찾아봤고] [약속도 잡았는데] 뭐 그럼 포기해
어차피 지금 와 봐야 우리 송년회도 다 끝났을걸
[그거 오늘이었지요…?] 어 잘 지낸다고 전해주마
다들 알겠지만
[좋겠다 재미있게 놀아요] 당연하지

그대로 대화를 끊기 전에 문득 생각난 것이 있어 쿠라모치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 너희 팀 훈련 시작하기 전에 시간 있을 때 부모님 오시라고 해
늦었지만 할아버지도 좋아하실걸
[그럼 내일 표 알아볼까…] [고마워요!]

그 후로 사와무라는 얌전히 자러 간 것인지, 송별회 자리에서 쿠라모치가 몇 장 사진을 보내 보았지만 아무런 답도 없었다. 쿠라모치가 다음날 술기운이 다 가시지 않은 것을 느끼며 일어난 후에야 단체채팅방에 부럽다는 몇 마디가 올라와 있는 것이, 그 해의 마지막 문자였다.

사와무라가 지구 반대쪽에서 누구와 카운트다운을 보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쿠라모치는 집에서, 어머니와 할아버지와 함께 설을 보냈다. 누구랑은 달리, 그리고 시즌 중과는 달리, 어린 애가 아니라도 집에서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는 것은 행복한 생활이었다.

메신저로 사와무라에게서 새 소식을 듣지 못한 지도 한 달이 가까워졌다. 최근에는 트위터 갱신도 뜸한 모양인지 쿠라모치에게는 하루 가까이 늦게 보인 해피뉴이어라는 트윗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연휴가 끝나 자율훈련을 시작하며 바빠진 것은 쿠라모치도 마찬가지였기에,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따로 연락을 하지는 않았다. 그라운드 한 쪽에서는 신인들이 연습을 하고 있었다. 쿠라모치는 몇 년 전을 떠올렸다. 그때는 쿠라모치가 저쪽에, 이쪽에는 사와무라가 있었다. 사와무라는 틈이 날 때마다 뭐라고 말을 걸고 싶다는 티를 잔뜩 냈지만, 신인들의 상태를 지켜보는 코치들 때문에 마음대로 다가오지 못했는데—지금은 보이지 않는 데에 있다고 문자도 제대로 안 하고 말이야. 그래도 쿠라모치는 선배라고 챙겨주는데, 아무래도 후배 관리를 제대로 못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스프링캠프 첫 휴일 아침에 오랜만에 문자를 받기 전까지는 조금 서운한 마음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알람을 끄려 폰을 집었을 때, 메신저에는 사와무라에게서 문자가 몇 개나 와있었다.

(사진)
[쿠라모치 선배가 말한 대로 우리 할아버지 정말 좋아하셨어요!] (사진)
(사진)
(사진)
[엄마가 설음식도 잔뜩 만들어주고 가셨어요!] [사실 설때 못 먹었는데 얼마 안 있으면 차이니즈 뉴이어라고 제가 조른 거지만!] (사진)
(사진)
[이제 수속 밟는 거 보고 돌아가는 중!] [선배 자요?]

어 이제 일어났어 잘됐네, 하는 말을 보내고, 쿠라모치는 하품을 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답장은 당장 울리지 않았다. 세면대로 향하는 내내 핸드폰을 손에 쥐고 화면을 올려보며 사진을 열어보았다. 정말 재미있게 지낸 모양이었다—놀이공원에 갔을 때의 사진, 헐리우드 일 것이 분명한 사진 등등. 저렇게 정정하게 돌아다니실 정도면 사와무라네 할아버지도 열 시간 비행기야 아직 괜찮으시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세면대에서 조슴 떨어진 곳에 폰을 놓았다. 그래도 세수를 하고 나니 액정필름 위로 물방울이 조금 튀었지만. 티셔츠로 대충 닦고 화면을 켜자 사와무라에게서 문자가 와있었다.

[집에 돌아가면 오기 싫어질 거 같아서 사실 걱정했는데] [누가 오는 거면 괜찮은가 봐요!] [다들 가니까 조금 쓸쓸하기는 하지만……] [그러니까 내년에는 쿠라모치 선배가 놀러올래요?] [포지션은 다르지만 트레이닝 같이 하면 좋겠다]

이미 메시지를 읽었다는 표시가 뜬지 몇 분이나 지났지만 대화창에는 그 이후 아무런 말도 올라오지 않았다. 지금부터 벌써 내년 초의 일정을 정해야 하는 걸까? 나쁘지는 않은 제안이지만—답장을 하기는 어쩐지 어려운 말이었다. 상태창의 시계가 아침 식사 시간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지만, 쿠라모치는 한참을 침대에 앉아 손에서 폰을 놓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