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라사와전력 #11 후회

센바츠 후라는 설정

 

노크소리에 텔레비전을 보던 쿠라모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으로 향했다. 부원들 이외의 다른 사람일 리는 없었지만, 이 시간에 누가 찾아온 것인지 방문을 열기 전에 그는 문 너머를 향해 물어보았다.

쿠라모치 선배, 아직 안 자면 열어줘요.

사와무라의 목소리에 인상을 쓰면서도 쿠라모치는 자물쇠를 풀었다. 심심하지 않아요? 태평스럽게 말을 하며 방 안으로 들어온 사와무라는 베개까지 한 손에 들고 있었다. 이미 방 안에 발을 들었지만 지금이라도 내쫓을까 잠깐 생각했지만, 쿠라모치는 고개를 젓고는 방문을 닫았다.

사와무라가 쿠라모치의 방에 찾아온 것은 숙소에 도착한 당일, 한 번 뿐이었다. 보통은 저녁 연습 후에 다른 1학년들의 방에 가서 놀다가 자기 방으로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쿠라모치도 마찬가지였다—아니, 홀에서의 미팅을 제외한다면 2학년들은 개인플레이를 하는 일이 더 많았지만. 내일이면 도쿄로 돌아가니까, 하는 억지를 쓰며 쿠라모치의 침대에 올라온 사와무라는 쿠라모치의 베개 옆에 자기 베개를 놓고 편한 자세로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비즈니스호텔의 싱글베드는 기숙사 침대보다 아주 조금 더 크게 느껴져서 두 사람이 있어도 그럭저럭 불편하지 않았다.

너 정말로 여기서 자고 갈 거야?
네—거기다 첫날 빼고는 온 적 없잖아요.
돌아가면 또 기숙사에서 볼 텐데 왜.
—그냥요.

꼭 손에 닿기 좋은 거리에 있던 사와무라의 머리를 손으로 꾹꾹 누르면서 쿠라모치는 물어보았지만, 사와무라는 정말로 돌아갈 생각이 없는 것인지 몸을 돌려 쿠라모치의 손에서 벗어났다. 텔레비전과는 등을 진 채로 벽에 붙어서.

네 마음대로 해.

포기하듯이 던진 말에 사와무라는 히히거리며 웃었다. 낯익은 목소리는 그 이상 사와무라에게 말을 걸지 않았지만, 옆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안심할 수 있었다. 눈을 감아도 사라지지 않는 여름날의 기억에 사와무라는 그가 쓰는 방에서 피난을 온 것이라고는 쿠라모치에게 말할 수 없었다.

기숙사에서 그에게 주어진 공간보다는 넓지만, 이 작은 방에서 지내는 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움만이 남았다. 잠이 오지 않아서 사와무라는 침대 위에 정좌를 하고 멍하니 앉아있었다가, 미리 짐을 쌌다가, 다시 침대에 누워서 말똥말똥 천장을 바라보았다. 실내등을 꺼둔 방 안. 눈을 감았을 때 그가 떠올린 것은 5호실의 문고리를 잡고 있던 그림자와, 그것을 뚫고 들어오던 여름날의 빛. 이미 대학에 가버린 선배의 지쳐있는 것 같았지만, 마지막까지 듬직했던 얼굴. 작년 이맘때쯤일까,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몇 번이나 열리고 닫혔던 5호실의 문이었기에 그것은 평범한 장면이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마스코 선배는 그것으로 더 이상 5호실, 사와무라에게 낯익은 침대에서 자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 사와무라는 이별의 순간을 잠시나마 늦춰보려고 입을 열었지만, 충분하지 못했다. 말은 충분하지 못했다. 지금도 여전히 사와무라는 부족했다.

슬쩍 사와무라는 몸을 바로 돌려 텔레비전을 보던 쿠라모치를 바라보았다. 방을 밝히는 화면과,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등.

센바츠는 봄의 시작. 기숙사로 돌아가면 곧 신입생이 들어오고, 다시 5호실은 세 사람이 사는 방이 되고, 봄 대회가 있고 그리고 고시엔 예선이 그들을 기다린다. 그리고 또 다시 끝은 찾아올 것이다. 어쩌면 지난번처럼 갑자기, 어쩌면 오늘과 같은 모양으로, 혹은, 어쩌면 아직 겪어보지 않은 식으로. 아니 어떤 식으로든, 쿠라모치가 저 등을 보이고 기숙사 방을 떠날 때 사와무라는 후회할지도 모른다. 다만 그것이 오늘은 아니라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며 사와무라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쿠라모치도 잠시 더 침대에 앉은 채로 텔레비전을 보다가 하품이 나오기 시작하자 이불을 속으로 들어가 몸을 뉘였다. 사와무라는 잠이 든 것인지 금방 잠이 든 것인지 아무런 말도 없었다.

잘 자.

텔레비전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섞인 낯익은 취침인사를 사와무라는 잠결에 들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