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하고 형체가 없는 것

토커님이 한 달도 전에 올리셨던 연성과 그 아래로 주고 받았던 멘션에 생각났던 것. 쿠라사와.

 

쿠라모치에게 적당한 거리란 사와무라의 등을 바라보는 유격수와 포수간의 거리나, 발로 차주기 좋은 조금 떨어져 있는 거리나, 혹은 그보다 가깝게는, 관절기에 괴로워하는 얼굴을 내려다보는 정도의 거리였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는 어색했다.

 

방에 있는 것이 불편하다고 쿠라모치가 느낀 것은 그 때가 두 번째였다. 기분전환이라도 하도록 집에 갔다 올 생각은 없느냐고 사와무라에게 물어보았지만, 쿠라모치가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말에 사와무라도 고개를 저었다. 쿠라모치는 하는 수 없이 방을 나섰다. 쨍한 해가 기숙사 부지로 그대로 떨어지고 있었다. 지붕이 해를 막아주고 있었는데도 금방 땀이 나기 시작했다. 날짜가 바뀐 달력은 그들의 패배에 대한 배려는 없었다. 방에서 나오자마자 그는 벽을 주먹으로 때렸다. 후배라는 존재가 오늘은 유독 불편하고, 귀찮았다. 오늘 저녁 다시 방으로 돌아가면 이제 두 사람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마스코 선배가 방에 있을 때도 사와무라에게 직접적인 선배 역할을 한 것은 쿠라모치였지만, 앞으로의 반 년 동안은 더더욱, 쿠라모치가 본격적인 선배 노릇을 해야 했다. 기숙사에 들어오던 초기부터 사와무라는 다른 방의 후배들과는 조금 달랐지만, 쿠라모치는 거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이런 때에 사와무라는 얌전히 쿠라모치를 따르려는 모양이었다. 답지 않게. 하루 종일 쿠라모치는 방을 피했다. 미유키에게 이대로라면 그들 기수에서는 고시엔은 꿈이라는 말을 들은 후에 연습에 몰두하는 다른 부원들이야말로 쿠라모치가 보고 싶은 현실이었다.

다음날 저녁, 에이스가 되겠다고 소리치는 사와무라를 보고 쿠라모치는 둘이 남은 기숙사 생활이 이제까지 그랬듯이 어렵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세 번째는 곧 찾아왔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하루 정도 갔을까. 사와무라는 금방 털고 일어났다고 쿠라모치는 기억한다. 그러나 세 번째는 쿠라모치가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찾아와서 방 안에 둥지를 틀고 있었고, 훨씬 길게 이어졌다. 길고 괴로운 시간이었다. 쿠라모치는 사와무라를 얼마나 표면적으로 알고 있었을까. 순탄하게 지나갈 것이라는 확신은 어디서 나왔더라—무엇이 문제인지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짜증난다고 말하는 것 말고는 텔레비전 앞에서 움직이지 않는 사와무라를 건드리기도 어려웠다. 불안과 불확신, 그 안에서는 어디에 있든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알고 있었다. 쿠라모치 나름대로는 재촉하지 않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닌지도 모른다. 손이 닿으면 옮기라도 할 것처럼, 손을 뻗을 수 없었다. 그것으로는 당장에 나아지는 것은 없었는데도.

사와무라가 방에 들어오는 시간은 여전히 늦었고 쿠라모치와 얼굴을 마주하는 일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물론 쿠라모치 역시나 부캡틴을 맡게 되면서 바빠졌기에 같이 보내는 시간이 적어진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은 채 지나가는 5호실의 저녁이 하루 이틀 늘어갈수록 불만이 쌓였다. 그 원인에게 화를 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무엇에 화를 내야 했을까—경기가 끝나고 감독에게 불려가기 전부터 사와무라는 그랬을지도 모른다, 몸 상태를 알고 초조했는지도 모른다, 공을 만지지 말라는 명령을 들은 지금도 그럴 것이다. 전에는 어째서 몰랐을까. 사와무라에게 화를 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화가 났다. 기숙사 방에는 잠을 자거나 짐을 가지러 들어온다는 태도에. 그렇지 않다면, 쿠라모치의 자리일 때가 많은 텔레비전 앞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에. 가끔 늦은 시간에 쿠라모치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뜰 때가 있었다. 모르는 척 귀를 기울이지만 지금은 침대 아래에서 훌쩍이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부원들 모두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라도 혼자서 노력한다고 가르쳐준 것은 쿠라모치였다. 왜 말을 하지 않는 것인지 물어볼 수도 없었다.

 

새로 비치된 잡지를 펼쳤을 때, 쿠라모치는 문득 몇 달 전에 사와무라가 야구 공부를 하겠답시고 책을 붙잡던 모습이나, 책상 위 보드에 붙여둔 것이 얼마나 초보적인 지식인지에 기가 찼던 일을 떠올렸다. 지금 생각하면 지금의 쿠라모치와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입스. 들어는 보았지만 잘 알진 못하는 개념. 1년 반 세이도에 있는 동안 쿠라모치가 입스에 빠진 선수를 본 적은 없었다. 그런 말이 오간 적은 있었다. 이를테면 노리가 싱커를 봉인했을 때라거나—본인의 결정과 함께 그런 말이 도는 것도 같이 사그라졌지만. 목차를 확인하고 넘긴 페이지의 기사는 입스는 치료할 수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이미 알고 있는 말이었지만 안심이 되었다. 사와무라는 앞으로도 팀에서 활약할 수 있는 선수였다—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부원들은 적을 것이라고 그는 확신했다.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이것 역시 알고 있었다. 시간이 필요하다면 쿠라모치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사와무라는 이전처럼 단체생활에 대해서도 야구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생초보가 아니었기에, 쿠라모치가 잘 아는 장난 섞인 방식은 통하지 않았고, 그런 것을 다시 시도해 볼 기회도 없었다. 감독님도 생각이 있으시겠지—실제로 학기가 시작하고는 사와무라는 러닝 이외의 연습에도 참가하기 시작했다. 기숙사 방에도 익숙한 소리가 조금씩 되돌아왔다. 연습이 끝나고 사와무라의 저녁 일정은 여전히 늦게 끝났지만 적어도 아침에는. 섣불리 건드려서야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쿠라모치는 계속 상기했다. 그렇지만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사와무라라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있었다. 지금도 있다. 다만 쿠라모치도 그 여느 때와 달라서 초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생각에 빠져있었는지 쿠라모치는 문이 열리는지도 몰랐다. 한참 전에 읽기를 멈춘 잡지에서 쿠라모치가 눈을 떼자 사와무라는 꾸벅 들어왔다는 인사를 했다.

“너 말이다.”

그대로 잘 준비를 하려는 사와무라를 향해 쿠라모치는 굳이 말을 걸었다.

“요즘 뭐 하느라 이렇게 늦게 들어오는 거야.”

연습이라는 흔한 대답이 돌아오리라 생각하고 가볍게 던진 말이었다. 사와무라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잠시 굳은 표정을 보이더니 웃옷을 갈아입는 내내 바닥에 앉아있던 쿠라모치 쪽을 힐끔거리며 쭈뼛거렸다.

“안 좋아하잖아요, 쿠라모치 선배.”
“뭘?”
“……제가 방에 있는 거.”

그것이 쿠라모치의 마음에 들지 않을 대답이라는 걸 알았던 것인지 사와무라는 꽤나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랬다. 우울함이 전염될 것 같아서 싫었다. 텔레비전만을 바라보는 사와무라를 그대로 두면 언제까지나 우울할 것 같아서 싫었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그것을 입 밖으로 낸 적은 없었다. 말하는 것도 괜한 부담이 되는 건 아닐까 생각해서—순간 사와무라가 잠시 쿠라모치와 눈이 마주쳤지만 금방 고개를 돌려버렸다. 안녕히 주무세요, 라는 말을 꺼내고 침대에 누우려는 것을 붙잡고 앉혔다—가만히 있었는데, 그래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내가 너한테 뭐라고 했냐?”
“……아니요.”
“그럼 됐잖아.”

사와무라의 머리를 꾸욱 눌러가며 거칠게 헝클어트리자 쿠라모치의 손바닥 아래에서 사와무라가 표정을 바꾸어가는 것이 보였다. 조금 긴장했던 입 꼬리가 풀려서 웃는 것 같다가도, 곧 입술을 삐죽이며 그만 하라고 투덜거렸다.

“누가 안 좋아한다느니 그런 생각 하지 말고. 너무 늦게 들어오지 말고.”
“…알았어요.”
“방에 없는 게 더 짜증나.”
“아, 그래요.”
“어.”
“전에는 밖에서 얼어 죽으라고 했으면서.”
“야,”
“알아요, 선배가 진심으로 그런 말 한 게 아니라는 거.”

다 이해한다는 투로 말하는 사와무라를 보고 있자니 쿠라모치는 조금 짜증이 나려다가도, 익숙한 표정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쉬웠던 걸, 무엇하러 질질 끌고 있었던지 조금 후회가 될 정도였다.

“그래도 내가 네 선배인데, 좀 더 나한테도…… 기대도 된다고.”
“쿠라모치 선배, 변했네요.”
“당연하잖아.”

네에, 네에—쿠라모치를 바라보던 사와무라가 이유도 제대로 알지 못하며 대충대충 끄덕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쿠라모치는 사와무라의 양 볼을 손으로 꾸욱 잡았다. 이런 못난 놈이 왜 달라 보이는 걸까. 말 할까 말까. 쿠라모치는 고민했다. 손이 닿아있는 지금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예전처럼 돌아갈 가능성이 사라져도 괜찮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 것인지, 무작정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저지른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손을 떼자 다시 실없는 미소가 얼굴에 돌아왔다.

“좋아하니까.”

쿠라모치는 드물게도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니, 사와무라는 저런 모습을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이런 눈을 마주하는 것은 힘들었다. 말끝에 물음표가 붙지 않았어도 대답을 바라지 않을 리가 없었다. 사와무라가 줄 수 있는 대답은 이번에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더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 사와무라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괜히 말을 꺼냈다. 쿠라모치는 한숨을 쉬었다. 잊어버려라, 못 들은 거라고 생각하라고 말하려던 차였다.

“지금은 안돼요.”

쿠라모치의 트레이닝 바지 무릎을 꼭 잡은 채 사와무라는 중얼거렸다. 고개는 조금 숙인 채 눈으로만 쿠라모치를 바라보는 모습이 얼마 전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지금은—알잖아요, 다른 생각 못 하는 거.”
“지금은 말이지.”

지금은, 이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지만 끄덕끄덕 고개가 움직였다. 바짓자락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 것이 느껴졌다. 쿠라모치는 그 위에 손을 포개어 보았다. 긍정도 아니었지만 부정도 아닌, 보류. 주먹 쥔 손등을 토닥거렸다. 그래, 지금은 저 하나 챙기기도 바쁘겠지—누가 누구 걱정을 하는 거야.

“무리하지 마.”

쿠라모치가 중얼거린 말에 사와무라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 보다는 조금 강하게.

나중에, 까먹지 말고.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며 쿠라모치는 사와무라의 뺨에 입을 맞추고 중얼거렸다.

 

사와무라가 말한 지금이 끝나고 찾아온 사랑은 달콤했다. 사와무라가 보는 순정만화를 읽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 두근거림을 지속한 것이 몇 달이었다. 쿠라모치도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고백을 하고, 매일 같이 보내는 생활에 접촉이 더해지는데도 바라는 것은 많았다. 손에 쥘 수는 없는 감정이나 온기 말고도, 형체가 있는 것을 갈망했다.

키스가 어때야 하는지 두 사람 모두 알지 못했다. 단순히 입술을 붙였다가 떼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금방 깨달았다. 그 다음은 사와무라에게 익숙한 순정만화와도 상상과도 달랐다—쿠라모치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입안에서부터 연결되는 것도 모자라, 하나하나 먹혀가는 느낌이었다.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불안에 삼켜지는 것보다야 나쁘지 않았다. 모호한 앞날과는 달리 정체가 분명했다. 일방적인 것도 아니었다. 저항하기도 하고 순응할 수도 있었다. 쿠라모치는 숨이 차올라서 따라가기가 벅찰 때면 페이스를 맞추어주는 상대였다. 괜찮다는 말이 호사나 사치라고 생각하면서, 이대로라면 괜찮지 않다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도 괜찮다는 말이, 잘했다는 칭찬이, 이름을 부르면 돌아오는 상냥한 미소가 계속 보고 싶어서 이래도 될까 하는 의문은 금방 잊혔다. 소등시간이 지난 방 안은 두 사람의 세계가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조금 더를 원해도, 쿠라모치에게 적당한 거리란 사와무라의 등을 바라보는 유격수와 포수간의 거리나, 발로 차주기 좋은 조금 떨어져 있는 거리나, 혹은 그보다 가깝게는, 관절기에 괴로워하는 얼굴을 내려다보는 정도의 거리였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는 어색했다. 그리고 경계가 때때로 사라지는 지금은 두려워질 때가 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많았지만, 잘못하면 모든 것을 깨뜨릴 것 같았다. 이렇게 달콤해도 괜찮은 것일까. 어둠 속에서는 말랑말랑하다고만 느껴지는 살결은 손안에서 녹아내려서, 쿠라모치가 원하는 대로 모양을 바꿀 것 같았다—혹은 손안에서 넘쳐흐를지도 모른다. 그대로 손에서 놓쳐버리는 것은 아닐까. 장난으로 걸었던 관절기를 그대로 빠져나가 버렸듯이.

“……선배. 쿠라모치 선배, 무슨 생각해요?”
“응?”
“자는 것도 아니면서, 멍하니 있잖아요.”

반사적으로 대답을 하자 사와무라가 툴툴대면서 고개를 가까이 붙여왔다. 팔베개를 하던 팔이 슬슬 저려오는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팔을 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선배, 자기 전에 키스.”
“너 키스하는 거 좋아하더라.”
“당연하잖아요. 겨울 합숙 끝나고 바로 휴일이니까, 그 전에 잔뜩 해둬야지요.”

그러니까 선배—조르는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쿠라모치에게 갑자기 찾아온 불안은 쓸데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와무라의 말대로 당장 걱정해야 할 것은 며칠 앞으로 찾아올 겨울합숙이었다. 입술을 붙였다 떼자 히히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째 짐이 더 많아진 거 아니야?”
“아, 그게요…….”

연말연시 휴일이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온 사와무라는 집에 돌아가기 전보다 더 불룩해진 가방을 매고 있었다. 옷이 늘어난 것인가 지레짐작하며 쿠라모치가 한마디 하자, 침대 옆에 가방을 내려둔 사와무라는 지퍼를 열고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쿠라모치는 뒤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짠!”

하고 보인 것은, 쿠션. 크기로 보아서는 베개로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쿠라모치는 베개 한가운데에 떡하니 적힌 NO는 무시하기로 했다.

“뭐야 그게.”
“응? 아, 이게 아니라, 반대에요 반대.”
“그러니까…… 베개잖아.”

단순한 베개는 아니었다. 반대로 돌리자 이번에는 분홍색 천에 한가운데에 하트, 한가운데에는 좀 전과는 반대로 YES라는 글자가 있었다—이것의 용도는 쿠라모치도 알고 있었지만 사와무라가 무엇 때문에 이런 걸 가져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기에, 짐짓 모른 척, 이상하다는 척 대답했다. 그렇지만 사와무라에게 받은 것은 싸늘한 시선이었다.

“선배 알면서 그러지 말아요.”
“……이런 건 왜 가져온 건데?”

그런 말을 들었으니 쿠라모치도 계속 모르는 척 할 수는 없었다. 포기하고 던진 질문에, 사와무라는 베개를 끌어안았다.

“항상 키스라거나, 하고 싶으면 나만 물어보는 거 같잖아요. 합숙 전에도 그랬고…….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쿠라모치 선배는 말하기 쑥스러워하는 것 같아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사온 거예요!”

뿌듯하다는 표정으로 웃는 사와무라를 내려다보던 쿠라모치는 헛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으려 애쓰며 자리에 앉았다. 내려다보는 각도가 심장에 좋지 않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 주는 건 어처구니없었지만 귀여운 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사와무라의 품에서 베개를 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내가 뭘 하자고 할 줄 알고.”
“글쎄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괜찮아요, 좋아하니까.”

그 대답에 만족하며, 쿠라모치는 사와무라의 입술을 엄지손가락으로 먼저 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