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re do we go from here

팬바님에게 드리는 미사와.

 

겨우 한 살 차이. 가끔은 선배라는 호칭도 붙이지 않고 풀네임을 부르는 상대로, 1년 반, 아니 그것보다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사와무라의 공을 받아준 사람. 가끔은 얄밉기만 하지만 사와무라 역시나 서슴없이 대하고 있기에 그렇게 구는 것도 받아들이고 용서하며, 실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언제나 사와무라와 마주보고 있을 것만 같은 상대—였다.

탁자 위의 마이크를 사이에 두고 수많은 카메라를 마주한 미유키 카즈야가 사와무라에게는 멀게만 느껴졌다—지금 미유키의 미래는 확실했고, 그 앞에 모호함 같은 것은 없는 것만 같았다. 사와무라와는 달랐다. 저것은 내일, 혹은 몇 주 후에는 종이 위에 남아서 누군가가 동경할 모습이 되겠지. 사와무라가 처음 그를 만나고 나가노로 돌아온 후에 사 보았던 잡지 기사처럼 말이다.

 

여름고시엔이 끝나고 3학년들이 은퇴했다. 신팀의 체제가 잡힌 그들을 맞아준 것은 수가 조금 늘어난 관중들. 이제 고시엔이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게 된 지금 신팀에게 걸린 기대는 컸다. 단순히 남겨진 1,2학년들에게만 그 기대가 전보다 더욱 크게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픈 마음은 물론 있었다. 그리고 여름까지의 성적이 선배들의 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는, 이번 팀은 전보다 못하다는 말을 듣지 않겠다는 각오 또한 있었다. 마음만큼은 그랬다. 도대회가 중반을 지날 때까지는 그것을 증명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정작 현 멤버들이 그것을 보여주고 싶은 선배들은 진로 결정이다 뭐다 하는 이유로 결승전에 올라가면 같이 응원을 가겠다며 말한 적이 있었다. 사와무라는 그런 선배에게 결승에야 당연히 갈 테니 선배들이야말로 약속을 지키라고 큰소리를 쳤다. 대진표에 남은 상대를 얕봤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자신이 있었고, 그렇게 말하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를 따라주지 않았다. 가을대회에서 선발대회 진출을 확정짓기는커녕 결승까지 가기도 전에 떨어졌다.

기숙사로 돌아온 후에야 사와무라는 선배들에게 직접 패배를 보고할 수 있었다. 선배들은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는지, 실망했다는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그런 최악의 상황은 가정하기 쉬웠다. 실제로 사와무라를 바라보는 선배들의 얼굴은 사와무라가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작년 늦가을에 그랬듯이, 진구구장의 스탠드에 있는 선배들에게 당당하게 인사하고 싶었다. 은퇴를 한 그들의 고교야구는 끝나서 더 이상 같이 뛰지는 않지만, 그럴 수 없지만, 좀 더 오랫동안 경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괜찮아, 여름이 있잖아.”

그 때는 응원 못 갈 것 같지만—사와무라의 어깨를 두드리며 미유키는 그렇게 덧붙였다. 사와무라는 입술을 깨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미유키가 건넨 위로의 말은 선배로서는 당연한 것이었을 것이다. 1학년 때는 저것보다 거친 격려의 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선배들과의 차이를 느껴버리게 되는 말이었다. 지금의 팀으로서는 힘이 부족했다. 다시 한 번, 고시엔에 갈 수 있는 힘이—미유키가 주장으로 있었을 때는 할 수 있었는데.

미유키에게서 축하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고 사와무라가 깨달은 것은 기숙사 방에 돌아온 후였다.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그리고 기대했던 대로 미유키는 프로지망서를 제출했고, 바로 며칠 전에 있던 드래프트회의에서 지명을 받았다. 같은 학교의 선배가 프로가 되는 순간을 본 것은 처음이었던 사와무라에게는 신기한 장면이었던 데다가, 그 날은 모두 자기 일처럼 미유키를 축하하기에 바빴다.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느낀 것은 그 이후였고, 지금이었다. 그를 축하한 만큼, 그가 축하해주기를, 아니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는 결과를 낼 수 있기를 바랐다. 마음만큼은 반드시 그를 따라가고 싶었지만, 제대로 할 수 있는 걸까. 그런 고민은 얼른 털어버리고 다시, 쫓아가야 했다. 경기장에서 다 나왔다고 생각한 눈물이 다시 나오는 것을 사와무라는 억지로 닦고 또 닦았다.

 

겨울 합숙이 끝나고 짧은 휴일이 주어졌다. 두 번째 귀성은 첫 번째보다 조금 더 바빴다. 나가노에 돌아온 사와무라는 늦게나마 고시엔까지 응원을 와준 동네 주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다니기에 바빴고, 그런 후에야 휴일다운 휴일을 보내게 되었다. 연습 일정이 시작되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있지 않았지만 사와무라는 나가노에서 휴일을 꽉 채워서 보내는 대신 일찍 도쿄로 돌아갈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첫 참배를 하러 모인 친구들은 에이쥰에게 왜 그렇게 일찍 돌아가는지를 물어보았다. 이미 가족들에게 들은 질문이었기에 대답은 술술 나왔다. 올해는 준비해야 할 게 많잖아—여름에는 꼭 고시엔에 나가야 하니까. 강호교는 다르다는 감탄에, 너무 연습만 하지 말라는 타박에, 응원 갈 테니까 열심히 하라는 말을 전하는 친구들에게는 차마, 마음이 조급해지는 또 다른 이유는 이야기하지 못했다.

도쿄와 나가노를 왕복하는 것에도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전철 안에서 깜빡 잠이 든 사와무라는 니시고쿠분지역에 도착하기 몇 분 전에 눈을 떴다. 눈을 뜨고 열차가 멈추어 섰을 때 보인 역 이름에, 내릴 곳을 지나치지 않았다고 안도하며 열심히 반대편 창밖을 바라보며 잠들지 않도록 노력했다. 전철역에서 학교까지 돌아가는 길은 한산해서, 푸근한 편이라고는 해도 찬 겨울 날씨가 더 춥게 느껴졌다. 기숙사 입구가 눈에 들어왔을 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길게 내쉬자 잠시 입김에 시야가 흐려졌다.

연습 일정이 시작되기까지는 아직 이틀이나 남았지만, 기숙사에 돌아와 있는 것은 사와무라 혼자가 아니었다.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가, 운동복 차림의 미유키를 발견한 사와무라가 말을 걸었다.

“아… 미유키—선배?”
“벌써 돌아온 거야? 내일은 되어야 올 줄 알았는데.”
“집에 있으려니까 심심하잖아요.”

사실과는 거리가 있는 대답이었지만, 미유키가 사와무라의 대답을 의심하는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그는 사와무라에게 반가운 답을 내놓았다.

“잘됐네. 그럼 이따가 같이 연습할래?”
“앗, 오랜만에 공을 받아줄 마음이 든 겁니까?”
“글쎄—봐서.”

얄미운 미소와 함께 미유키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사와무라가 기숙사 방에 가방을 두고, 옷을 갈아입고 미유키를 불렀을 때는 미유키의 손에도 미트가 들려있었다.

 

“오늘은 더 받아달라고 하지 않더라.”
“미유키야말로 오늘은 어쩐 일로 군소리 없이 받아준 건데요?”
“오랜만이잖아. 거기다가, 그래도 좋은 인상은 남겨줘야지.”

오늘의 미유키는 현역시절과는 달리 공을 받아달라는 사와무라의 투정을 순순히 들어주는 모양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사와무라는 이것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쉽사리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어려운 기분이 들었었다. 칭찬을 들었던 건 기분 좋았지만, 매일 오버워크 하지 말라고 말했던 게 누군데요! 라고 말하면서 적당히 연습을 끊었다. 의아하다는 표정이기는 했지만 미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금은, 미유키의 방에서 마사지를 받고 있었는데—

“아야야야야. 미유키 역시 마사지 할 줄 모르는 거 아닙니까?”
“무슨 소리. 네가 집에 가있는 동안 몸이 굳은 거 아니야?”
“그럴 리가!”

불평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미유키의 마사지는 무언가 어색한 구석이 있는 것만 같았다. 사와무라를 주로 상대해주는 카리바나, 후배인 유이나 코슈와 비교하자면 무언가 불만스러운 부분이 남는 손길. 그렇지만 미유키에게서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기에 사와무라는 잠자코 있기로 했다. 방금 전 미유키의 말대로, 좋은 인상을 더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니까.

“이렇게 마사지 해주는 것도 마지막이네.”
“별로 해 준 적도 없으면서.”
“그건—그래. 미안하네.”
“아니……. 그런 얘기 듣자고 한 말은 아닌데요.”

오늘의 미유키는 정말로 이상해서 미안하다는 말까지 순순히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사와무라가 피하려던 마지막이라는 말도 미유키는 먼저 꺼내고 있었다. 사와무라는 미유키와 같은 방을 쓰는 쿠라모치나, 다른 선배들에게서 미유키의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듣곤 했다. 야구부의 졸업예정자 중에는 이미 기숙사를 퇴소한 선배들도 있었는데 미유키는 아직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거기다 연초에 다시 기숙사로 돌아왔다. 미유키가 언제 기숙사를 떠나는지는 아무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사와무라는 학교로 일찍 돌아와야 했다. 연습도 연습이었지만, 졸업식 전에 조금이나마 얼굴을 더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에. 미유키가 아직 기숙사에 남아있는 것은 사와무라에게 있어서는 행운이었다. 미유키 본인은 아무렇지 않게 마지막으로 보는 거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쉬웠지만. 등을 보이고 있다는 게 사와무라에게는 다행이었다. 미유키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도 볼 수 없었지만, 그에게 서운하다는 표정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사와무라가 입을 다물고 있는 사이에 미유키는 마사지를 이어갔다. 그렇게 있는 것도 불편하게 느껴지기 시작했을 때, 다 끝났는지 미유키가 어깨를 토닥거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이 이름을 불렀다.

“사와무라.”

양 어깨를 떠나지 않은 손이 조금 간질거리는 것 같았다.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보아도 여전히 미유키의 얼굴은 보일 리가 없었다. 뭡니까? 사와무라가 말을 건넨 순간이었다.

“다른 건 다 챙겼는데 너는 두고 가야 하네.”

힘없이 툭, 사와무라의 목덜미에 미유키의 불안이 닿았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괜찮아요, 미유키. 꼭 따라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