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17

쿠라모치 생일 축하해. 쿠라사와를 쓸 때 쿠라모치 시점으로 많이 쓴 거 같아서 이번에는 사와무라 시점으로…

 

쿠라모치가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몇 달이 지났다. 먼저 연락하기 좋은 날은 이 날밖에 없다는 것 같다고, 사와무라는 깨달았다.

 

15일. 자정이 지난 직후에는 같은 방의 후배들에게, 그리고 아침에는 부원들에게, 등교한 후에는 반 친구들에게 모두 축하인사를 받고 난 후,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쿠라모치에게서 생일 축하한다는 문자가 왔다. 쉬는 시간이 올 때마다 사와무라는 몇 번이나 휴대폰을 꺼내 그것을 보았다. 사와무라가 실실 웃는 모습을 보고 카네마루가 또 저런다는 표정을 지은 것이 몇 번인지 사와무라는 모른다. 그렇지만 고맙다는 답장을 읽고도 그 아래로 별다른 말이 없자, 기분이 좋던 것도 점점 사라졌다. 결국 마지막 수업이 시작하기 전, 그런데 많이 늦었네 쿠라모치, 하는 문자를 보낸 다음에야 화면 밑으로 말풍선이 늘어났다. 연습이 끝나고 침대에 누운 다음에야 메신저 화면을 확인한 사와무라는 그것을 만족한 듯이 바라보면서 무언가 더 말을 하려다가 폰을 붙잡은 채 그대로 잠들어버렸다.

처음으로 16일이 지루하다고 느껴진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아침 훈련도, 아침식사도, 수업도, 모두 평소와는 다르지 않았고 지루하게 느껴질 이유도 특별히 없었는데. 하나 있다면 어제와는 다르다는 걸까—라는 데까지 생각이 닿자, 깨달았다. 이건 모두 쿠라모치 선배 때문이었다. 하필이면 17일이 생일일 필요는 없었는데 그 날이 생일이라 그런 거였다. 하필이면 그랬던 바람에 지난 2년이 즐거웠다. 15일이 지나도 그 다음날도 무언가 특별한 날이었던 때였다. 지금은 아니었다. 사와무라의 생일은 끝났고, 아직 나이가 같다는 핑계로 반말을 써도 내일 두고 보자며 표정을 구기는 선배는 핸드폰 화면을 뚫고 나오지도 않을 것이고, 들키지 않게 깜짝파티 비슷한 것을 준비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어졌다. 지금 떠오르는 것은 그런, 더는 일어나지 않을 일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속상했지만 오늘은 쿠라모치에게서 아무런 문자도 없었다.

 

같은 방을 쓸 때는 몰랐는데 사와무라가 쿠라모치에 대해 아는 것은 정말 적었다. 기숙사에 남겨둔 색이 바랜 포스터를 빼고는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잘 몰랐다. 주말 리그전이 있다는 것은 들었지만 사와무라가 결과를 찾아보는 일도 뜸했다. 거기다 쿠라모치는 1학년. 아직 주전이 보장된 것은 아니었기에 결과를 찾아본다고 해도 쿠라모치의 이름이 거기에 나오는 일은 매우 적었다. 쿠라모치가 하는 이야기라고는 연습에 대해서나, 사와무라가 알지 못하는 선배들, 대학 수업의 어려움 같은 이야기였다—고등학교 때 쿠라모치는 사와무라처럼 수업을 따라가지 못한 적은 없었지만, 적어도 사와무라가 알기에는 그랬지만, 그런 쿠라모치의 입에서도 어렵다는 말이 나온 것을 보면 역시 대학 강의는 고등학교와는 다른 모양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다른 것도 그랬다. 쿠라모치가 얘기하지 않는 것은 많을 것이고, 사와무라는 짐작만 할 뿐이었다.

쿠라모치가 있는 새로운 환경이 궁금해서 조금 더 알고 싶은 마음은 가득했다. 동시에 귀찮게 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다. 쿠라모치도 말하지 않았는가, 대학 생활은 힘들다고. 3학년이 된 사와무라는 쿠라모치처럼 후배에게 신경써주는 선배가 되고 싶었고, 그를 따라하려다 보니 조금은 그렇게 된 것 같았다. 그렇지만 아직은 멀었는지도 모른다. 배려라는 것은 어디까지 해도 괜찮은 것인지 알기 힘들 때가 있었다. 그런 망설임은 언제나 대화창의 대화를 애매하게 끝내게 하고, 중간에 끊어진 대화를 쉽사리 이어가기 어렵게 만든다. 쿠라모치라면 분명 이제 와서 무슨, 이라거나 아니면 후배 주제에 누구를 신경 쓰는 거냐며 건방지다는 말을 할지도 모른다. 그런 것은 문자로 전하는 것도 이상하기도 하고, 거기다 다른 이야기를 하기 바빠서 사와무라는 마음속 어딘가에 담아두고, 가끔 괴로워할 뿐이다. 오늘 같은 때. 마지막 대화는 15일에서 끊긴 채였다. 17일이 되기까지는 아직도 시간이 남아있었다.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였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16일의 사와무라와 쿠라모치처럼 선후배가 아닌 동갑내기 친구—는 될 수 없지만, 그런 단순한 선후배가 아닌 사이라면 좋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와무라는 몇 번이나 문자 입력창을 가득 채웠다가 지워버리기를 반복하다가 자정이 다가오자 한 문장을 쓰고 일자가 바뀌기를 기다렸다.

쿠라모치 선배 생일 축하해요!

 

 

전에 선배한테 먼저 문자 보내도 되는건가요? 하는 반응을 보인 후배 이야기를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어서, 선후배간의 예의에도 익숙해진 사와무라도 그런 거 따지기 시작하게 되었다면… 하는 설정. 저 즈음 쿠라모치는 졸업하고 났더니 시끄럽던 후배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 것 같은데 건방지고 짜증난다—언제까지 이러나 보자 하고 버티다가 생일날도 조용한데 그냥 넘어가기는 미안해져서 오후가 되어서나 문자를 보낸 거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