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au

F1au의 사와무라가 엪원에서 은퇴한 직후

 

시즌이 끝나기 전에 사와무라의 거처도, 그의 자리에 들어올 드라이버도 결정되었다. 정점의 무대와 한정된 자리. 흔한 이야기였다. 쿠라모치에게 F1에서 은퇴라는 말은 이제는 과거같은 무게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드라이버들은 본인의 의지로 혹은 어쩔 수 없는 이유로 포뮬러원을 떠나 다른 시리즈에서 활동하다가 한참 후에 드라이버로서 은퇴하기도 한다. 응, 특별할 건 없었다. 그렇지만 스즈카에서 사진을 찍는 것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스즈카 8시는 이륜이었던 것 같고, 내구에는 일본이 있던가. 은퇴가 은퇴가 아니라고 해도 돌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환승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사와무라와 자리를 같이 했다. 소속팀의 유니폼은 입고 있지 않았지만 공항에는 피트의 익숙한 얼굴들이 이곳저곳 모여있었다. 사와무라도 머리에 모자를 눌러쓰고 있어서 평범한 관광객처럼 보였다. 나이보다 조금 젊어 보이는. 뭐든지 얼굴에 금방 드러나는 타입이라고 쿠라모치는 생각했는데 사와무라도 역시 나름 베테랑 드라이버였다. 알 만한 사람들은 소문을 다 알고 있기는 했지만 사와무라는 쿠라모치에게 직접 거취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내년에는 내구로 간다고.”
“뭐 그렇게 되었어요.
“흐응…… 바쁘네.”
“왜요, 쿠라모치 선배는 제가 백수가 되는 꼴을 보고 싶습니까?”
“너 팀이 팀이었으니까. 돈 많이 벌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 이제 쉬어도……”
“괜찮을리가 없잖아요! 댁은 일 중독이면서.”

풀타임으로 그랑프리를 따라갈 정도로. 부정할 수 없는 말에 쿠라모치는 웃으면서 벤치에 등을 기댔다. 사와무라는 입을 다물어버린 그의 눈치를 보다가 중얼거렸다.

“……나머지는 집에 가서 얘기해요.”
“어. 너 나한테 얘기할 거 많잖아?”

그냥 이야기가 듣고 싶을 뿐이었다. 다른 옵션은 없었던 것인지, 시리즈를 바꾸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지. 그런 것. 순간의 이미지로 이야기를 전하는 그였지만, 사와무라의 고민은 훨씬 오랜 시간동안 이어진 것이었다. 그가 알지 못한 채 셔터를 누르고 보정을 하는 내내. 쿠라모치가 사와무라의 인생에 대해 뭐라 간섭할 이유는 없었기에 그는 마지막 경기까지 사진을 남길 것이다.

사와무라의 새로운 일정은 쿠라모치가 알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르망 24시라는 이름 그대로 24시를 살아남기위한 대비는 2시간 남짓 되는 플레이타임을 위한 포뮬러원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신기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사와무라의 일정이었다. 쿠라모치는 프리시즌 테스트와 런칭이라는 익숙한 캘린더를 준비할 뿐이었다.

그리고 하나 더 달라진 점이 생겼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 사와무라는 쿠라모치를 앉혀놓고 올해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자고 했다.

“어쨌든 우리 둘 다 내년 캘린더가 나온 거 같으니, 경기가 겹치지 않는 주말을 볼까요.”
“어쨌든 르망은 무리네. 올해는 겹치니까.”
“으응……”
“어차피 24시간을 버틸 자신이 없어서 안된다고 거긴.”
“그래도 첫 르망인데… 애정이 식은 거 아닙니까, 쿠라모치 선배.”
“……그 주에 새 서킷이잖아. 조금 봐달라고.”
“아, 정말이다. 좋겠다, 선배. 거기 가 보고.”
“…….”

새 서킷이라는 말에 부럽다는 말을 꺼내는 거 보면 역시 후회하는 건가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쿠라모치는 무시하기로 했다. 포뮬러원 일정은 1년에 한 번 있는 레이싱계의 최대 이벤트인 르망 24시와는 겹치지 않게 일정을 짜는 편이었지만, 올해는 불가피하게 일정이 겹쳐서 레이스 시작 시간을 조정하는 것에 그쳤다. 따라서 쿠라모치가 사와무라의 르망 데뷔를 보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거기다 아무리 봐도 일정이 겹치지 않는 경기가 별로 없었다. 쿠라모치도 시리즈를 옮기거나, 아니면 몸을 두 개로 늘려야 했다. 물론 둘 다 불가능하다.

“후반에는 일정 안 겹치는 경기도 좀 있으니까… 구경하러 가 볼게.”
“꼭 와야 됩니다? 뭐, 하긴 선배도 초보니까 올해는 6시간부터 시작하고 르망에는 내년에 도전해 봐요!”
“네가 내년에도 거기 있으면.”
“당연하잖아요?”

구경하러 가겠다는 말에 사와무라의 표정이 금방 밝아졌다. 좋게 생각하자. 6시간이라면 마냥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24시간과 비교하면 괜찮은 경기시간이다. 후반이면 사와무라도 새 시리즈에 많이 적응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년이면 사와무라도 루키가 아닐 것이고, 서로 다른 캘린더를 가지고 생활하는 데에도 익숙해질 것이고… 무엇보다 쿠라모치가 포뮬러원 드라이버 사와무라를 아주 조금 더 좋아하는 지금과는 달리, 앞에 아무것도 붙지 않은 드라이버 사와무라를 더 좋아할 것이다. 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