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성장통

사와무라 고3, 쿠라모치 대1 설정.

쿠라모치가 응원을 왔다. 나중에 올 것이라는 말은 한 적이 있지만 정확히 언제 올 것이라는 연락이 없었기에 경기가 끝난 후에야 사와무라는 쿠라모치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오프가 얼마 없어서 자주 볼 수 없던 사복차림에 (트레이닝복이 아니었다!), 이전과는 다른 헤어스타일 때문에 같은 객석에 앉아있어도 단번에 알아보지 못한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맞나보다—한참 빤히 쳐다보는 사와무라에게 쿠라모치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쿠라모치 선배 맞아요?
그럼 누구겠어. 이게, 선배 이름도 잊어버렸냐.

잊어버렸을 리가 없다는 말을 하지도 않고 사와무라는 그냥 실없이 웃었다. 그런데도 익숙한 타이킥 같은 것은 날아오지 않았다. 아마 부원들이 모두 힐끔힐끔 쳐다보며 정체를 궁금해 하는 일행 때문일 것이다. 응응, 이런 건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옆에 계신 분은 누구세요?
아—우리 매니저.
안녕하세요.

이름을 듣고 사와무라가 꾸벅 인사를 하자 그녀도 반갑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정말 그냥 매니저입니까? 여자친구가 아니라? 눈빛으로 쿠라모치에게 물어보았지만 그 질문을 눈치 채고도 모른 척 한 것인지 전혀 모르는 것인지, 쿠라모치는 사와무라의 한 학년 아래의 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눌 뿐이었다. 두 사람이 돌아가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굳이 대답을 들을 필요가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아프기 시작한 것은 그 다음부터였다. 흔히 말하는 실연의 아픔은 아니었다. 실연이라고 말하기도 이상했다.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에야 좋아했다는 것을 알았으니 말이다. 그냥 갑자기 외로워져서 낮 동안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머리가 조금 혼란스러워서 멍하니 있는 일이 많았고 (카네마루의 증언에 따르면 평소에도 그랬는데 평소보다도 심각하다고 했다.) 밤이 되면 몸이 아팠다. 거의 매일 밤마다 무릎도 발목도 시리도록 아파서, 인대가 늘어난 건가, 어디 잘못된 건 아닌지 걱정을 했지만 병원에서는 아무 문제도 없다는 이야기만 들을 뿐이었다. 아직 한참 자랄 나이니까. 얼마동안 그렇게 아팠고, 밤마다 그것을 핑계로 끙끙대도 그것이 다른 이유라는 것을 알지 못할 룸메이트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이제 와서 고생이라는 말을 할 뿐이었다.

합격통지를 받은 대학을 바꿀 수도 없었으니 야구부에서 쿠라모치를 만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사복차림의 쿠라모치를 보았을 때는 전보다 조금 어른스러워졌다고 생각했지만, 야구부의 쿠라모치는 고등학교 때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는 모양이었다—사와무라가 입학했을 때 반쯤 주전 자리에 들어가 있는 것도 그렇고, 이번에는 다른 방이지만 기숙사에서 만나는 모습도 전과 다름이 없었고, 틈만 날 때면 장난을 거는 것도 똑같았다.

선배 지난번에는 여자친구 앞이라고 내숭이었던 거지요? 어떻게 사람이 나이를 먹었는데도 똑같냐.
여자친구는 무슨 여자친구야.
지난번에 왔을 때 옆에 있던 매니저 씨—그런 거 아니었어요?
아니거든.

발로 차인 것이 퍽 아팠다. 꽤나 기분 나쁘다는 듯이 사와무라를 바라보는 쿠라모치의 표정을 보니 거짓은 아닌 것 같아서, 더 이상 매를 벌기도 싫고 사와무라는 입을 다물었다. 쿠라모치도 거기서 멈추고 이야기를 이었다. 그렇게 아팠던 것 치고 극적인 성장은 없었지만 연말에 집에 돌아간 사와무라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키가 비슷해졌다며 다 컸다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그 사이 쿠라모치도 자란 것인지, 나란히 섰을 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전과 같은 모습의 쿠라모치였다. 이미 이전의 눈높이는 기억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익숙한 시야가 돌아와서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