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사와

엔딩곡이던가 캐릭송이던가 드라마시디 네타소재로

 

후루야는 사와무라가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 것을 바라보았다. 사와무라는 그 시선을 눈치 챈 것인지, 고개를 들고 거울에 비친 후루야의 얼굴을 마주하고 웃었다. 후루야도 그것에 미소로 대답하려고 했지만 거울 속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조금 낙담했다. 그런데도 사와무라는 여전히 싱글거리면서 웃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
“재미……라기보다는 그냥 안심해서.”
“흐응.”

손에 묻은 물을 털어내면서 사와무라는 답했다. 젖은 손은 곧 후루야의 팔을 잡아끌었다. 조용히 한숨을 쉬고는 후루야는 사와무라를 따라서 화장실에서 빠져나갔다.

5호실에서 화장실까지는 절대로 먼 거리가 아니었다. 세탁실을 바로 지나면 화장실이었으니 목욕탕보다도 가까웠다. 그런데도 한밤중에 화장실을 갈 일이 생기면 사와무라는 후루야의 방으로 찾아왔다. 벌써 고등학교 1학년생, 16인데도.

이미 사와무라에게 물어본 적이 몇 번이나 되었지만 후루야는 오늘도 사와무라에게 물었다.

“정말로, 왜 혼자서 못 오겠다는 거야?”
“얘기 했잖아!”

언제 그랬는지 제대로 기억이 나지는 않았지만 후루야는 반사적으로, 사와무라가 너무 시끄러워지지 않도록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사와무라가 대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던진 질문도 아니었다. 그저 습관에 가까웠다. 바로 옆에 붙어서 걷고 있는 사와무라를 내려다보자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분명 후루야의 질문에 대한 불만일 것이었다.

 

한밤중, 두 사람, 화장실, 이것이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후루야는 잘 기억하고 있었다.

잠이 들지 못한 채로 2층 침대의 바닥을 바라보고만 있던 밤이었다. 침대 바닥의 무늬가 낯익은 무언가로 보이지는 않을까, 눈을 감을 때 보이는 불규칙적인 무늬처럼,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면 다음날 아침은 아닐까 하고 있던 참이었다. 효과는 전혀 없었다. 그렇게 눈을 깜박이던 와중 비명소리가 들렸다. 기숙사에 들어온 이후에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큰 소리에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문밖에 있는 것은 사와무라였다. 복도를 기다시피 하는 자세로, 열린 문 사이로 나온 후루야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을 때 사와무라의 눈에 눈물이 고인 것 같았다.

“후루야!”

후루야는 가만히 사와무라를 내려다보며 방금 전처럼, 그 얼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읽어내 보자 했다. 하지만 그저 창백한 얼굴에 잠시 몸이 굳었다. 그런 얼굴을 본 적이 있던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 사이 사와무라는 후루야의 발치로 기어와서 다리에 매달려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사와무라의 그런 얼굴은 역시, 본 적이 없었다. 기숙사가 아닌 마운드에서 비슷한 얼굴을 본 적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방금 전의 표정은 그때와는 달랐다. 그때는 울분에 북받쳐서, 화를 간신히 억누르고 있던 모습이었지만 지금은—화는 아니었다. 그런 감정이 모두 빠져나간 얼굴이었으니까. 가까스로 몸을 굽혀서 사와무라의 어깨에 손을 두드렸다. 다행히도 사와무라는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안해 보이는 모습에 손을 잡았지만 손에서도 기운이 다 빠진 것인지 차가웠다.

“괜찮아?”
“으, 응. 괜찮아, 응, 지금은.”

미덥지 못한 대답에 손을 놓는 타이밍을 놓쳤다. 사와무라는 겨우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어느 한 방향을 한참 바라보았다. 뭔가 있나 싶어서 후루야도 고개를 그쪽으로 향해보았지만 이상한 것 없이 익숙한 기숙사의 풍경이었다. 문 앞으로 걸려있는 빨래와 복도에 놓인 운동기구, 희미하게 밝혀진 어둠 속에 잠겨있어서 지금은 들리지 않는 시끌벅적한 분위기.

“그러면 가서 자. 너 정말 시끄러웠어.”

사와무라의 손을 놓으면서 후루야는 말했다. 순순히 떨어진 손과는 달리 사와무라의 목소리는,

“저기, 있잖아…….”

한참을 그대로 머물렀다. 복도에서 두 번째의 방과 다섯 번째의 방, 몇 걸음만 걸어가면 되는데도 사와무라는 그 자리에 발을 붙이고, 후루야를 바라보지도 않은 채 바닥을, 복도 너머를 힐끔거렸다.

“……방에 들어가는 거 봐 줄 수 있어?”

사와무라의 말은 후루야에게 다시 한 번 매달지만, 머뭇거리는 것 보다는 분명한 태도가 후루야에게는 차라리 마음에 들었다.

“무서운 거라면 데려다 줄 수도 있어. 그렇게 멀지도 않고.”

그렇게 대답하면 사와무라도 화를 내면서 뭐라고 반박할 것이 분명했다. 평소 같았다면 그럴 타이밍이었다. 그렇지만 그날 밤 사와무라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는 놀라울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네가 그렇게 하고 싶으면.”

떨어졌던 손이 후루야의 옷자락을 붙잡고 있는 것에, 무엇인가 정말로 잘못되었다고 후루야는 생각했다. 선배가 깨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방문을 닫은 후루야는 순순히 5호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게 실수였는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로 사와무라는 한밤중에 후루야의 방에 숨어 들어와서는 같이 화장실에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아니, 요구했다. 후루야의 의사야 어찌되었든 상관없다는 것은 두어 번 그런 일이 반복된 후에 분명해졌기에 후루야도 더 이상의 시간과 잠을 낭비하지 않는 선택을 했다. 방을 나가자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되었다. 이런 한밤중의 불청객에도 익숙해졌다고 후루야는 생각했지만 귀찮은 것은 귀찮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동안에도 저 불청객은 여전히 밤의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은 것인지 혹은 후루야와 불편을 감수하고 보이는 친절에 익숙해져버린 것인지 다들 잠들어있을 시간에 몰래 방으로 찾아와 그를 깨우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그라운드를 달릴 때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 시간 뿐이었다. 이전까지의 대화를 생각해 보았을 때, 쿠라모치 선배는 깨웠을 때 혹은 그 이후의 관절기가 무서우니 패스, 하룻치는 2층이라서 멀다는 이유, 바로 옆방의 토죠를 깨웠다가는 나중에 카네마루가 뭐라고 할지 몰라서 등등, 사와무라 나름대로는 이것저것 생각한 모양이었다. 물론 그럼에도 후루야는 그 소거법의 결과로 나온 대답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사와무라가 끈질기게 누군가를 찾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분명했지만 사와무라는 우물거리면서 대답을 피할 뿐이었다. 무섭다는 말도 피했다.

하품을 해가며 화장실 밖에서 기다리던 후루야는 희꺼멓게 흔들거리는 세탁물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부는지 갑자기 등이 서늘해졌기에 어깨를 조금 움츠렸다. 화장실에서 나온 사와무라의 발소리가 눈앞에서 멈췄다.

“네가 왜 무서워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

후루야는 복도에서 시선을 돌려 사와무라를 바라보았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살짝 눈을 찌푸린 얼굴이었다. 사와무라는 5호실로 돌아가는 길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런 게 아니야.”
“아니야?”
“정말로, 나온다고. 그거.”
“그거? 바로 시작하는?”
“그럴 리가 없잖아!”

화를 내며 후루야의 소매를 잡아끌고 화장실에서 멀어진 사와무라는, 조심스레 뒤를 한 번 돌아보고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봤어. 귀신.”

삐죽 내민 입술 사이로 새어나온 단어에 소름이 끼친 것인지 과장되게 몸을 부르르 떨면서 사와무라는 후루야의 팔에 달라붙었다. 그 팔은 묵직했고 갑자기 사라지지도 않았다. 솔직히 사와무라는 입 밖으로 그 단어 자체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거울에 비친 웃고 있는 모습이 사와무라가 알지 못하는 얼굴이었다거나, 그 사실에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거나, 다시 거울을 바라볼 용기를 내지 못한 채 화장실에서 빠져나왔을 때 그 얼굴이 어느새 저 너머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거나—믿을 사람이 없을 것이 분명했다. 혹시나 그걸 믿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 사람에게는 단순한 호기심에 지나지 않을 이야기를 하자고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 다음날 아침, 시끄러운 식당에서 사와무라는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런 거 믿어?”
“정말로 봤으니까. 한밤중에 그런 게 쳐다보고 있으면 무섭다고.”
“혹시…… 보이는 사람이야?”
“설마, 나가노에서는 멀쩡했어.”

나가노에서는 아무리 늦은 시간에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녀도 그런 이상한 것과 마주친 적이 없었다는 것을 떠올리며 사와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모치선배가 분장한 걸 다시 보는 게 낫겠어. 사와무라가 계속 중얼거리는 소리에 후루야도 그저 적당히 맞장구를 치면서 걸음을 계속했다. 5호실까지는 정말로 짧은 거리였다. 후루야가 걸음을 멈추자 사와무라도 팔을 잡고 있던 손을 풀었다.

“그래도 내일은 집에 돌아가니까 괜찮겠네.”
“응—정말, 고마웠어. 내년에는 신세 지지 않도록 할게.”
“그래.”

5호실의 문을 열기 전에 사와무라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웃었다. 잘 자라는 말과 함께 문이 닫히는 것까지 바라본 후루야는 다시 한 번 하품을 하며 방으로 향했다.

“사람을 끌어들인다고만 생각했는데, 고생이네.”

목소리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중얼거린 말은 분명히 들렸을 것이다. 세탁일이 제각각이라 비어있는 날이 없는 지붕 아래, 색색의 옷감 너머로, 즐거웠기에 그리운 나날들을 잊지 못하는 희미한 것들.

그런 것들조차 모여드는 불가사의함은 별로 부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