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사와라이

나는 내 사약을 쓰고 싶었는데 어째서…… 바이크 레이싱 au

 

스타트라인을 지나는 순간 옆에서 시야를 가리는 바이크가 있었다. 홈 스트레이트, 마지막 승부처의 슬립스트림의 위력을 그런 식으로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체커플래그가 흔들리는 것은 분명했지만 순위는 알 수 없었다. 마지막 랩의 홈 스트레이트에는 그 전까지 보인 피트보드들이 없는 대신 피트월 위에 올라가 선수들을 기다리며, 접전을 응원하거나 이미 결정된 순위를 축하하는 크루들만이 있었다.

다만 우승이 아니라는 것은 확신했다. 다시 피트레인까지 돌아가는 한 바퀴가 멀게만 느껴졌다.

 

최경량 클래스의 파크퍼메에 서는 것은 시상대로 올라갈 선수들이 탄 단 세 대의 바이크뿐이다. 그 중 한 자리가 그를 위한 것이었건만, 첫 포디엄 피니쉬에 대한 감상 같은 것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첫 포인트 득점을 기억했고, 처음으로 3위에서 밀렸던 날을 기억한다. 그렇기에 처음으로 포디엄에 오르는 날은 좀 더 기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억나는 것은 그저 바이크를 기다리는 메카닉들이 있었고, 그에게 다가와 헬멧을, 등을 두드려 주었고 그것이 매우 시끄러웠고 그 사이로 헬멧에 가볍게 입술을 맞추는 소리도 있었고, 그를 들어 올리고 환호했다가 어느 새에 라이조와 사나다 앞에 내려주었다는 것이었다. 토도로키는 그저 반사적으로 두 사람이 뻗는 손에 기댔다. 라이조는 메카닉들이 그랬듯이 라이치의 헬멧을 두어 번 쓰다듬고 그를 끌어안았다. 멍하니 서있던 라이치의 바이저를, 그제야, 올린 것은 사나다였다. 잘 했어. 그 낯익은 목소리에 토도로키는 겨우 소리 지르면서 두 사람을 끌어안았다.

토도로키가 겨우 눈물을 보인 것은 시상대에서 내려온 후였다. 시상대에 오른 셋 중 아무도 샴페인을 딸 수 있는 나이가 되지 못했기에 국가 연주와 사진촬영만 있는 심심한 시상식이었다— 사와무라가 토도로키에게 물병의 물을 뿌린 것을 제외한다면. 하지만 시상대에서 내려와 인터뷰석으로 이동하는 와중 토도로키의 뺨을 타고 떨어진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손에 들린 트로피를 꽉 쥐고는 조용히 토도로키는 훌쩍였다.

“괜찮아, 토도로키?”

토도로키가 우는 것을 제일 먼저 눈치 챈 것은 인터뷰석까지 이동하면서 말이 없는 그를 힐끗힐끗 뒤돌아보던 사와무라였다. 사와무라의 말에 후루야도 깨닫고 걸음을 멈추었다. 사와무라의 말에 토도로키는 고개를 저었지만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다행인지 토도로키의 어깨를 붙잡은 사와무라는 왜 그러는데, 너무 기뻐서 그런 거야? 하고 약을 올리듯이 너스레를 떨었고 그 가벼운 분위기에 프레스 오피서도 그들을 재촉하지 않았다. 고개를 세차게 저은 토도로키는 콧물을 들이키고, 웃었다. 사와무라는 자리에 앉을 때까지 어깨에서 팔을 떼지 않았다.

세 사람 모두 어설픈 영어로 하는 인터뷰였기에 코멘트는 짧았지만, 기자들의 질문이 조금 길게 이어졌다. 예상했던 대로 토도로키를 향한 질문 중에는 첫 포디엄 피니쉬에 대한 감상이 있었다—눈가가 붉은데 그 정도로 좋았던 것이냐고. 대답을 머뭇거리는 토도로키를 힐끔거리며 쳐다보며 후루야도 사와무라도 공연히 어떤 대답을 나올지 긴장했다.

인터뷰와 간단한 사진 촬영이 끝난 후 토도로키 라이치는 라이조의 손에 이끌려 인터뷰룸을 빠져나갔다.

“정말로 울 정도로 좋았던 걸까.”

후루야가 두 사람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는 것을 사와무라가 받아쳤다.

“그것보다…… 속상했겠지. 너 때문에.”
“에.”

나 때문에? 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사와무라는 당연하다는 듯이 덧붙였다.

“너는 모를 거야.”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인지 후루야는 얼굴을 찌푸렸다.

“뭐야, 그게.”
“괴물 루키라고 불리는 후루야군은 이해 못한다는 말.”
“나…… 그 별명 싫어하는 거 알잖아.”

웃으면서 가볍게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사와무라는 프레스룸을 빠져나갔다. 후루야는 여전히 얼굴 표정을 찡그린 채로 그 뒤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런 건 나도 알고 있어.”

프레스룸으로 마중 온 크루치프가 후루야를 바라보았다.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들렸더라도 무슨 말인지는 모를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럼에도 그 다음 한 마디는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다.

 

오늘 파크퍼메에 모인 멤버는 그 때와 같았다. 오늘 가장 속상한 사람만이 달랐다.

사와무라와 후루야의 페이스는 조금씩 달랐지만 시즌 내내 유력한 우승후보자의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며 우승을 나누었던 만큼 점수 차는 극적으로 커진 적이 없었다. 지난 경기에서는 사와무라가 우승을 한 것으로 그 격차는 오히려 좁혀졌고, 챔피언쉽 결정은 마지막 라운드로 넘어갔다. 3포인트라는 애매한 차이로 수많은 경우의 수가 생겨났다. 꼭 둘 중 하나가 우승을 하지 않더라도 최후의 승자는 두 사람 중 하나로 정해질 것이었다.

최종 점검세션이 끝난 일요일 아침, 지난 라운드부터 챔피언쉽에 대한 질문은 부쩍 늘어났지만, 그처럼 긴장에 가득한 아침을 보낸 것은 처음이라고 사와무라는 생각했다. 지난 경기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경기가 끝난 후에도 사와무라는 후루야와 평범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경기가 마지막이네…….”

비행기를 타고 유럽으로 돌아오기 전날 밤, 쿠알라룸푸르 시내에서 같이 놀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 두 사람은 서로에게 말을 건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포옹을 한 크루들이 그리드에서 떠나고, 담당 메카닉도, 커다란 우산을 든 엄브렐라걸도 자리를 떴다. 탈막 위에 남겨진 것은 바이크와 바이크에 탄 선수들뿐이었다. 첫 번째 점등은 웜업랩이었다. 사와무라는 빨리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었다. 더 이상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그리드에 혼자 선 짧은 시간동안 심장은 엔진소리에 맞춰서 더욱 크게 쿵쾅거렸다. 스탠드는 매년 그랬듯이 가득 찼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폴포지션. 사와무라 앞에 서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3점 차, 우승과 준우승의 점수 차는 5점, 발렌시아전은 24랩.

스타트라인, 출발선 위의 붉은 라이트, 홈스트레이트 너머에 있는 첫 번째 코너는 보이지 않았다. 바이저 아래의 눈은 라이트를 향했다. 불이 모두 들어오고, 꺼졌다.

사와무라도 알고 있었다. 그 순간, 누군가는 분명 자신의 앞을 노려올 것이다. 첫 번째 코너는 언제나 가장 복잡했고, 사와무라도 후루야도 스타트에 강한 편은 아니었고, 이 클래스에서 초반에 선두를 유지하는 것은 때로는 현명한 일이 아닐뿐더러, 갭이 크지 않은 이상 경기 내내 선두를 지키는 것도 불가능했다. 모두 알고 있었다. 그런 것을 잊으려고 노력하면서도 페이스의 분배나 타이어 마모를 신경 써야만 했다. 홈스트레이트를 지날 때마다 보이는 피트보드로 확인하는 남은 랩 수와 포지션, 2위와의 차이는 매번 바뀌었다.

선두를 빼앗긴 것은 펜울티메이트 랩의 마지막 코너였다. 스타트라인을 지난 1번 코너에서 다시 역전에 성공했지만, 턴 5 이후로는 공방이 이어졌다. 마지막 코너를 다시 마주했다—남은 승부처는 그 너머의 스트레이트뿐이었다.

슬립스트림. 이 클래스를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그것이 마지막에는 사와무라의 아군이 되지 않았다.

3점 차이가 8점으로 다시 늘어났다. 시즌이 끝났다. 이 클래스에서 복수를 할 기회는 더 이상 없었다. 속도를 늦춘 후루야가 앞서 가다가 사와무라를 돌아보았다.

 

월요일 아침. 테스트 세션이 시작하기 전 연례행사인 올해의 챔피언들의 합동 사진촬영이 있었다. 가운데에는 프리미어 클래스의 우승자가, 그 왼쪽으로는 미들클래스의 챔피언이, 오른쪽으로는 최경량 클래스의—그러니까 후루야가 있었다. 내년에 쓰지도 못 할 1번이 달린 바이크를 타고 있었다. 손을 잡고 사진을 찍는 것이 정해진 포즈였건만, 후루야는 여전히 웃는 데에 약했다. 토도로키와 함께 피트월에 기대서, 오늘만큼은 트랙에 모두 모여있는 기자들을 구경하면서 사와무라는 중얼거렸다.

“한 번 쯤은 그게 어떤 기분인지 알게 해주고 싶었는데.”
“뭐가?”
“지는 거.”

카메라 플래시가 연이어 터졌고 사와무라는 트랙에서 등을 돌렸다. 피트월에 등을 기댄채로 그대로 쭈그려 내려 앉아 테스트 준비로 바쁜 개라지로 눈을 돌렸다. 토도로키는 사와무라를 잠시 쳐다보았다. 헬멧을 쓰고 있을 때도 사와무라는 표정을 읽기 쉬웠는데, 헬멧도 모자도 쓰지 않은 지금은 더더욱 그랬다. 토도로키는 그런 사와무라에게 뭐라고 말을 건네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토도로키는 다시 트랙 위에 선 세 사람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부럽다.” 혼자서 그런 말을 중얼거리고는 사와무라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 거 생각하고 있을 줄 몰랐어.”

토도로키가 기억하는 사와무라는, 어쩌면 그것이 파크퍼메의 사와무라일지도 모르지만, 언제나 웃고 있었다. 토도로키가 선 포디엄에는 모두 사와무라가 같이 있었고, 처음에는 둘 다 샴페인을 마실 수 없는 나이였기에 사와무라는 토도로키의 머리 위로 물병에 든 물을 쏟았지만 올 봄 들어 먼저 생일을 맞은 사와무라가 멀뚱거리며 서있는 토도로키에게 샴페인을 끼얹곤 했다. 바로 어제만 하더라도 그랬다. 개라지로 돌아온 라이치는 헬멧을 벗고 의자에 걸터앉아 라이조와 사나다를 바라보았다. “잘 했어.” “아까웠지.” 칭찬의 말을 아쉽다는 웃음으로 되돌려 주었다. 스크린에서는 사와무라가 웃으면서 후루야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었다.

“……나, 일본에서는 후루야한테 순위로 이겨본 적 없어.”

어제의 일은 그렇게 끝난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일찌감치 스페인에 온 것도, 저 자식한테 지는 게 싫어서 그런 거였는데.”

사와무라가 아랫입술을 깨무는 것이 보였다. 2년 전까지 일본에 남아있던 토도로키가 패덕에서 듣던 이야기와는 달랐다. 3년 전이었던가 4년 전이었던가, 어느 여름이 지났을 때, 사와무라는 단순히 루키즈컵 선발 테스트를 통과한 선수가 아니라, 시즌 중반에 스페인 시리즈에 데뷔를 한 나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유명인이었다. 하지만 지금 토도로키가 들은 것은 패덕에서 흐르던 이야기에서는 찾아보지 못했던, 본인이 직접 토로한, 열등감이었다.

하지만 실망하지는 않았다.

“멋있다.”
“뭐?”

처음 보는 사와무라의 놀란 모습을 바라보며, 토도로키는 그 다음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며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토도로키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루키즈컵, 이탈리아 시리즈, 스페인 시리즈, 일본 밖에도 무대는 넓었다. 하지만 긴장감에, 혹은 다른 문제로 번번이 교섭은 결렬되었고, 토도로키 라이치가 홈그라운드를 떠나 세계무대에 데뷔를 하게 된 것은 겨우 작년이 되어서였다. 떠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고, 자리를 잡는 일은 그것보다 더 힘든 일이 분명했다. 토도로키와는 달리 사와무라는 유럽에서 보내는 시간을 가족과 함께 하지 못했다. 패덕에서는 나름, 원만한 인간관계를 보이는 것 같지만, 혼자 사는 것이 어떤 경험인지 토도로키는 아직은 알고 싶지 않았다.

 

사진 촬영이 끝났는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제 적당히 인터뷰를 하다가, 저 기자들은 그 후에 시작될 오프시즌 첫 테스트를 구경할 것이다.

토도로키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자 사와무라는 어느 샌가 고개를 다시 개라지로 돌렸다. 셔터를 올린 개라지 안에서는 메카닉들이 작업에 한창이었다.

“같이 사나다 선배 테스트 하는 거 구경 갈래? 선배가 박스로 구경 와도 된댔어.”
“정말?”

기분이 바뀐 것인지, 표정이 밝아진 사와무라는 금방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아직 지피바이크는 가까이서 본 적 없는데.”
“나도.”

좋겠다, 역시 빠르겠지? 얘기 들은 거 없어? 사와무라는 신나서 떠들기 시작하며 토도로키의 손을 잡아끌다가, 곧 발을 멈추었다.

“아, 그런데 사나다상 어느 팀이었더라?”

 

사진 촬영이 끝났다는 말에 후루야는 겨우 끝났다는 표정을 지었다. 피트월 너머로 사와무라가 보였다. 사진 촬영이 시작할 때와는 달리 등을 돌린 모습이었다. 그 옆에 있는 것은 토도로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꽤나 즐거운 모양이었다. 사진 촬영으로 피곤해진 후루야는 이후에도 인터뷰가 몇 남아있다는 말에 고개를 푹 떨구며 한숨을 내쉬었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사와무라는 그 자리에 없었다.

사와무라는 후루야에게, 모를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그것은 마지막 순간에 지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가를 가리켰으리라. 그렇지만 후루야는 사와무라야말로 알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매번 어디론가 앞서 나가서, 등을 보이는 것은 사와무라였다. 일본을 떠난 것도, 패덕에서 친구를 만든 것도, 먼저 상위 클래스 계약을 따낸 것도, 샴페인을 뿌리기 시작한 것도. 후루야는 바이크를 돌아보았다. 1번을 쓰는 것은 오늘 하루뿐이었다. 오늘 테스트가 끝나고 일주일 후에 예정된 테스트부터, 그리고 겨울이 지나고 새 시즌이 시작하면, 내년에는 하나 위 클래스에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것이었다.

“나도 지는 건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