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네ts사와

 

every girl’s dream

웨딩드레스차림의 여성과, 여성이 끌어안고 있는 남성. 광고판의 문구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사람으로 가득한 번화가의 교차로에서 사와무라는 신호가 바뀌는 것을 참지 못하고 그새 지루해졌는지 몇 발자국 떨어져 있는 광고판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이뤄질 수 있는 꿈이라니 좋겠다.” 카네마루는 사와무라의 목소리를 듣기 전에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기 전에는, 그런 것이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분명 사와무라가 내뱉은 말을 잊을 수 없는 것은 카네마루뿐일 것이다. 아직까지도, 그녀의 목소리와 옆모습 너머로 보이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진과, 커다랗게 인쇄된 마지막 단어.

 

카네마루는 처음에 그것을 웃어넘기려 했다.

“오. 이제는 영어도 읽을 수 있나 보네.”
“나도 저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거든?”

카네마루가 빈정거리는 웃음을 거두지 않으며 그녀를 내려다보자 사와무라는 무시하지 말라고 화를 냈다. 아직도 1학년 때랑 같은 줄 아냐며 투덜대는 말을 끊은 것은 토죠였다.

“그럼 사와무라의 꿈은 뭔데? 저렇게 웨딩드레스를 입는 건 아니라면.”
“좋은 질문! 당연히 코시엔에 나가는 거잖아!”

물론 나갈 수 없다는 거 알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다른 건 생각하고 있지 않으니까. 잠시의 틈도 주지 않고 사와무라는 덧붙였다. 토죠의 질문에 보인 것은 딱 그만큼의 반응이었다, 자신의 대답이, 그 현실이 억울하다거나 분하다거나 하는 모습은 없었다. 그저 평소와 같은 모습. 무언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야 할 것 같았지만, 카네마루가 그러기도 전에 신호가 바뀌었다. 뒤에서 걸음을 시작한 사람들을 보며 카네마루는 사와무라의 어깨를 안고는 알았으니까 이제 건너자고 말을 꺼냈다. 인파 속에서 흩어지지 않게 토죠는 사와무라의 반대쪽 곁에 붙어서 아까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가볍게, 웃는 얼굴로.

“어쩐지 사와무라라면 그럴 줄 알았어. 나도.”
“그렇지? 그러니까 토죠도 힘내서 후루야한테 지지 말라고.”
“으음, 그건 너무 어려운 주문이야.”

남자잖아! 라며 토죠를 격려하는 사와무라와 정말 곤란하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웃는 토죠를 바라보며 카네마루는 그저 토죠가 저 주제를 아무렇지 않게 접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빤히 바라보는 눈빛을 느낀 것인지 토죠는 카네마루에게도 싱긋 웃어 보였다. 카네마루라면 저런 식으로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이었다. 저런 식으로는 할 수 없었다. 사와무라의 피칭 연습에 어울린 지 일 년이 넘었는데도—어쩌면 그랬기 때문인가. 하지만 사와무라와 같이 연습을 한 것은 카네마루만은 아니었건만.

 

카네마루는 사와무라가 처음 포심을 배우던 자리에 있었다. 사와무라가 체인지업을 처음 성공했을 때도 그랬다. 사와무라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시범상대로 써먹는 것은 카네마루였다. 카네마루가 사와무라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나도 체인지업 하고 싶어.”

삐죽거리면서 사와무라가 토죠를 빤히 바라보았다. 눈빛으로, 어째서 그렇게 손쉽게 하는 거야 그러니까 가르쳐 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토죠도 그런 것을 느꼈는지, 어색하게 웃으면서 카네마루와 눈빛을 교환했다.

“시범 한 번 보여줘.”
“그래.”

카네마루는 두 투수를 바라볼 뿐이었다. 다리는 이렇게, 팔은 저렇게, 같은 이야기를 한 토죠가 사와무라의 옆에서 다시 한 번 공을 던졌다. 그것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사와무라도 몇 번 공을 던져보았지만 결과는 아웃. 분하다며 신음소리를 내며 다시 공을 집어든 사와무라를 보다 못한 코치가 조언을 준 끝에야 사와무라도 감을 잡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첫 번째 성공은 우연일 수도 있었지만 두세 번이 넘어갈수록 사와무라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신이 나서는 이것도 저것도 시험해 보겠다고 요란을 떨기 시작했다. 몇 발자국 떨어져있던 카네마루에게 토죠가 다가왔다.

“아무리 코치가 있다고 해도 빠르네.”
“그런 거야?”
“응…… 생각보다 던지기 쉽다고는 했지만.”

공을 하나 집어 든 토죠는 글러브에 가볍게 공을 부딪히면서 사와무라와 카리바에게 소리쳤다. 사와무라, 이제 나도 연습하고 싶은데! 조금만 더 던지면 안 돼? 나도 다음 연습시합에 나가도 된다고 감독님이 그러셨는데. 두 투수들이 서로가 더 오래 던지겠다며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카네마루는 사와무라의 구속이 조금 빨라진 것 같은데 저걸 맞으면 또 아프겠지, 분명 처음에는 몇 번 맞힐 게 분명한데, 하는 것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무장을 한 카네마루는 배트를 들고 카리바 앞에 섰다. 그들도 더 이상 1학년이 아니었고, 후배도 생겼지만 결국 사와무라의 연습에 어울리는 것은 대부분 이 멤버였다. 처음에는 후배들이 사와무라에게—매니저가 아닌 야구부의 여자 부원에게—적응하지 못했다는 이유가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사와무라가 제일 편하게 느끼는 것이 이 두 사람이었는지 둘에게 부탁하고, 둘이 받아주는 빈도가 제일 높았다. 바닥에 배트를 두드리고는 배트를 들었다. 사와무라의 공에 맞아 주는 것에도 이력이 나있었다. 사와무라를 얕잡아 본 적이 없지는 않았다—처음에는 그랬으니까. 크리스 선배의 조언에 따라서 프로텍터를 풀로 장비하고 공을 맞았던 것이 다행이었다. 아무리 사와무라를 무시했더라도 경식구는 무시할 것이 못 되었다. 하지만 어디로 날아올지도 모르던 것이 적어도 이제는 몸에 맞는 볼이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진 지금도, 마스크까지 챙기는 것도 습관이 되었다.

“준비 됐으면 던진다?”

사와무라가 소리친 말에 카네마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글러브로 입을 가리고 집중하는 눈이 보였다. 경기에서는 볼 수 없는 눈이지만 덕분인지 사와무라의, 아니 투수가 누구든지 간에, 공에 맞는 것은 더 이상 무섭지도 않았다.

 

사와무라와의 연습은 어느 새엔가 사와무라가 집에 돌아가기 직전에 하게 되었다. 연습이 끝나면 사와무라는 매일 그렇듯이 기숙사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에서 카네마루를 기다린다. 트레이닝 복에 오른쪽 어깨에는 큼직한 스포츠백. 매일 수업이 끝나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교복은 가방에 넣는다고 했다. 훈련 시간이 끝나고 2층의 비는 방에서 옷을 갈아입은 적도 있었지만 요즘에는 그것도 귀찮은 것인지 훈련복으로 버티는 일이 늘어났다. 기숙사생들은 좋겠다고 카네마루에게 불평을 하는 일도 가끔 있었는데, 카네마루는 사와무라가 기숙사생이라면 분명 자율훈련시간은 더욱 늘어났을 것이라 확신했다.

“가자.”

계단을 내려가며 카네마루가 말을 건네자 난간에 기대어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사와무라가 카네마루를 올려다보았다. 머리를 풀고 있던 데다가 아래에서 비쳐지는 핸드폰 액정 탓에 잠시 카네마루는 흠칫 놀랐지만. 식당에도 아무도 없는 것인지 세탁실에서 건조기 돌아가는 소리만이 들렸다. 이 시간에 기숙사 밖으로 나가는 것은 기숙사에 입소할 때만 하더라도 카네마루의 예정에는 전혀 들어있지 않았지만, 이 시간에 사와무라 혼자 집에 걸어가게 둘 수도 없는 일이었다—딱히 크리스 선배의 언질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사와무라의 자취방까지는 이어지는 길은 전형적인 주택가였다. 이런 시간에는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고, 띄엄띄엄 가로등이 서있을 뿐이었다. 사와무라는 언제나 조용한 것을 견디지 못했다.

“조금 있으면 여름 합숙이네.”
“그렇지. 올해 러닝 꼴지는 누구려나.”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난 아닐 거거든?”
“너 작년에도 그랬거든?”

빤히 바라보면서 정말로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어보이자 사와무라는 입술을 쀼루퉁 내밀면서 투덜거렸다. 연습 중에도 종종 보는 모습이었다. 뺨에 달라붙어 있는 머리카락 때문인가 무언가 달라 보인다고 카네마루는 생각했다. 무의식중에 손을 뻗어서 머리카락을 뺨에서 떼어내었다.

“왜, 뭐 묻었어?”
“머리카락.”

카네마루의 손이 떨어진 뺨에 손을 가져다 대고 사와무라는 머리를 귀 뒤로 쓸어넘겼다. 하지만 곧 다시 머리카락이 귀를 가렸다. 미용실에 갈 시간도 없고, 머리 자르는 데에 쓸 돈도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사와무라가 어느새 길어진 머리를 연습할 때마다 끈 하나로 묶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할 수 없었다.

역시 카네마루는 사와무라가 연애라거나 결혼이라거나 하는 것에 진지해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없었다. 번화가의 길거리에서 사와무라는 이루어질 수 있는 꿈을 말했지만, 카네마루에게는 그녀의 꿈이 무엇인지 물어볼 용기가 없었다.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사와무라에게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가 꿈꾸는 것이었다, 하지만 학교 밖에서, 그라운드 밖에서, 그 때, 그것은 그가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교실에서는 소녀만화 이야기로 쉬는 시간을 보내고, 그 밖에서는 야구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등번호는 없는, 매니저는 아닌, 팀메이트의 꿈이란.

 

 

마지막 여름이 끝났다. 3년, 코시엔이라는 무대와 조금은 친해졌던 3년이 끝났다. 그가 이룬 꿈도 그 다음날에는 애매하게 남았다. 남아있는 여름방학은 매우 바쁘게 지나갔다. 진로를 결정할 시기가 되었다. 연습은 멈추지 않았지만 공식적인 부활동 행사는 이제 한둘을 제외하고는 남아있지 않았다. 학기가 시작되었어도 건물 밖에는 야구부의 여름 대회 업적을 알리는 현수막이 떨어지지 않았다.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에게서 쉬는 시간에 순정만화나 붙들고 있던 사와무라가 책을 붙잡고 있는 일이 늘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정말로 여름이 끝났다. 코시엔이라고 말하던 그녀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는 날도 끝났다고 그는 깨달았다.

 

방과 후, 기숙사 방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카네마루는 사와무라와 마주쳤다. 감독실에서 나오는 길인 모양이었다. 교복 차림에, 이전에는 자주 보던 커다란 스포츠백이 아닌 그것보다 가벼워 보이는 검은색 가방이 한 쪽 어깨에 들려있었다. 사와무라는 어깨를 조금 넘는 머리를 한 손으로 넘기면서 인상을 쓰고 있었다.

“이 시간에 여기서 뭐 해?”
“진로상담.”
“아.”

진로상담이라니 조금 늦은 시기가 아닌지 생각하면서도, 사와무라는 대학에 갈 것인지, 간다면 어느 대학을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카네마루의 입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카네마루가 그런 생각을 하며 망설이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와무라는 한숨을 내쉬면서 투덜거렸다.

“있잖아, 카네마루. 나도 여자야구부가 있는 학교에 가서 경기에 나갔으면 수험이 조금 더 쉽지 않았을까.”
“야구, 계속 하려고?”
“무슨 소리야 당연하잖아.”

잠시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곧 사와무라는 옛날에 타카시마 선생님은 왜 그런 얘기는 안 해 줬던 거람, 카네마루는 좋겠다 자기소개서에 쓸 게 많아서, 같은 말을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면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와무라가 계단을 다 내려갔을 때야 제정신을 차린 카네마루는 사와무라에게 소리쳤다.

“집에 가는 거야? ……데려다 줄까?”
“이 시간에? ……마음대로 해.”

계단 아래에서 카네마루를 올려다보며 사와무라가 답했다.

 

건널목을 건너고 카네마루는 길 건너의 광고판을 마지막으로 바라보았었다. 확실히 그런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었지만 야구 유니폼을 입은 사와무라라면,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