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라사와

바이크레이싱au로

 

전일본 로드레이스 선수권이 스즈카에서 시즌의 막을 내리려 하고 있었다. 예선을 마친 쿠라모치는 메카닉들과 함께 내일의 세팅 작업을 함께 하다가 팀과 같이 숙소로 돌아왔다. 책상 위에는 빌려온 노트북이 켜 있었지만 그는 침대 위에서 데이터시트를 뒤적이고 있었다.

 

쿠라모치 요이치가 처음 오토바이를 타 본 것은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자의에 의한 것이라기에는 미묘했다.

쿠라모치의 동네에는 유명한 폭주족 무리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들은 그저 요란하게 장식한 바이크를 타고 다니는, 조금 시끄럽지만 크게 유해하지는 않은, 그러나 분명히 미풍양속을 해치는 부류에 들어가는 무리일 뿐이었다. 폭주족이라는 말은 과거의 잔재. 어쨌든 모두들 그들을 폭주족이라고 불렀고 아직 어렸던 쿠라모치도 그들을 부르는 일이 있을 때는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올 때, 길가에 바이크를 세워두고 떠드는 그들 옆을 지나가야 할 때가 많았는데 그것이 조금 무서웠던 때도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쿠라모치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늦가을의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가방을 벗어두러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세워진 거대한 바이크에 쿠라모치는 잠시 움찔 했으나, 아파트 현관에서 가죽 자켓에 헬멧을 들고 나오는 것은 아파트에서 몇 번 마주친 형이었다. 그는 쿠라모치가 공터에서 친구들과 야구 연습을 할 때 어울려 주기도 했던 남자였다.

“요이치 안녕.”

남자는 인사를 하고는 그대로 쿠라모치를 지나쳤다. 비어있던 손으로 쿠라모치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쿠라모치가 남자를 다시 마주친 것은 며칠 후였고, 그 때 먼저 인사를 건넨 것은 쿠라모치였다.

쿠라모치가 그 일행과 어울리기 시작한 것은 그 즈음이었다. 어울린다고 해도 처음에는 그저 이야기를 나눌 뿐이었다. 뒷좌석에 시승을 하게 된 것은 시간이 더 지난 후였다.

폭주족이라고 불리는 무리에게는 쿠라모치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규칙이 있는 모양이었다. 어린애에게 위험한 일을 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그 중 하나로, 밤이 늦기 전에는 집에 돌려보낸다거나, 동네를 벗어나는 곳까지는 쿠라모치를 데리고 가지 않았다. 어린애 취급에 쿠라모치는 가끔 짜증을 내기도 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뒷자리에 탈 때도 헬멧은 필수였다. 폭주족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그들이 실제로 폭주한 적은 없었다. 적어도 쿠라모치가 아는 한.

쿠라모치가 처음 클러치를 만지게 된 것은 초등학교 졸업식 다음날이었다.

 

다들 치장에만, 아니 그쪽의 말을 빌리자면 튜닝이라고 했던가—뭐 쿠라모치에게는 그런 용어의 차이는 아무래도 좋은 문제였지만—관심이 있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 중에는 심각한 속도광도 있었다. 머리를 염색한 남자가 꺼내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는 외국인이나 일본인의 이름으로 그들 중 누가 제일 빠르다느니,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는 메이커의 새 모델이 나왔느니 하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쿠라모치를 제외한 형들은 그 이야기를 알아 듣는 것인지 고개를 끄덕이거나 남자와 같이 이야기를 하거나 했지만 쿠라모치는 아무리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렇지만 형은 속도 내지도 않잖아요.”
“당연하지, 이걸로는 안 돼. 그리고 내가 미쳤다고 공도에서 그런 짓을 할까.”
“이상해.”
“너 이 형님이 바이크 제대로 타는 거 구경시켜 줘야겠구나.”
“형 타는 건 충분히 봤잖아요.”

그렇지만 남자의 자랑은 사실이었다.

몇 주가 지난 금요일 저녁, 남자는 쿠라모치의 집에 전화를 걸어서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라는 약속을 받아냈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울려댄 초인종 소리에 쿠라모치는 어쩔 수 없이 그와 함께 작은 서킷에 동행해야 했다. 어디서 빌린 것인지, 아니면 본인 것인지, 남자는 트럭 뒤에 바이크를 싣고, 조수석에는 쿠라모치를 태우고 한참을 달렸다. 쿠라모치는 중간중간 졸기도 했기에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도중에 보이는 도로표지판으로 치바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하품을 해 대면서 쿠라모치는 중얼거렸다.

“본격적이네요.”

정말로 그랬다. 서킷에는 남자와 같은 사람들이 꽤 모여 있었다. 겉모습도 나잇대도 다른 사람들처럼 크기가 제각각인 오토바이들도 한 군데에 모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중에는 쿠라모치 또래의 아이들도 있었다는 것이 조금 놀라웠다. 옷을 갈아입고 쿠라모치 앞에 선 남자는 조금 으스대는 듯이, 그렇지만 정말로, 무엇인가가 즐거운지 웃음이 떠나지 않는 얼굴로 쿠라모치에게 물었다.

“어때? 형 좀 멋있지 않아?”
“글쎄요……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요.”
“그럼 좀 이따가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

 

분명히 그때는 아직 라이딩수트나 헬멧을 보아도 뭐가 좋은지 전혀 매력 같은 것은 느끼지 못했는데. 정신을 차렸을 때 쿠라모치의 인생은 좋은 쪽인지 나쁜 쪽인지 모를 방향으로 틀어져 있었다.

 

노트북에서 알람소리가 들렸다. 쿠라모치는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내려두고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았다.

‘Eijun Sawamura님이 로그인하셨습니다.’ 라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쿠라모치는 노트북에 헤드셋을 연결했다.

저녁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안 그래도 오늘은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사와무라를 처음 만난 것은 쿠라모치가 전일본 선수권에 데뷔하던 해였다. 학기가 시작된 직후인 4월에 있던 2라운드에서 처음 만났다. 아니, 처음 사와무라가 쿠라모치를 찾아왔다.

“쿠라모치상!”

금요일 연습이 끝난 후였다. 한 시간 단위로 이어지던 세션들이 모두 끝나서 조금 조용해지고 느슨해진 철수 직전의 개라지 바깥에서, 티셔츠를 걸친 채 라이딩수트의 윗수분을 벗고 있는 소년이 쿠라모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소리를 지른 것도 분명히 동일인물. 몇 번이나 부르는 소리를 무시하고 있었건만, 쿠라모치는 귀찮다는 듯이 입구 쪽으로 향해서 소년을 바라보았다. 가까이 다가가자 키가 비슷하다는 것이 분명해져서 더욱 기분이 나빠진 쿠라모치는 한껏 찌푸린 얼굴로 태연한 척, 입을 열었다.

“난데.”
“쿠라모치 선배라고 불러도 되나요?”
“……누군데 나를 선배라고 부르고 싶어 하는데?”
“사와무라 에이준입니다! 111번!”

확실히, 쿠라모치는 엔트리 목록에서 111번이라는 세 자리 숫자를 본 기억이 있었다. 사와무라라는 이름이었던가 그 옆에 있던 이름을 훑어본 것도 같았다. 그뿐이었다. 사와무라가 어째서 쿠라모치를 찾아왔는지 알 수는 없었다. 거기다 눈앞의 꼬마가 묘하게 텐션이 높은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그래서?”
“그러니까…… 쿠라모치 씨 형이고.”
“그리고?”
“또…… 선배처럼 생겼고?”

둘 다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없는 소리뿐이었다. 웃으면 그런 것이 감춰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헤실헤실 웃으면서 쿠라모치를 바라보는 얼굴에 쿠라모치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글쎄, 난 네 선배가 아니라서.”
“우웃, 그럼 뭐라고 불러야…….”
“지금 잘 하고 있잖아.”

쿠라모치가 귀찮다는 듯이 손을 젓는 모습에 사와무라는 불만에 가득 찬 표정을 하고는 등을 돌리고 사라졌다. 다리 옆으로 내려온 팔부분이 펄럭거렸다. 개라지 안쪽으로 돌아오자 손을 멈추고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던 메카닉들이 쿠라모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심술은.”
“누군지도 모르는데 대뜸 저러잖아요.”
“우리 옆 팀이잖아.”
“알아요, 쟤?”
“응. 너보다 데뷔가 빠르니까.”
“경력대로라면 네가 선배라고 불러야 할 텐데.”

어째서인지 그들은 심술을 부린 쿠라모치에게 에이준군은 좋은 애라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원래 저런 성격이기는 하지만—그 점을 쿠라모치는 제일 껄끄럽게 여겼지만—배울 것도 있을 거라는 이야기는 자존심이 상하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쿠라모치는 사와무라와 전일본에 2년을 같이 있으면서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라고 깨달았다. 올드비들과 매해 새로 들어오는 뉴비들 사이에서 그 성적을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쿠라모치가 한 번 이적을 하고, 상위 클래스에 있는 팀과 협상이 진행되던 와중이었다. 시즌이 끝나가는 계절의 오카야마였다. 낙엽도 다 떨어지고 잔디도 바싹 말라서, 서킷 주변은 황량함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쿠라모치 선배.”
“오.”

처음에 원했던 대로 사와무라는 쿠라모치를 쿠라모치 선배라고 부르고 있었다.

“선배, 있잖아요.”
“응.”
“저도 선배 같은 헬멧이 갖고 싶어요.”
“그럴 때도 됐네. 도대체 그 헬멧은 언제까지 쓰나 했어.”

스폰서 로고가 붙어있는 덕에 알록달록 해졌지만, 사와무라는 아무 무늬도 없는 흰색 헬멧을 쓰고 있었다. 그게 제일 싼 거였으니까요. 다들 요란하게 꾸미는 와중에 그것이 오히려 이상했건만, 사와무라가 구김 없이 그렇게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게 아니라.”
“뭐?”
“선배 헬멧, 친구가 그려줬다고 했잖아요. 저한테도 소개해 줘요.”

안 그러는 척 반말로 말을 끝냈지만 쿠라모치는 그것을 무시하기로 했다. 부탁다운 부탁은 처음 보았을 때 이후 처음이었다.

“그래.”

쿠라모치는 아무렇지 않게 사와무라에게 그렇게 답했다. 언제 만날 수 있어요? 라는 말이 곧바로 나온 것은 의외였다. 글쎄, 연락해 봐야 하는데 라고 중얼거리자 사와무라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매번 어떻게 본 것인지 경기를 보았다고 그쪽에서 전화를 해오기는 하지만.

“꼭 소개해 줘야 돼요.”
“알았어 알았어. 대답 받으면 문자 해 줄게.”

 

폭주족 시절에 만난 친구는 그 이야기를 흔쾌히 허락했다. 그 다음 주말에 사와무라는 바로 나가노에서 치바까지 왔다. 뭐가 그렇게 급하냐는 질문도 사와무라는 그저 웃어 넘겼다.

마지막 라운드가 끝난 후에야 사와무라가 내년 시즌에는 국외 시리즈에 참전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느 때와 같은 질문으로 사와무라는 대화를 시작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선배, 일본은 저녁이었건만, 연습은 어땠어요? 두 번째 통화였는데 어김없이 쓸데없이 목소리가 컸다.

“그냥 그렇지 뭐.”

스즈카에 대해서는 그랬다. 디자인상으로는 난이도가 높았지만, 유명세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충분히 공략된 코스. 사와무라도 쿠라모치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곳이었다. 비가 올 거라는 예보가 있는데 경기 당일에는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나, 쿠라모치의 새 팀 이야기, 내년에는 타이어 규정이 바뀐다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나, 사와무라가 없는 클래스의 순위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쿠라모치가 아는 한에서. 사와무라는 여름에 경기를 구경하러 온 적이 있었던 데다가, 일본에 있는 동안 사와무라는 쿠라모치나 다른 지인들에게 가끔 문자를 하는 모양이었다. 이야기는 많이 길어지지는 않았다.

“선배, 선배도 유럽에 오고 싶은 생각 없나요?”

쿠라모치의 턴이 끝난 후, 맞장구만 치던 사와무라가 처음 꺼낸 말이었다.

“아니. 전혀.”
“여기 재미있는데. 정말 대단한 사람들도 많아요. 선배도 여기 있으면 좋을 텐데.”
“그래? 그렇게 재미있으면 토요일 점심시간에 뭐 하는 건데, 너.”

저쪽은 이제야 토요일 점심, 이쪽은 토요일 밤의 시차였다.

지난 번 통화를 했을 때 사와무라는 이번 달에는 경기가 두 번이나 있어서 다음 경기가 끝날 때까지 그쪽에서 지냈다가 일본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내년에는 이동이 더 늘어나겠네, 하는 말에 그래서 중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아예 진로를 저쪽으로 할까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쿠라모치에게는 고등학교 생활에 대해서 물어보았었다.

어물거리는 웃음소리만 들렸기에 쿠라모치는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그래서 지난번—어디라고 했지?”
“헤레스요.”
“저번에는 다른 이름이었던 거 같은데.”
“아—제레즈라고 했지요? 그거 틀린 발음이라고 하더라고요.”
“너 같은 놈은 틀릴 법 하네. 그래서 헤레스인지는 어땠어? 리타이어하지는 않았고?”

큰 소리로 재미있었어요! 라고 소리쳤기에 쿠라모치는 무심코 헤드셋을 벗을 뻔 했다. 거기 멋있었고. 조금 작은 목소리로 덧붙인 사와무라는 또 무언가 아쉽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헤레스 서킷, 선배 마음에도 들 텐데.”
“알아, 누가 안 좋아하겠어.”
“그럼 선배 유럽……”
“그게 말처럼 쉬운 얘기냐?!”

또 다시 헤드셋으로 웃음소리가 들렸다. 쿠라모치는 사와무라에게 스폰서라거나, 학업이라거나, 이동시간이라거나 하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경기는 어떻게 되었는데?”

 

통화가 끝난 후 쿠라모치는 노트북을 주인에게 가져다주기로 했다. 노트북에서 헤드셋을 뽑고 아답터와 노트북을 챙긴 그는 옆방으로 향했다.

결국 물어보지 못했다.

‘그런 거 자랑하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1년 전 스즈카에서 사와무라는 그렇게 말했다. 그런 이야기는 직접 해야지, 폼 잡는 거 아니냐고 쿠라모치에게 한 번 발로 차인 후였다.

바로 지난주였다. 쿠라모치에게는 비밀이라고 말했던 헬멧 디자인이 무늬는 별로 다르지 않지만 색이 다른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예의 친구였다. 요즘에는 사와무라 군 이름이 보이지 않는데 무슨 일 있어? 라고 물은 것에, 아 그 사와무라 군은 큰 무대로 갔다고 하니 해준 말이었다.

“알고 있었어?”
“아니. 전혀.”

사와무라는 제일 중요한 말은 하지 않는다.

‘왜 선배라고 부르고 싶었는데?’
‘쿠라모치 선배 헬멧이 멋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어쩐지 빠를 것 같고.’

짐작하는 것은 많았지만, 쿠라모치는 결국 물어보지 못했다. 분명 쿠라모치는 물어보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혹시, 언젠가 쿠라모치가 유럽으로 가는 날이 온다면 누군가가 대신 물어볼지도 모른다. 만약에 그런 날이 온다면—그때까지 사와무라가 헬멧을 바꾸지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