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라사와

발렌타인 데이니까!

 

사와무라의 핸드폰을 만지작대는 것은 쿠라모치의 사와무라 괴롭히기라는 취미의 한 종류에 속한다. 처음에는 1학년 주제에 핸드폰을 가지고 입소한 후배에 대한 짓궂음으로 시작했다. 곧 와카나라는 소꿉친구라는 고향 친구에게 사와무라인 척 일상을 보고하는 것이었다. 지금 쿠라모치가 사와무라의 핸드폰을 손에서 떼지 못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유였다.

여친이 없어서 외로운 쿠라모치군에게, 라는 제목으로 아침부터 온 문자의 내용은 온 모 게시판 스레의 주소였다. 스레 제목은 아내에게 ‘나는 너를 사랑해’ 라고 메일을 보내고 답장 온 걸 적어라, 여기까지 읽고 쿠라모치는 얼굴을 찌푸렸는데 1의 내용도 제목 못지않은 것이었다. 제목대로 해라. 명령이다. 10까지 대충 훑어보았지만 리얼충 폭발해라 라는 내용이 될 것이 빤한 스레였다. ‘이런 거 읽을 시간 없거든’ ‘발렌타인데이가 오기 전에 단련시켜 주겠다는데 너무해’ 몇 번 더 쓸데없는 내용의 문자가 오갔다가 끊겼다. 그 다음 날도 비슷한 내용의 스레 주소가 문자로 왔다.

정말로 뻔한 내용의 스레였지만 쿠라모치는 그것을 짬짬이 읽어보았다. 스레에는 정말로 문자를 보낸 후에 답을 올린 사람들이 있었다. 에모지가 붙은 나도 좋아해 라는 답, 그런 말해도 부탁은 들어줄 수 없어 라는 단호하지만 확실한 관계, 나도 좋아했는데 우리 이제 사귀는 거야? 라는 망설였던 시간의 보답. 물론 모든 답장이 그렇게 달달하지만은 않았지만, 역시 리얼충들로 가득한 스레였다.

불행히도 처음 받은 문자가 걱정한대로, 발렌타인 데이 전날이지만 이번 주 마지막 수업일인 오늘, 쿠라모치는 수업 시간이 끝날 때까지 충분한 시련을 겪었다. 학교는 초콜릿을 건네주는 자와 본명 초코를 받은 자와 우정초코를 받은 자와 아무것도 받지 못한 자로 나뉘었다—쿠라모치가 어느 쪽에 속하는지는 넘어가도록 하자. 그리고 여느 때와 같지만 유독 반가웠던 연습. 하루 종일 그런 일을 겪어서 그런 것인지, 잊어버리면 편할 그 스레가 어쩐지 쿠라모치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명령이라는 말은 꽤나 유혹적이었다. 다만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쿠라모치에게는 요메는 물론이며 야구부의 대부분의 부원들처럼 여자 친구조차 없었다—사실 그럴 용기도 없었을 뿐더러, 얼굴도 모르는 상대의 명령 같은 것을 순순히 들을만한 성격도 아니었다. 그래서 쿠라모치는 사와무라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문자창에 그 문장을 썼다가 백스페이스를 누르고는 지웠다가 하는 짓을 반복하고 있었다.

정말로 1의 명령을 듣는다면 쿠라모치는 자기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낼 것이다. 사와무라가 문자에 답을 하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농담처럼 쿠라모치 선배 잘못 보냈어요 모치선배 모테모테인가 보다 부럽다 같은 답이 올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와무라는 문자를 무시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확실한 대답이 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쿠라모치는 문자를 잘못 보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쿠라모치에게서 모든 가능성을 빼앗아 갈 것이다. 상상의 여지조차 남지 않는 미래만이 남게 될 것이다.

아, 씨발.

머리가 아파진 쿠라모치는 그대로 폴더폰을 접고는 바닥에 등을 뉘였다. 한숨을 내쉬던 차에 폰이 익숙한 문자 수신음을 울렸다. 사와무라에게 문자를 보내는 사람은 와카나일 것이다. 오늘은 문자를 훔쳐볼 마음이 들지 않았기에 쿠라모치는 사와무라의 침대 위에 핸드폰을 던지고는 실내연습장으로 향했다. 내일은 토요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발렌타인 데이였다.

학교 수업이 없는 발렌타인 데이는 아무 일도 없이 평화롭게 지나가고 있었다. 저녁식사 후에 실내연습장으로 향하기 전에 잠시 방으로 들어온 쿠라모치의 눈에 바닥에 놓인 무언가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하나는 쿠라모치도 잘 알고 있는 것이었다, 사와무라의 핸드폰.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핸드폰 아래에 있는 것을 바라본 쿠라모치는 눈살을 찌푸렸다. 핸드폰 아래로 나란히 놓인, 어제 쿠라모치와 인연이 없었던, 포장이 되지 않은 제일 작은 크기의 판초콜릿. 마치 쿠라모치에게 보란 듯이 텔레비전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혀를 차던 쿠라모치는 핸드폰의 깜빡거리는 불을 보았다. 한동안 와카나에게 문자를 하는 것을 그만두었지만, 오늘은 조금 장난을 칠 마음이 들었다. 와카나도 발렌타인 데이라고 사와무라에게 문자를 보내준 모양인데, 저것이 우정초콜릿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조금 자랑하듯이 문자를 하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

쿠라모치가 예상한 것은 검은색 글씨 사이 알록달록한 이모티콘을 채워 넣은 화면이었지만, 와카나가 아니었다.

문자 봤어요 저도 좋아합니다!

발신자와 수신자가 같은 문자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쿠라모치는 판초코와 사와무라의 핸드폰을 트레이닝복 주머니에 넣고 5호실에서 뛰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