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라사와

사와무라와 와카나만 나오는 쿠라사와

 

이번 주말에 시간 있어? 19:51

읽음 19:54 주말에? 토요일이라면 괜찮아.
읽음 19:54 왜?

그럼 토요일에 같이 저녁먹을래? 20:16

읽음 20:18 에이쨩이 웬일이야?

쿠라모치선배랑 할말이 있어서 20:20

읽음 20:35 그사람이 나한테무슨??

만나서 얘기할게 20:40

읽음 20:51 그럼 조금 일찍 둘이 만나자. 에이쨩이랑 만나는 것도 오랜만이니까.

보낸 문자의 답을 몇 시간, 며칠, 심할 때는 일주일이 넘게도 기다리기를 반복하던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자, 에이준도 와카나에게 먼저 문자를 할 줄 알게 되었다. 물론 내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안부, 친구들, 학교, 선배, 후배, 야구—뜯어보면 지금도 에이준의 이야기 대부분은 야구에 대한 것이었다. 변하지 않은 에이준의 모습을 담은 문자를 바라볼 때마다 와카나는 미소를 지으며 답을 하곤 했다. 와카나는 대학에 들어와서는 에이준의 시합을 보러 도쿄까지 가지 않게 되었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코시엔이라는 목표가 사라진 지금은—중학교 동창 모임에서도 에이준이 프로로 가게 될까 하는 이야기를 할 뿐이었다. 에이준도 대학 리그를 보러 오지 않는 친구들에게 서운한 내색은 하지 않았다. 가끔 겨울방학을 맞아 나가노로 귀성하는 에이준을 만나기 위해 모두 모인 자리에서도 그랬다. 시간은 언제나 아카기 중학교 때와 에이준의 세이도 재학 시절로 돌아갔다.

와카나는 에이준에게서 야구 이외의 일로 만나자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얘기도 문자네.”

약속 시간과 장소를 확인한 와카나는 답을 보낸 후 중얼거렸다. 도쿄에 가는 것도 몇 년 만이었다.

복잡한 JR 노선도를 바라보며 목적지 역을 찾던 와카나는 문득, 에이준은 아직도 오렌지색의 츄오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날 장소를 쉽게 정하지 못하던 에이준에게 집 근처라도 괜찮다고 재촉했는데, 너무 멀다며 말한 역 이름은 도쿄를 가로로 가르지르는 그 선 위에 있었다. 와카나와 만나기로 한 역도 그랬지만.

도쿄 역 안에서 조금 헤맨 후 전철에 탔을 때, 조금 늦을지도 모르겠다는 문자가 도착했다.

‘나도 가는 중이야.’
‘오늘 추운데 먼저 도착하면 어디 카페라도 들어가 있어.’

문자를 하고 있는 상대가 에이준이라는 것을 믿기 어려운 내용에 와카나는 무심코 핸드폰을 미끌어뜨릴 뻔 했다. 오늘의 에이준은 무언가 달랐다.

‘내가 그 주변에 뭐가 있는 줄 알고. 어차피 만나서도 커피 마실 거아니었어?’

하지만 도착할 때까지 핸드폰을 몇 번이나 들여다 보아도 읽었다는 확인이 뜨지 않은 것을 보면, 단순한 착각인지도 몰랐다.

에이준과 만난 것도 몇 달 만이었다. 나가노에 돌아왔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이곳에서 보는 에이준은 후드티에 점퍼 차림과는 졸업한 모양이었다. 청바지의 핏도 조금 달라져 있었다. 옷차림 때문에 잠시 와카나는 에이준을 못 알아볼 뻔 했다. 그리고 에이준이 안내한 카페도. 와카나가 아는 에이준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에이쨩 이런 데 좋아했어?”
“아, 아니야—와카나는 좋아하지 않을까 해서. 다들 단 거 좋아하는데 혼자 갈 수도 없다고 해서, 가끔 와.”
“이런 데도 온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와카나는 조금 믿기 어렵다는 목소리를 냈다. 차분한 분위기의 카페였다. 딱히 남자 혼자라도 못 올 건 아닌 것 같은데—하지만 가게 안에 있는 손님들의 대부분이 여성들인 것을 보면 그럴지도 몰랐다. 게다가 단 걸 먹으러 온다면 더더욱 오기 어려울지도 몰랐다.

주문을 한 음료가 테이블에 놓였다. 거품으로 만들어진 고양이가 귀여워서 와카나는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슬쩍 에이준은 자신의 머그잔도 그 옆으로 밀어다. 표정이 다른 고양이가 두 마리. 잘 지냈는지를 묻는 와카나의 말에 서서히 녹아 내려갔다. 에이준은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는 와카나에게 안심한 듯, 처음보다는 긴장이 풀린 모습이었다.

“그런데 에이쨩. 오늘 할 말이라는 게 뭐야? 오는 길에도 생각해 봤지만, 네 선배가 나한테 저녁을 사줄 이유라는 게 뭔지 모르겠어.”

와카나는 에이준의 겨울 캠프와 친선경기들 이야기가 적당히 마무리 되었을 즈음 그 질문을 꺼냈다. 이미 라떼 거품은 바닥과 조우한지 한참 지났고, 가게 안도 들어왔을 때 보다는 한산해져서 안에 있는 손님이라고는 창가에 앉은 커플과, 구석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는 여자 둘 뿐이었다. 에이준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와카나를 바라보던 때에, 테이블 위에 둔 전화가 진동했다. 방금 전의 질문에 이어진 타이밍에 에이준은 화들짝 놀란 모양이었다. 전화를 뒤집어서 손에 쥐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한 에이준은 와카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통화를 시작했다.

“네, 모치선배—”

마침 이야기하던 인물이었다. 타이밍이 좋다고 해야 할지, 질문을 끊은 것이 나쁘다고 해야 할지, 와카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통화는 조금 길어지고 있었지만, 에이준의 말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니요, 괜찮아요.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니—… 응. 알아요. 이따가 봐요.”

내용은 들리지 않았지만 잠깐잠깐 에이준의 얼굴을 보면, 통화 내용이 어떤 것인지는 어쩐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엇다. 전화를 끊은 에이준은 더 이상 놀란 표정은 아니었다. 와카나는 에이준이 말하기를 기다렸다.

“모치선배가 여섯 시에 예약했다고, 시간 맞춰서 오래.”

조금 이른 감도 있었지만 나가노로 돌아가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시간이었다. 핸드폰으로 시계를 확인하니, 아직도 이야기를 계속 할 수 있었다. 에이준이 와카나의 질문에 답을 할 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직도 시간 좀 있네.”
“응. 여기서 한 시간 쯤 이따 걸어가도 괜찮아. 이 근처니까.”
“다행이네. 그 시간에는 전철도 사람 많잖아?”
“그런가……잘 모르겠어.”

와카나를 바라보며 대답을 하던 에이준은 점점 눈을 아래로 돌렸다. 한참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들지 않았다. 와카나는 에이준이 아주 오랫동안 문자에 답을 하지 않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바로 앞에서 조용한 것은 견딜 수 없었다.

“있잖아” “있지”

동시에 입을 열어버렸기에 두 사람은 작게 소리내어 웃었다. 먼저 말해, 아냐 너 먼저— 여전히 눈치를 보는 모습에 결국 와카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말하기 어려운 거면 지금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
“그 선배도 그랬지? 좀 전에.”
“……응.”

여전히 손은 아래에 둔 채로 에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핸드폰을 꼭 쥐고 있을 것이다. 웃고 있는 것 같았지만 입술은 꽉 다물고 있었으니까.

“그럼 기다리지 뭐.”

커피를 다 마신 것이 아쉬워서 와카나는 거품자국이 남은 머그컵 가장자리를 손가락으로 만졌다. 와카나의 눈이 머그컵으로 향한 것을 본 에이준은 입을 열었다.

“미안해.”
“아니야. ……그럼 대신에 나 디저트나 사줘.”
“그래! 아, 나 여기 커플 세트 먹어 보고 싶었는데.”
“에이쨩이 먹고 싶은 거 말고.”

그렇지만 결국 메뉴를 고민하는 내내 옆에서 아쉽다는 에이준의 표정을 가만히 볼 수 없었기에 고른 커플세트로 나온 초콜릿과 딸기가 올라간 디저트를 먹으면서, 와카나는 생각했다. 고등학교 2년동안, 그리고 졸업하고 다시 2년을 같은 방을 쓰고 있다는 에이준의 선배. 에이준이 도쿄로 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오던 조금 다른 말투의 문자. 그 사람의 전화를 놓치지 않고 금방 받는 에이준과 굳이 문자가 아닌 전화를 하는 그 사람—분명, 언제라도 전화를 할 수 있는 그 사람. 에이준은 변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조금은 변했다. 고등학교 때 그 사람의 이야기를 할 때의 에이준은, 아직도 네가 내 여자친구가 아니냐고 끈질겼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오늘 두 사람은 무언가 할 말이 있다고 그녀를 나가노에서 이곳까지 불러냈다. 조금 새콤한 맛이 강한 딸기를 깨물며, 와카나는 앞으로는 더 이상 에이준에게 의리초코를 줄 일도 없을 것이라고 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