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라사와, au

바이크레이싱 au. 말레이시아의 주말.

 

쿠라모치는 온도측정계를 가지고 피트월까지 나갔던 사와무라를 피트 안에서 바라보았다. 세션이 시작하기는 여유가 있었지만 그림자 속의 박스 안은 벌써부터 더웠다. 덥다기 보다 습기로 답답했고 자연히 땀이 멈추지 않았다. 어제 저녁에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것보다 나았던 것 같은데. 어쩌면 하룻밤을 더위와는 먼 호텔방에서 보내느라 그 기억은 모두 잊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쿠라모치는 그나마 있는 그림자를 벗어나 해가 바로 내리쬐어 더 더워보이는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다. 호텔에서 나와 차를 탄 잠깐동안, 그리고 차에서 내려 건물안에 도착하기 까지도 충분히 더웠다. 셔터가 열린 자리의 네모난 시야로 그리 많이 타지 않은 다리가 허옇게 피트월에 서있었다. 저기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의심될 정도로, 어쩐지 뜨거워 보였다.

팔을 뻗어 벽 너머의 트랙 온도를 재고 있던 사와무라에게 옆 개라지의 주민이 다가갔다. 쿠라모치는 작게 보이는 옆 얼굴에서 그것이 토도로키라는 것을 기억했다. 홈경기인 모테기에서는 첫 폴포지션으로 제일 주목받았던 루키. 쿠라모치는 사와무라의 경기를 챙겨 보지 않았기 때문에 토도로키라는 이름을 듣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어쩌면 이전에 얼굴을 본 적이, 스쳐 지나간 적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기억하지 못할 뿐. 이제는 다른 클래스가 되어버린 자신의 전 클래스 소식에 쿠라모치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에 그는 토도로키 라이치가 언제 나타난 선수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지난주 일요일, 예선에서 꾸준히 보인 그 속도로 경기를 하다가는 타이어가 버텨줄까 하는 의문을 가졌을 뿐. 하지만 쿠라모치의 그 궁금증은 경기가 반쯤 지났을 때 일어난 크래쉬로 인한 리타이어로 결국 풀리지 않았다. 사와무라와 토도로키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트랙 온도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쿠라모치는 짐작했다. 토도로키가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다가, 서로 웃다가, 다시 트랙을 바라보다가, 뒤를 돌아서 피트를 바라보며 무어라 이야기를 나누다가 건물로 돌아갔다. 박스안으로 돌아온 사와무라에게 쿠라모치는 물었다.

“몇 도야?”

대답하기도 질린다는 것인지 사와무라는 온도계를 쿠라모치에게 보였다. 30도. 이제 가을에 들어선 일본에서는 다 지나간 여름을 떠올리게 하는 숫자였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적도 근처의 나라에는 어떤 계절이 있는지 알지 못하지만 분명 매우 긴 여름이 있을 것이다.

“덥다덥다 말만 들었지만 정말 덥네. 아직 아침인데.”
“이거 아직 괜찮은 건데……”
“이게 괜찮다고?”

믿을 수 없다는 쿠라모치의 말에 사와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쿠라모치보다는 익숙한 표정으로 사와무라는 듣기만 해도 기가 빨릴만한 온도를 말했다.

“오후에는 50도까지도 올라가기도 하는데요 뭐.”
“으아.”
“비가 오면 덜 덥기는 한데”
“비는 좀…….”

비라는 말에 쿠라모치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우천 경기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선수의 진정한 실력은 비가 올 때 볼 수 있다는 말도 있지만 그런 건 둘째치고 비는 귀찮았다. 세션이 연기되어서 결국 귀가가 늦어지는 것도 싫었고, 수트를 관리하는 것도 신경쓰였고, 시야를 방해하는 요소가 늘어난다는 점이 싫었다. 젖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말레이시아의 더위는 벌써부터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곳의 비까지 알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관람하는 입장에서는 그런 불평을 실컷 말해도 될 것이다. 아니 이미 경기를 하는 입장에서도 충분히 말했기 때문에 사와무라는 쿠라모치가 얼마나 비를 싫어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도 선배가 더운게 싫다면 비가 와도 괜찮아요 이 사와무라 에이준 이제는 레인스페셜리스트라고 불리ㄴ…”
“너 하레오토코라며. 그 별명은 또 어디다 팔아먹었어.”
“아. 아 그래도 레인 마스터라는 건 정말이에요.”
“누가 그러는데.”
“우리 크루치프.”

짧은 대회 사이에 별명의 레벨이 업그레이드 된 것 같지만 뭐 그건 사와무라와 이야기할 때는 자주 있는 일이었다. 쿠라모치는 지난 주말에 만난 사람 좋아보이는 체형을 한 중년의 남자를 떠올렸다. 말이 잘 통해서 그다지 대화다운 대회는 나누지 못했지만 웃음이 많은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어제 저녁, 공항에서 쿠라모치을 데리고 온 사와무라는 저녁식사 때 쿠라모치를 크루들에게 소개했다. 그 자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들 좋은 사람들처럼 보였다. 분명 약간의 불편함을 느낀 것은 쿠라모치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으로 돌아온 사와무라는 크루치프가 얼마나 대단한 경력을 가지고 있는지 자랑하기에 바빴다.

“그 아저씨 너를 너무 믿는 거 아냐?”
“당연하지요. 다음 시즌 우승 후보인데.”

쿠라모치의 농담에 사와무라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자신감에 가득차다 못해 뽐내는 듯한 미소에 쿠라모치는 이번 시즌은 버린 것이냐는 말은 묻지 않았다. 모테기는 메이커와는 관계 없이 홈경기를 맞은 선수들에게는 공평하게 잔인했다. 크래쉬 후 그라벨베드에서 양 손으로 땅을 치며 울던 사와무라는 개라지로 돌아온 후에는 여전히 뻘건 눈을 하고 크루들을 마주했다. 그 경기로 인해 수학적으로도 사와무라의 챔피언십 획득 확률은 희박해졌다고 했다.

사와무라는 온도측정기를 제자리에 가져다 두고 라이딩 수트를 입으러 들어갔다. 서서히 원 주인들이 일하기 시작한 박스안은 쿠라모치에게도 익숙한 작업의 소리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쿠라모치도 언젠가는, 아니 앞으로는 익숙해져야 할 소리였지만 그는 당장은 익숙한 것을 찾으며 사와무라에게 소리쳤다.

“입는 거 도와줄까?”
“어…… 이따가 뒤에나 올려 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