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라사와, au

 

토요일 오후. 사와무라의 마지막 연습 세션이 끝나고 얼마쯤 지나자 비가 쏟아졌다. 5분도 되지 않았지만 피트레인을 다 적시기에는 충분했다. 무섭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쿠라모치는 점심시간 때는 조금 시원해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는 박스 입구까지 나가서 피트레인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바로 위 클래스 팀들은 이번 세션이 끝나면 있을 세션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요란하게 홈스트레이트를 통과하는 바이크가 없는 서킷은 아주 조금 조용했다. 쿠라모치는 고개를 조금 돌려 길게 뻗은 관중석을 바라보았다. 경기 당일이 아닌데도 토요일인 오늘은 평일보다는 관객이 많았고 본격적인 응원 배너도 등장했다. 개라지에서 바로 정면으로 보이는 피트레인 끝부분을 마주한 객석은 반은 차있는 것이 솔직히 조금은 부럽다고 생각했다.

빗줄기는 내리기 시작했을 때처럼 금방 가늘어졌고, 그것을 아쉽다는 듯이 바라보는 쿠라모치의 뒤로 어느새 라이딩수트에서 빠져나온 사와무라가 다가왔다.

”구경 재미있습니까?“
”뭐—그나저나 아깝네, 레인마스터라며.“
”연습이었으니까 괜찮은데요. 어차피 오후에 또 온다고 했고.“
”흐응.“
”그렇지만 진지하게 말하는 건데, 안 오는 게 좋아요. 여기선 정말 태풍 올 때처럼 쏟아지니까.“

거기다 온도차도 나버리고.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쿠라모치의 어깨에 턱을 대고 푸우, 하고 숨을 내뱉은 사와무라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아, 하고는 쿠라모치의 팔에 슬쩍 생수병을 가져다 대었다.

“선배도 수분공급.”

차갑다는 것만 빼고는 쿠라모치의 얼굴이나 팔처럼 생수병 위에도 물방울이 가득 묻어있었다. 반대쪽 손으로 생수병을 받아들자 살에 닿았던 부분에서 물이 주루륵 흘러내렸다. 건물 2층의 튀어나온 부분 덕에 비에 젖지 않은 바닥에 한 방울 자국이 남았다.

 

지난번 홈경기에서도 느꼈지만 사와무라의 주말은 바뻤다. 연습 세션이 끝나고는 인터뷰가 있었다. 마이크를 앞에 두고 쿠라모치보다는 훨씬 나은 영어로 답을 하는 사와무라라니 처음 만났을 때는 상상할 수도 없는 모습이었다. 아니, 쿠라모치는 그때는 이런 더운 나라에서도 그랑프리가 열린다는 사실조차 몰랐고, 그곳의 서킷에 와 볼 것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다른 것은 도리어 일본에 있을 때와 비슷했다. 작은 팀은 손이 부족하다. 세션이 아닌 때의 개라지 안에서 크루들과 선수의 구분은 명확하지 않다. 이곳에서 가장 애매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가장 확실한, 손님이라는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쿠라모치 뿐이었다. 일본도 아닌 경기에서 이렇게 붙어있어도 괜찮은 걸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최경량 클래스 예선 종료를 얼마 안 남겨두고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와무라가 말한 것처럼 태풍이라고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남은 시간에 랩타임 단축은 불가능하다는 것은 확실했다. 스크린에 표시되는 이름들은 세션 내내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했기에 막판 스퍼트를 노린 선수들에게는 조금 불행한 일이었지만 다들 비가 내릴 것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언제가 될지를 몰랐더라도. 갑작스레 바뀐 트랙 상태 때문에 레인마스터의 진면목은 볼 수 없는 것이 조금 유감이었다—드라이 컨디션에서 P3. 첫 번째 줄의 제일 끝 그리드다. 비가 내렸다면 조금 더 잘 했을까. 분명 농담이었건만 쿠라모치는 정말 그런지 꼭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쩐지 그랬다.

세션 종료와 함께 박수소리가 개라지를 채웠고, 우산을 쓰고 피트레인 입구의 파크퍼메를 향하는 사람들과 같이 쿠라모치는 이동했다. 예선 선두가 아니라는 것은 피트보드로 알고 있을 테건만 사와무라는 폴게터보다도 늦장을 부리며 들어왔다. 쿠라모치가 사와무라의 등을 두드려준 것도 사와무라가 크루들과 감동을 나눈 다음이었다. 다 젖은 수트를 입은 채였던 데다가, 비는 그치지 않았기 때문에 쿠라모치의 어깨도 같이 젖었다.

“오늘은 잘 했네.”

어제도 나쁘지 않았지만, 지난주와 비교한다면 분명히 그랬다.

“쿠라모치 선배 정말 내 경기 안 보는구나?! 이게 보통이라니까요!”

끝없이 투닥일 수도 있지만 사와무라는 바쁜 몸이라는 것이 여기서도 드러났다. 잠깐 동안의 대화 끝에 다시 사와무라는 크루들에게 돌아가야만 했다. 쿠라모치에게도 익숙한 단어들이 들려오는 것을 보니 이 사이에도 예선이 끝난 직후에 짧은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번에 사와무라는 멀쑥한 진행요원의 손에 이끌려 파크퍼메 주변을 둘러싼 기자들 앞에 서서 질문에 차례대로 응하게 되었다. 그것이 끝나고는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오늘은 경기 당일이 아니니 머리위에 위치한 포디엄은 사용하지 않지만, 또 소감을 말해야 하는 모양이었다.

“바쁘네요.”

아쉬운 것인지 정신이 없는 것인지, 쿠라모치는 곁에 우산을 들고 서있는 메카닉에게 한 단어의 말을 흘렸다.

“응. 금방 나올 거야.”

 

하지만 사와무라가 해방된 것은 금방은 아니었다. 다음 세션은 예정된 시간이 다가왔지만 그치지 않고 오히려 거세진 비 때문에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정말로 태풍이 올 때의 비바람이었다. 개라지 밖 저 멀리 솟은 야자수들이 흔들리는 것이 비로 흐려진 시야 너머로 보였다. 점심을 먹으며 사와무라는 오후에 있는 예선이 끝나면 백스트레이트 쪽으로 구경을 가자고 말했다. 스타트라인이 있는 홈스트레이트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좋을 거라고 신나서 말했던 것이 몇 시간 전이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예보대로 내린 비 때문에 틀어질 것 같았다. 아직 예선을 치르지 못한 피트레인의 주민들은 서로의 개라지를 머뭇거리며 비가 언제 그칠지 팔짱을 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와무라가 돌아온 것은 마침 세션 시작이 이십 분 후로 미루어졌다는 정보가 전달되었을 때였고, 그의 평상 근무가 끝난 것은 그보다도 이후였다. 다행히도 비가 견딜만한 정도가 되었는지 두 번째 딜레이는 없었다.

“쿠라모치 선배, 이따가 비 그칠 거 같다니까 같이 나가요.”
“꼭 가야겠냐?”

본격적으로 쏟아지는 비가 어떤 것인지를 본 쿠라모치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언제 거세지고 그칠 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저런 비를 밖에서 만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반, 조금이나마 시원하고 마른 곳에 있고 싶은 마음이 반이었다. 홈스트레이트를 통과하는 라이더들에게 보이는 피트보드를 빗방울 속에서 들고 있는 각 팀의 크루들을 보고 있자니 지붕 아래를 떠나고 싶은 마음은 사라지기만 할 뿐이었다.

“당연하지요, 정말로 거기가 훨씬 구경하기 좋다니까요.”
“응…….”
“뭐 선배가 가기 싫다면 할 수 없지만,”

덩달아 시큰둥해진 반응에 사와무라도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내일은 더 바빠서 같이 얘기할 시간도 별로 없을 거라 신경 써 주는 건데.”

피트레인에서 빠져나가는 파란색 바이크를 쫓다가 피트레인 출구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아무렇지 않은 듯 덧붙인 말은 엔진 소리에 거의 파묻혀 있었다. 그렇지만 귀마개를 할 정도까지는 아닌 소음이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포기하는 것은 고집을 부리던 쿠라모치여야 했다.

“알았어, 대신 스쿠터는 내가 몬다.”
“왜? 선배는 길도 모르면서.”
“뒤에 타기 싫어.”
“쳇.”
“싫으면 말고. 가자고 한 거 너니까.”
“아 가면 되잖아요, 가면.”

스쿠터를 몰겠다는 말에 대뜸 말대꾸를 하면서 쿠라모치를 향한 사와무라의 표정은 말 한마디 한마디에 따라 바뀌었기에 쿠라모치의 입꼬리도 올라갔다. 여전히 그는 스쿠터의 앞자리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