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없는 집

트위터에서 호야님의 쿠라사와 부자썰을 보고. 연성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밥을 다 먹고 식탁의 그릇을 싱크대로 치우자 도와줄 것이 없어진 에이준은 그를 올려다보았다. 오늘은 반찬도 가리지 않고 잘 먹은 에이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하고, 그는 약속한대로 텔레비전을 틀어주었다. 아직 광고가 나오던 탓에 한동안 요이치는 에이준이 지난번에 나온 이야기를 조잘대는 것을 들어야 했다. 기승전결로 잘 정돈된 줄거리가 아니라 앞뒤가 뒤섞인 이야기라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그는 에이준이 한마디 한마디를 끝낼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방송이 시작하자 부엌으로 돌아온 쿠라모치 요이치는 익숙한 앞치마를 입고 싱크대 앞에 섰다. 조금 색이 바란 앞치마의 나이는 에이준의 나이보다 많았다. 각자 자취하던 집에서 쓰던 그릇이 있었지만 그래도—하면서 식기정도는 맞추자고 말에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몇 시간이나 걸릴 일이 될 줄은 몰랐지만. 그릇을 사고 나오던 길에 그녀는 앞치마도 샀다. 쓰던 것이 너무 지저분하다는 이유였다.

사와무라가 있었을 때, 같이 살기 시작하기 전에, 쿠라모치는 설거지를 할 때는 이런 것을 갖춰 입지 않았었다. 앞치마를 입기 시작한 것도, 요리나 설거지를 하는 것에 익숙해진 것도 모두 그 후의 일이었다.

설거지는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지만 시작은 조금 좋지 않았다. 미덥지 못하다는 표정으로 에이준은—사와무라는 그에게 앞치마를 넘겨주었다.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리자 빨래거리가 늘어나는 건 싫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손을 뒤로 돌려 앞치마 허리끈을 묶으려 하다가 실패하자 깔깔대며 에이준이 그의 등 뒤로 섰다. 그가 싱크대에 서서 설거지를 시작하자 사와무라는 등 뒤에 딱 달라붙다시피 하며 선배 그러면 안 된다니까요, 하고 그릇 닦는 순서에 트집을 잡았다. 그가 생각하기로는 목적을 완료하면 순서야 아무래도 좋은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설거지도 주방의 기예, 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규칙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수세미를 잡은 그의 손이 조금씩 그녀의 말대로 일을 하기 시작하자 그녀는 만족했는지 뒤에서 그를 끌어안고는 등에 기댔다. 움직이기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말로 하지는 않았다. 마지막 그릇을 건조대에 두고 수도를 끌 때까지, 물소리와 물줄기가 그릇에 부딪히고, 그릇끼리 닿는 소리 사이로는 그녀의 목소리만이 들렸다. 마침내 허리에 둘렀던 팔을 풀며 그녀는 타박을 주었다. 요이치는 자취도 해봤으면서 어떻게 살았던 거예요? 그러게.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그는 그녀를 향해 웃었다. 말없이 웃은 그녀는 행주를 잡고 싱크대에 튀었던 물을 닦아냈다. 그때는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 그리 오래 전 일도 아니었는데 하나도—라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겠지만 거의—기억나지 않았다. 주말이 되어서 그녀가 집에 찾아올까 기다리던 날들은 기억했다. 집에 오기로 약속이 잡히면 전날부터 빨래바구니를 비우고 방안을 환기시켰다. 그 집에서 사와무라가 부엌에 섰던 적도 몇 번 있었다. 앞치마 같은 것은 없는 집이었다. 그때는 어땠더라. 그녀가 묶었던 리본은 한쪽 끝을 잡아당기자 쉽게 풀렸다. 앞치마를 벗으면서 그는 중얼거렸다. 신기하지 나도 모르겠단 말이야. 그렇게 말하고 나고 눈앞의 그녀를 바라보니 어쩐지 행복해져서 그는 그대로 그녀를 끌어안았다.

계속 몰랐던 편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두 사람이 있는 것이 익숙하던 공간에서 혼자가 될 때면 가끔 그도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그가 요리를 시작한 것은 셋이 되면 어떤 생활을 하게 될지를 그리기 시작한 때였다. 식탁 의자에 앉혀둔 에이준에게 감시를 받으면서. 밥을 먹으면서 그녀는 검사를 하듯 야채를 너무 크게 썰었다느니, 카레가 너무 달다느니 하는 잔소리를 했다. 퇴근 하는 길에 습관처럼 사온 푸딩을 후식으로 떠먹으면서 애가 크면 누구 입맛을 닮을까 하는 이야기를 했다. 이름은 어떻게 할지 그때까지도 정하지 못해서 부모님이나 할아버지들한테도 물어봐야 하나 고민했다. 이런 것을 이야기해 본 적은 당연히 없었다.

신혼생활을 즐길 시간조차 부족했다.

텔레비전에서 지금 하는 프로그램은 분명 에이준이 좋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금방 심심해진 것인지 에이준은 도로 부엌으로 돌아와서 요이치의 앞치마를 잡아당겼다. 티비를 끄지 않아서 거실에서는 요이치에게도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아빠아아.”
“응.”
“언제 끝나?”
“금방.”

매번 에이준이 지루해할 때면 요이치가 하는 대답이었지만 오늘은 정말이었다. 그릇은 거의 다 끝났고 프라이팬만 닦으면 되었으니까. 에이준은 여느 때처럼 요이치의 다리에 매달렸다.

“캐치볼 하러 나가자아.”
“응, 이거 다 하고.”
“이따가 저녁 먹으면 또 해야 되는데 빨리 에이쨩이랑 놀고 이따가 같이 하면 안 돼?”
“아빠가 저번에도 말했지요?”
“……설거지는 제때 해야 된다고?”
“응. 그리고 아빠가 텔레비전 안 볼 때는 어떻게 해야 된다고 했더라?”
“앗….”

에이준은 요이치를 올려다보며 머뭇거리며 눈치를 보더니 후다닥 부엌에서 뛰어나갔다. 가볍게 울리는 발소리에 집에서 뛰지 말라고 했는데, 속으로 혀를 차며 요이치는 웃었다. 에이준이 부엌으로 돌아왔을 때는 프라이팬을 씻고 앞치마를 벗어서 벽에 걸어놓던 때였다.

“오늘은 정말 빨리 끝났네?!”
“금방 끝난다고 했잖아.”

뒤에 서서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으며 놀라는 에이준에게 요이치는 웃으면서 무릎을 굽혔다. 눈앞에서 요이치를 바라보는 에이준은 커다란 눈동자로 빨리 나가자며 재촉하는 것 같았다.

“그럼 이제 공이랑 글러브 챙겨서 아빠랑 나갈까?”
“응!”

힘차게 대답하는 에이준의 모습은 사와무라를 꼭 닮았다. 그는 그녀보다 훨씬 작고 가벼운 에이준을 안아 올렸다. 나가자는 말에 기뻐서 활짝 웃던 에이준은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아빠 사랑해.”
“응,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