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방과 후

쿠라ts사와로 방과 후 데이트가 되는 이야기.

 

교실을 나오면서 쿠라모치는 오늘 할 일을 머릿속으로 정리해보았다. 간만에 찾아온 휴일이었다. 일단 기숙사에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고, 아니 귀찮은데 가방만 두고 그냥 나갈까, 스포츠용품점에 들렸다가 늦지 않을 시간에 들어와서 몸도 풀어야 했다. 언제나 휴일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휴일이 찾아오면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계산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계단을 내려가던 중에 들려온 꺄르르 웃는 목소리가 낯익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교복차림의 사와무라가 신발장에서 같은 반 친구들인지, 쿠라모치는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건물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쿠라모치가 걸음을 멈춘 사이, 어느새 내려왔는지 미유키가 쿠라모치의 뒤에서 중얼거렸다.

“사와무라네.”
“어.”
“뭐야, 오늘 같은 날 데이트 아니야?”
“에이쨩께서 오늘은 친구들이랑 약속이 있다고 하시더라.”

몇 달 전에 두 사람이 사귀게 되었다고 보고했을 때부터 부활동에는 지장이 없게 처신하라고 말한 미유키는 평소에는 두 사람에 대해 관심 없다는 태도였지만 오늘은 무슨 바람인지 팔꿈치로 툭툭 쿠라모치를 건드리면서 물어보았다. 그럴 만도 했다. 미유키만이 아니라 다른 부원들이 보기에도 부활동 시간 중의 쿠라모치와 사와무라는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티가 나지 않아서 오히려 신경이 쓰일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종종 쿠라모치의 입에서 사와무라가 아닌 에이쨩이라는 말이 튀어나온다는 증언이 있었다. 부활동 중에는 아직도 사와무라, 쿠라모치 선배(혹은 치타 선배 등의 바리에이션)라고 부르는 것과 비교하면 급격한 온도차가 느껴질 정도의, 소문으로만 듣던 발언을 처음으로 들어본 미유키는 쿠라모치의 옆을 걸으며 키득키득 웃을 뿐이었다. 사와무라 일행의 목소리는 이미 하교하는 학생들 사이에 섞여서 들리지 않았다.

“너도 뭐 사러 나간다고 하지 않았어?”
“응—그래서 사와무라하고는 저녁때 만나서 들어오기로 했어.”
“결국 데이트잖아.”
“그게 어디가 데이트냐.”
“데이트 아니라니까 그럼 마음 놓고 뭐 부탁해도 되겠네?”
“마음대로 해. 어차피 나베쨩이 부탁한 것도 있고.”

역시 방금 전의 에이쨩은 무의식적이었던 것일까. 나베쨩이라는 호칭과 비슷한 정도로 자연스럽게 나온 말을 쿠라모치는 눈치 채지 못한 모양이라, 미유키 역시나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 스포츠용품점에서 부탁할 아이템을 하나하나 이야기했다.

 

“쿠라모치 선배!”

약속장소에서 기다리던 쿠라모치를 발견하고 사와무라가 뛰어왔다.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빨랐다. 쿠라모치에게 익숙한 모습과도 조금 달랐다. 부활동 때는 언제나 머리 끈으로 묶어서 볼 수 없었는데, 오늘은 손목에 끼운 머리끈으로 묶지 않은 생머리가 찰랑찰랑 흔들렸다. 조금 길이가 짧기는 했지만 티비에서 나오는 샴푸광고처럼—그거, 현실에서도 가능한 건가 보다.

“…머리하러 갔었어, 오늘?”
“헤헤헤. 오늘 부활동 쉰다고 하니까 친구들이 같이 가자고 해서요. 몇 달 못 갔다니까 미용실 갈 때가 됐다고 끌고 가잖아요.”

뭐가 부끄러운 것인지 사와무라는 얼굴을 조금 붉히고는 머리를 자르기까지의 과정을 길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끄덕거리면서 이야기를 들을수록 별로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커졌지만 덕분에 아까 잠깐 얼굴을 본 친구들의 이름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잘했네. 자른 것도 귀여워.”
“머리가 길어져서 조금 걸리적거ㄹ…… 정말 귀여워요?”
“어. 자른 거 마음에 안 들었어?”
“그런 건 아닌데… 아, 우리 뭐 먹고 들어갈래요?”
“그럴까. 오늘 재미있었어?”
“응. 오랜만에 친구들이랑 보내서 재미있었어요. 선배는?”
“나야 뭐……”

사와무라는 팔짱을 끼고 방금 전까지 쿠라모치가 돌아다녔던 쇼핑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쿠라모치는 힐끔 시간을 확인했다. 조금 여유가 있으니까—아무래도 오늘 남은 시간은 데이트가 될 것 같았다.

 

 

전력 패스하려다가 아침에 일어나니 부활동이 없는 날 방과 후에 따로따로 시간을 보내는 쿠라사와가 생각나서… 전날 토커님과의 대화에서 사와무라 본인에게는 에이쨩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쿠라모치 소재도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