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사와

세이도에는 괴물이라고 불리는 1학년생이 있다는 이야기는 금방 도쿄 고교야구계에 퍼졌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1학년에게 요구되는 기대치를 웃도는 실력 때문에 붙은 호칭이다만, 괴물이란 대체로 정상의 범위에 속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뜻이기도 하다. 우수한 것도 도가 지나치면 그런 것이다. 처음 후루야가 던진 공을 받은 사와무라가 떠올리지 못한 말이었다. 조금 힘조절을 잘못했다는 말을 듣고 그저 멍하니 상상해 보았다. 마운드에서는 도대체 어떤 공을 던진다는 말일까. 대답은 곧 알게 되었다. 확실히 어울리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후루야와 같은 팀인 사와무라에게는 괴물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 걸까? 하는 질문은 찾아오지 않았다. 결국 1군으로 올라간 사와무라는 후루야를 괴물이라고 인식하지 않았다—라이벌, 이름은 후루야 사토루, 등번호는 훨씬 앞.

괴물이라는 단어를 사와무라가 떠올리기 시작한 것은 여름이 지나가던 어느 날이었다. “역시 이런 거 이상하지.” 입술을 떨어뜨리고, 끌어안고 있던 팔을 밀어내며 사와무라는 중얼거렸다. 후루야는 그렇게 말하는 사와무라야말로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아무런 말도 돌려주지 않았다. 무엇이 이상하느냐는 질문도, 긍정도 부정도 아무것도 없었다. 사와무라가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내쉬었을 때야 손을 들어서 뺨을 쓰다듬었다. “싫어…?” 대답이야 정해져 있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떳떳하지 못한 일이라는 자각은 있었다. 가끔 점심시간에 교실 한구석에 모인 여자아이들이 소곤거리는 연애사처럼, 아무리 비밀스럽게라도 듣는 귀가 있는 곳에서는 할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둘만의 시간도, 공간도, 만들 수는 있었다. 두 사람이 늦게까지 남아서 그라운드를 달리는 일이 잦다는 것은 부원들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목욕탕, 자판기 옆, 그라운드 옆의 벤치—낮과는 모두 다른 모습을 보이는 그 장소들은 그들에게 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다. “쓸데없는 생각 하고 있는 건 아니야?” 후루야에게서 그런 말을 듣다니, 사와무라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만—고민을 이야기 할 상대도 후루야밖에 없는 이상 그것이 정말로 쓸데없는 생각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둘 다 괴물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 당장 대답도, 그 질문의 끝도 찾을 수 없는 사와무라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얄궂게도 눈앞의 괴물 투수 뿐이었다.

후루사와, au

레이싱계로. 키워드 날개

트랙에까지 튄 파편과 그라벨베드에 누운 타이어. 그리고 두 대의 머신을 치우러 마셜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후루야는 가드레일에 기댄 채로 한참을 그 장소에서 떠나지 못했다. 사와무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레이싱 콘트롤에서는 이 크래쉬를 단순한 레이싱 인시던트로 처리할 것이 분명했다. 크래쉬 자체에 대해서, 끝내지 못한 경기 때문에 화가 나기는 했지만 사고라는 것은 명백했다. 올해도 이 트랙과의 상성은 좋지 못했다, 사와무라는 그것을 연습경기 첫째 날부터 깨달았고, 초조해 했다. 개라지로 돌아가면 분명 반성회가 이어질 것이다. 초조했던 것은 후루야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사와무라는 후루야를 바라보았다. 헬멧과 발라클라브에 눌린 자국이 그대로 남아 붉게 물든 뺨, 그리고 꽉 다문 입. 후루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 이번에도 받지 못한 체커플래그를 제일 신경 쓰고 있을 것이다. 시즌 전반이 끝나가고 있었지만 후루야는 이번 시즌 팀메이트를 꺾은 적도, 포디엄에 오른 적도 한 번도 없었다. 착실하게 포인트는 쌓고 있었지만, 아무리 보아도 전년도 우승 후보답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팀 내에서 넘버원 시트 쟁탈전이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사와무라는 후루야가 그런 일에 말려들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 때는 라이벌이라고 불린 사이였다. 지금은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사와무라는 후루야에게 말을 걸까 했지만 아직 진행 중인 경기를 노려보고 있는 후루야를 보고 한숨을 내쉬고는 그것을 포기했다. 피트로 그들을 데려다 줄 스쿠터는 아직도 도착하지 않기에 사와무라도 가드레일에 팔을 기대었다. 후루야의 손에 들려있는 아무런 무늬도 없는 하얀 헬멧에 커다랗게 그려진 스폰서 로고 위로 가드레일 그림자가 드리웠다. 아직 그런 대형 퍼스널 스폰서가 따르지 않은 사와무라는 여느 때 그것을 조금 부럽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했던가, 후루야가 벗은 헬멧에 있는 스폰서가 광고에서 자주 쓰는 문구와 대비되었다. 그것은 꼭, 마치, 이번 시즌에 추락하기 위해서 달아준 날개였던 것일까.

 

모 스폰서는 날개를 달아주는 그 오오테 스포츠 드링크랄지.

후루사와, 에이쥰 입스때

타이어 위에서 연필로 써놓은 이름을 찾는 것은 어려웠다. 이쯤에 적어놓았다고 했던가, 지난 번에 이름을 적어놓았다면서 보여준 곳을 기억해 가면서 이름이 적혀있을 법한 곳을 한 바퀴 돌아가며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사실 후루야는 굳이 이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사와무라가 자기 파트너를 멋대로 데려가지 말라고 소리를 지를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런 반응이 돌아오지 않는다. 마운드에서 내려갔을 때 잘 부탁한다고 말한 이후로는……. 처음에는 무시당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쪽은 무시할 생각은 없건만.

“히라가나…….”

연필자국을 발견했지만, 찾은 것은 이름만이 아니었다. 손대지 말 것. 그리고 조금 지워진 사와무라 에이쥰이라는 풀네임. 자신을 향한 것이 분명한 그 문구에 무언가 답을 해주고 싶었지만 손에는 연필조차 없었다.

그렇지만──히라가나를 한참을 바라보다가 후루야는 그 문구가 말하는 대로 손을 떼고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알지 못했다. 선배들도 감독도 일단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이 상책이라는 듯 아직까지는 별다른 지시가 없었다. 사와무라가 훈련 때 공을 잡는 일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2군으로 내려간 것은 아니었다. 무슨 이야기를 들은 것일까, 궁금하기는 했지만 물어볼 수는 없었다. 그날 마운드에서 내려오기 전에 그에게 공을 건네던 팔이 글러브 안에서 와들와들 떨리고 있었다. 당연하다고 웃으면서 말은 했지만 본인이 그럴 리가 없었다, 일부러 그렇게 큰 소리로 말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후루야도 그 기분을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강판되던 때. 그때는 입장이 반대였다. 후루야는 다시는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다고 사와무라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이 타이어의 자칭 주인은 그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최근에는 답지 않게 도서실에도 드나들고, 수업 시간에도 전과 다르게 조용하다고 했다.

손대지 말 것이라는 말은 사와무라에게도 해당되는 걸까. 타이어를 내려다보면서 후루야는 생각했다. 벤치에서 후루야를 향해 큰 소리로 소리치던 목소리가, 그런 마음이 지금 필요했다.

후루사와, 8화

후루야는 그가 자신과 같은 타입이라고 생각했다. 본인이 나가지 못하는 경기에는 관심이 없어서 남아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라운드 한 편에 있는 비품창고의 문을 열어둔 채로 혼자 캐치볼을 하고 있는 소년. 이름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첫 집합 때 지각을 한데다가, 그 후로도 꽤 시끄럽게 굴었던 1학년이었다. 물론 후루야는 그렇게 요란스럽게 소리를 지르며 훈련을 하지는 않기에, 시끄러운 점은 전혀 닮지 않았다. 다만, 누군가와 짝을 이루어서 해야 할 캐치볼을, 야구를, 혼자서 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은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혹은, 그렇게 말했지만 후루야 또한 공을 받아주며 가볍게 몸을 풀 상대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캐치볼이라면 같이 할 수 있어. 후루야가 던진 말에 그는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표정으로 환영했다. 자신의 권유를 기뻐하는 것은 신선한 반응이었다.

계속해서 글러브 끝에 공이 닿았다. 착지점을 잘못 계산한 건가. 착각이라고 생각했지만 착각이 아니었다. 뜻대로 손에 잡히지 않는 공. 기분이 나쁜 공을 던진다고 말했을 때 그는 잠깐 멍하니 무언가를 떠올리는 모습이었다. 역시 같은 타입일지도 모른다, 이런 공을 던진다면 친구들과 캐치볼을 하자고 해도 모두 피했을 확률은 꽤 있다. 경험상 그것을 잘 알고 있는 후루야는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답지 않게 입을 다물고 있는 소년에게 말했다. 그렇지만 잡기 힘든 공이라는 건, 치기도 어렵다는 뜻이잖아. 너… 피쳐가 어울릴지도…. 그러고 보면 그는 이미 투수 지망이라고 감독에게 밝혔던가—잡을 수 없을 정도의 공은 아니지만, 역시 닮았다. 기분 나쁜 공. 이쪽도 어깨가 좀 풀렸으니까, 세게 던져도 괜찮아? 아… 물론이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지만 좋은 녀석일지도 모른다. 이곳에는 공을 받아줄 사람이 확실히 있었다.

후루사와 #1

그라운드에 잠시 누워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조금만 더 뛸 수도 있었지만 그랬다가는 동실의 선배에게 오버워크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것 같았다. 아직은 춥다고 느낄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침저녁 기온이 내려갔다. 도쿄의 겨울은 그리 춥지 않다고, 어지간해서는 눈도 쌓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나눈 것이 얼마 전이었다.

오늘은 달이 참 밝네.

위에서 목소리가 떨어져 내렸다. 글자 하나하나, 후루야가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 데에는 이제 익숙했다. 쓴웃음을 짓고는 사와무라는 몸을 일으켰다.

네, 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데?
얘기랄 거는 없는데.

후루야는 아직 제자리로 돌려놓지 못한 타이어 위에 걸터앉았다. 같이 그라운드를 뛰지 않을 때 후루야는 가끔 연습을 끝마친 사와무라에게 말을 걸어온다. 언제나 별로 이야기 할 것은 없다고 말하면서도 대화를 끊는 일은 없다.

그런데 그렇게 말 거는 건 이제 그만 해도 되지 않아? 매번.

솔직히 이상해. 사와무라는 중얼거리면서 그렇게 덧붙였다. 이제는 슬슬 평범한 말로 이야기를 시작할 때도 되었다. 먼저 말을 걸고 싶으면 흐려서 보이지도 않는 달 말고 조금 다른 레파토리를 찾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무리.

물론 그렇게 말 한다고 해 봐야 후루야가 듣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대답에 사와무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아직도 모르니까 그만 두고 싶지는 않아.
뭘 모르는데?

눈살을 찌푸리며 후루야에게 물었다. 네가 날씨 얘기 말고 다른 식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법을 모른다는 거 말고 뭐? 후루야는 대답하기를 망설이는 것인지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좋아한다는 말이잖아.
어?
국어시간에 배우지 않았어? 나ㅊ—
너한테 그런 이야기 듣고 싶지 않거든? 소세키잖아.

사와무라는 이제 수업 중에 졸지 않았고, 선생님이 지나가듯이 언급한 것도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소세키가 말했다고 전해지는 이야기지, 사실은 소세키가 말한 것은 아니라고도 했다. 제대로 알고 있다는 표시를 하자 만족한 것인지 후루야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 하지만 그냥 좋아한다고 말하면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렇지만 역시 좋아한다고 말하고는 싶으니까.

얼핏 보면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표정이었지만 중간 중간 마주친 눈빛은 사뭇 진지했다. 지금은 그러면 언제나 뭔가 이야기 해 주잖아. 애매한 미소를 마찬가지로 애매한 표정으로 마주했다. 결국 오늘도 들어버렸다. 하고 싶은 이야기.

너랑 안 어울려.
그런가.
그런 식으로 돌려서 말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는 거잖아. 네가 날 좋아한다는 거.

말이 길어질수록 목소리는 작아지는데다가 눈을 마주치기가 어쩐지 어려워졌다. 결국에는 땅만 바라보면서 손끝으로 운동장을 문대다가 숨을 크게 들이쉰 사와무라는 후루야를 바라보았다.

알았으니까, 앞으로는 말하고 싶으면 그냥 불러도 괜찮아, 사토루.
응. 앞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좋아한다고 말하면 에이쨩은 나랑 얘기하기 어려워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