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라모치

그냥 모치선배가 생각나서 썼던 거.

 

마을 한구석에 결국 아무런 건물도 들어서지 않아 방치된 공터가 생긴 것이 언제인지 그는 기억하지 못한다. 꽤나 큰 공터였지만 주택가에 들어올 시설이 마땅치 않았던 것인가, 임시로 철판을 세워서 만든 담장 안으로 사람 손을 타지 않아 잡초가 자라기 시작했다. 담에는 스프레이로 엉성한 영역표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가, 달이 지날수록 그것은 요란한 색의 본격적인 그라피티가 되었다. 쿠라모치가 그 담을 넘은 것은 중학교 때였다. 이어진 철판 사이의 틈새로 보였던 그곳은 의외라고 할지 예상대로의 모습이었다. 빈 곳. 바닥의 아스팔트를 가르고 멋대로 잡초가 자라났지만 차가워지기 시작한 계절 탓에 생기 가득하던 색을 잃고 있었다. 담장 밖이 그라피티로 가득한 것과는 반대로 공터 안까지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던 것인 모양이었다. 한편에 있던 폐건물의 문은 쉽게 열렸다. 창문도 깨진 것 없이 멀쩡했다. 다만 뿌옇게 변한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으로 거미줄과 먼지가 가득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안팎으로는 과자봉지나 음료 캔 같은 쓰레기도 없었다. 담뱃갑과 꽁초를 그곳에 멋대로 버리기 시작한 것은 그들이었다. 버려진 그곳에서 불량배 동료들과 어울렸다. 창문은 여전히 뿌옇게 남았지만 적어도 건물 구석에 있던 거미줄은 사라졌다. 요란한 소리도, 담뱃불도 연기도 그 안에 남았다. 담을 넘는 사람은 그들 이외에는 없었고, 그 안에서 무엇을 하던 담 밖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는 만족했었다.

연말연시를 맞아서 귀성한 그를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변할 리가 없는 전철 홈이었다. 개찰구를 빠져나온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무언가 조금 다른 간판들, 역 앞의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은 그대로였지만 가보지 않았던 몇몇 가게는 사라진 것 같았다. 역사 안과는 다른 공기에 익숙해지기 위해 한숨을 내쉰 쿠라모치는 주머니를 뒤져서 열쇠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열쇠꾸러미를 꽉 쥐었다. 오늘 도착한다고 연락을 했으니 집에는 가족들이 있을 테지만 혹시 아무도 없다면 오랜만에 그 열쇠를 써야 할 것이다. 해는 이미 떨어졌지만 집으로 이어지는 길은 상점가에서 멀어져서 골목길을 밝히는 가로등뿐이었지만 이전과는 달리 조금 더 밝아진 것 같았다. 걸음을 서서히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익숙한 동네는 도쿄 도심의 고층건물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와는 달리 낯익은 낮은 윤곽선을 보이고 있었지만 그 사이로 유독 눈에 띄는 건물이 하나 있었다. 층층이 쌓인 빛을 바라보았다. 고층주택의 불빛에 그라운드를 밝히는 조명이 떠올랐다. 그는 고개를 돌려 집으로 향했다. 그는 깨달았다. 추억이 될 것이라고 믿었던 나날들이 모두 사라졌다.

후루사와, au

여기서 이어지는 조각들 모음, 한 3년쯤 후? 둘은 20세 미만 희망. 본문은 1-6까지, 7쪽은 사담

 

시즌이 중반에 접어들었을 때 그 팀의 라인업은 반쯤 차있었다. 이미 가을이 시작될 즈음 그들은 내년 시즌의 드라이버로 후루야 사토루를 데려올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납득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이른 나이에 데뷔했지만 루키 시즌에서 살아남고 소포모어 이어까지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무사히 마친, 안정성과 발전가능성을 겸비한 선수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팀과도 같은 국적이라는 것도 이 경우 장점으로 작용했다. 오랫동안 일본 국적의 드라이버가 활약하지 못한 현재, 모사가 다시 팩토리팀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동시에 자국 드라이버를 키우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이었다. 남은 한 시트에 대한 소문은 시즌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후루야가 아직 젊은 드라이버였기에 경력이 풍부하여 개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드라이버를 데려올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 팀의 공석은 매력적인 자리였기에 영국과 유럽 대륙과 일본의 언론들은 각각 다른 후보들을 거론했다.

그러나 그 시트는 소문과는 완전히 다른 인물로 채워졌다. 후루야와 같은 나이에 같은 국적의 선수였고, 지난 시즌에는 하위 클래스에 있던, 그러니 내년 시즌에 루키로 데뷔하게 되는 사와무라 에이쥰이었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이를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 앞서 말한 배경도 그랬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지난 시즌 그가 일으킨 사건이었다. 하위 클래스에서 사와무라의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시즌 중반까지 리드를 두고 다투던 우승후보였다. 그러나 사건은 7라운드에서 일어났다. 포인트 리더들은 럭키 세븐이라는 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서로 크래쉬하며 경기를 끝내야 했다. 그것만 하더라도 충분히 레이싱계에서는 작은 뉴스거리였지만, 크래쉬 후 분에 받힌 드라이버들끼리 벌인 난투극이 7라운드의 경기 결과를 묻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먼저 싸움을 시작한 사와무라는 2경기 출전 정지라는 패널티를 받았고, 챔피언쉽 우승도 그 시점에서 끝났다—물론 그가 보인 비스포츠맨적인 행위에 비하자면 한참 모자란 패널티라는 의견도 많았다. 그런 일이 있었기에, 소문에 따르자면 사와무라의 전 소속팀 팀 오너는 이적 오퍼가 들어왔을 때 몇 번이나 재확인했다고 한다. 당사자인 사와무라는 어쨌든 웃는 모습으로 이적에 대한 인터뷰를 했다.

후루야는 내년 시즌 라인업에 대해서 사와무라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카트 시절을 같이 했고, 일본 국내 시리즈에서는 한 때 라이벌이라고 불린 사이였다. 마지막으로 같은 시리즈에 있었던 것은 몇 년 전—그렇지만 가끔 얼굴을 본 적은 있었다. 팀이 후루야에게 팀메이트 후보 명단을 가지고 왔을 때 후루야는 놀랐다. 우선 후루야는 자신이 팀메이트를 결정하는 데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에 팀이 그에게 후보를 알려준 것 자체가 예상 밖의 일이었고, 두번째로는 그 중에 사와무라의 이름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파일을 넘기는 손이 잠시 멈추고는 고개를 들었다. 팀 관계자는 예상했다는 듯이 후루야에게 미소 지었다.

공항 제1터미널 E번 출구, 시간은 아침 7시. 라고 전해들었지만 정작 그들을 인도해줄 사람은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다. 모자를 눌러 쓴 후루야는 캐리어를 들고 있는 사와무라를 내려다 보았다. 무엇인가 불편한 것인지 사와무라는 캐리어 손잡이 위에서 손가락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응.
잘 지냈어?
어……. 너야말로 잘, 아니다, 너는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더라.

사와무라의 말에 후루야는 피식 웃었다. 고개를 숙이며 사와무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계약서에 달려있는 조항들로 볼 때, 사와무라는 그 팀이 그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다. 알고 있었다. 이미 후루야와 사와무라 사이에는 경력이나 성적이나 하는 이름의 차이가 커졌다는 것을.

저기, 앞으로 잘 부탁해.
응. 팀메이트.

후루야가 새삼스럽게 청해온 악수에 사와무라는 손을 잡았다. 지난 몇 년간 사와무라가 텔레비전을 통해 보던 후루야가 아니라, 사와무라가 알고 있던 후루야가 분명했다. 그렇지만 분명, 테스트가 시작하고 시즌이 시작하면 넘버원과 넘버투가 나뉜다. 또 다시 넘버원을 넘겨줘야 하는 것은 싫었다. 다시 쥔 캐리어 손잡이가 그 사이에 차가워진 것 같았다.

미정

카네마루가 사와무라의 공부를 가르쳐주는 일은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게 되었지만, 사와무라가 쓰는 5호실이 아닌 카네마루의 방에서 만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오늘 5호실은 쿠라모치가 게임 시합을 한다는 이유로 시험 걱정이 없어 보이는 부원들과 함께 점거하게 되었다. 게임기를 텔레비전 앞에 세팅하는 쿠라모치에게 사와무라는 선배는 시험공부도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지만 평소에 공부하지 않는 네가 잘못이라는 말이 타이킥과 함께 돌아왔기에 사와무라는 공책과 필기구를 챙겨서 방을 빠져나갔다. 방에 있으면 선배가 또 심부름 시킬 거잖아요, 모치 선배랑은 달리 저는 공부를! 할 거라서 말입니다, 라는 말과 함께. 문이 닫히는 소리가 쿠라모치의 잘난 척 하지 말라는 목소리를 끊었다. 노크를 하고 카네마루의 방에 들어가자 카네마루는 벽에 붙어있는 책상 뒤로 접이식 상을 바닥에 펴놓고, 그 위로 교과서와 노트를 꺼내놓는 중이었다. 지난번 시험 때는 카네마루가 5호실에 찾아와서 사와무라를 감시한 것에 가까웠지만 이번 시험 때는 1군으로 올라온 카네마루도 공부할 시간이 줄어든 것인 모양이었다. 카네마루도 같이 공부하려고?—나 모르는 거 많을 텐데 괜찮겠어? 차곡히 쌓인 교과서를 바라보며 사와무라가 중얼거렸다. 그거야 이미 알고 있는 거잖아. 뭐, 너도 요새는 수업 듣고 있으니까 전보다는 낫겠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확신은 없었는지 말끝을 흐리며 카네마루는 사와무라를 쳐다보았고, 사와마루가 대답 대신 멋쩍게 웃자 카네마루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와무라에게 이 부분은 외우라며 노트 정리를 한 공책을 건네고 다른 과목을 시작한 카네마루는 어느새 자기 공부에 열심이었다. 교실에서는 사와무라가 앞줄에 앉기 때문에 카네마루가 공부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사와무라는 새삼 떠올렸다. 카네마루가 연습에 어울려준 적은 몇 번이나 있었지만 마스크 없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집중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우등생은 다르구나, 하고 감탄하면서 눈을 공책으로 돌렸지만 여백에 낙서 하나 없이 정돈된 필기에 머리가 아파진 사와무라는 고개를 슬쩍 돌려서 카네마루의 방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방과 다를 바가 없는 구조였지만, 세탁물 바구니의 위치가 다르다거나 책장에 꽂혀있는 것들, 아무런 포스터도 붙어있지 않은 벽을 보면 여기가 5호실이나 미유키의 방과는 또 다르다는 것이 실감났다. 그리고 고개를 다시 돌렸을 때 눈에 들어온 책상에 사와무라의 시선이 멈추었다. 아무도 앉지 않은 의자에 앉아있던 그 사람이 떠올랐다. 사와무라가 기숙사 방에 있는 크리스를 본 것은 처음 만난 직후, 한 번 뿐이었다. 저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던 중이었는지 늦은 시간에 찾아온 사와무라를 향해서 몸을 돌리고는, 앞으로 1년 동안 두루마리에 적힌 메뉴대로 트레이닝 한다면 공을 받아주겠다는 말을 했었다. 여름이 끝난 후 크리스도 다른 방으로 옮겨서 그 책상 위에는 크리스의 소지품은 없을 것이었고, 이 방에도 크리스의 자취는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방학이 끝나면…….

어쩐 일로 조용히 공부를 한다 싶었더니 고개를 들고 멍하니 있는 사와무라를 발견한 카네마루는 들고 있던 펜으로 사와무라의 머리를 가볍게 때렸다. 사와무라. 딴 짓 하지 말라고. 페이지가 그대로잖아. 아, 미안, 미안. 머리를 긁적이며 노트를 넘기는 사와무라를 보자니 카네마루는 한숨만이 나올 뿐이었다. 답지 않게 감상적인 구석도 있는 녀석이었다. 그대로 두었더라면 시험공부를 하러 왔다는 사실도 잊은 채로 그대로 있었을 것이라고 카네마루는 확신했다. ……그렇게 선배가 보고 싶으면 나중에 선배네 방에 놀러가도 되잖아, 지금은 공부나 제대로 해. 카네마루에게는 3학년 선배들이 쓰는 방에 갈 일이 없었지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어느 날부터 크리스 선배를 쫓아다니며 3학년 교실까지 올라간 일이 있는 사와무라라면 그래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렇지? 선배 아직 졸업하지 않았고. 작은 목소리로 웃으면서 대답한 것을 보고 카네마루는 다시 교과서로 고개를 돌렸다. 공책에 샤프 끝이 스치는 소리 사이로, 분명 사와무라 딴에는 혼자서 중얼거린답시고 말한 것이, 들렸다. 그렇지만 나도 크리스 선배랑 같은 방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카네마루는 그것을 무시할까 하고 생각하며 입술 안쪽을 꾹 깨물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넌 좋았을지 몰라도 선배는 아니었을걸. 선배가 얼마나 고생했겠어? 훗, 하는 비웃음과도 닮은 카네마루의 웃음소리에 사와무라는 뭐야, 그게 라며 투덜거리고는 그제야 제대로 책을 붙드는 모습이었다. 사와무라가 제대로 공부를 하는 것을 확인한 카네마루는 진지한 표정으로 저 책상에 앉아서 하루 종일 정리한 노트에 적어둔 연습 메뉴를 두루마리에 옮겨 적던 선배를 떠올리면서, 사와무라가 이 방으로 들어왔다면 그 선배는 정말로 고생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후루사와

세이도에는 괴물이라고 불리는 1학년생이 있다는 이야기는 금방 도쿄 고교야구계에 퍼졌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1학년에게 요구되는 기대치를 웃도는 실력 때문에 붙은 호칭이다만, 괴물이란 대체로 정상의 범위에 속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뜻이기도 하다. 우수한 것도 도가 지나치면 그런 것이다. 처음 후루야가 던진 공을 받은 사와무라가 떠올리지 못한 말이었다. 조금 힘조절을 잘못했다는 말을 듣고 그저 멍하니 상상해 보았다. 마운드에서는 도대체 어떤 공을 던진다는 말일까. 대답은 곧 알게 되었다. 확실히 어울리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후루야와 같은 팀인 사와무라에게는 괴물과 어떻게 싸워야 하는 걸까? 하는 질문은 찾아오지 않았다. 결국 1군으로 올라간 사와무라는 후루야를 괴물이라고 인식하지 않았다—라이벌, 이름은 후루야 사토루, 등번호는 훨씬 앞.

괴물이라는 단어를 사와무라가 떠올리기 시작한 것은 여름이 지나가던 어느 날이었다. “역시 이런 거 이상하지.” 입술을 떨어뜨리고, 끌어안고 있던 팔을 밀어내며 사와무라는 중얼거렸다. 후루야는 그렇게 말하는 사와무라야말로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아무런 말도 돌려주지 않았다. 무엇이 이상하느냐는 질문도, 긍정도 부정도 아무것도 없었다. 사와무라가 고개를 숙이고 한숨을 내쉬었을 때야 손을 들어서 뺨을 쓰다듬었다. “싫어…?” 대답이야 정해져 있었다.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떳떳하지 못한 일이라는 자각은 있었다. 가끔 점심시간에 교실 한구석에 모인 여자아이들이 소곤거리는 연애사처럼, 아무리 비밀스럽게라도 듣는 귀가 있는 곳에서는 할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둘만의 시간도, 공간도, 만들 수는 있었다. 두 사람이 늦게까지 남아서 그라운드를 달리는 일이 잦다는 것은 부원들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목욕탕, 자판기 옆, 그라운드 옆의 벤치—낮과는 모두 다른 모습을 보이는 그 장소들은 그들에게 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다. “쓸데없는 생각 하고 있는 건 아니야?” 후루야에게서 그런 말을 듣다니, 사와무라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만—고민을 이야기 할 상대도 후루야밖에 없는 이상 그것이 정말로 쓸데없는 생각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둘 다 괴물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일까. 당장 대답도, 그 질문의 끝도 찾을 수 없는 사와무라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얄궂게도 눈앞의 괴물 투수 뿐이었다.

후루사와, au

레이싱계로. 키워드 날개

트랙에까지 튄 파편과 그라벨베드에 누운 타이어. 그리고 두 대의 머신을 치우러 마셜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후루야는 가드레일에 기댄 채로 한참을 그 장소에서 떠나지 못했다. 사와무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레이싱 콘트롤에서는 이 크래쉬를 단순한 레이싱 인시던트로 처리할 것이 분명했다. 크래쉬 자체에 대해서, 끝내지 못한 경기 때문에 화가 나기는 했지만 사고라는 것은 명백했다. 올해도 이 트랙과의 상성은 좋지 못했다, 사와무라는 그것을 연습경기 첫째 날부터 깨달았고, 초조해 했다. 개라지로 돌아가면 분명 반성회가 이어질 것이다. 초조했던 것은 후루야도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사와무라는 후루야를 바라보았다. 헬멧과 발라클라브에 눌린 자국이 그대로 남아 붉게 물든 뺨, 그리고 꽉 다문 입. 후루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분명 이번에도 받지 못한 체커플래그를 제일 신경 쓰고 있을 것이다. 시즌 전반이 끝나가고 있었지만 후루야는 이번 시즌 팀메이트를 꺾은 적도, 포디엄에 오른 적도 한 번도 없었다. 착실하게 포인트는 쌓고 있었지만, 아무리 보아도 전년도 우승 후보답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팀 내에서 넘버원 시트 쟁탈전이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사와무라는 후루야가 그런 일에 말려들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 때는 라이벌이라고 불린 사이였다. 지금은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사와무라는 후루야에게 말을 걸까 했지만 아직 진행 중인 경기를 노려보고 있는 후루야를 보고 한숨을 내쉬고는 그것을 포기했다. 피트로 그들을 데려다 줄 스쿠터는 아직도 도착하지 않기에 사와무라도 가드레일에 팔을 기대었다. 후루야의 손에 들려있는 아무런 무늬도 없는 하얀 헬멧에 커다랗게 그려진 스폰서 로고 위로 가드레일 그림자가 드리웠다. 아직 그런 대형 퍼스널 스폰서가 따르지 않은 사와무라는 여느 때 그것을 조금 부럽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고 했던가, 후루야가 벗은 헬멧에 있는 스폰서가 광고에서 자주 쓰는 문구와 대비되었다. 그것은 꼭, 마치, 이번 시즌에 추락하기 위해서 달아준 날개였던 것일까.

 

모 스폰서는 날개를 달아주는 그 오오테 스포츠 드링크랄지.